김마루 환경부 기후경제과장이 21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5 배출권시장협의회 자문위원회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박조아 기자)

[서울파이낸스 박조아 기자] 환경부가 배출권거래제(ETS)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제도 전반의 개편에 나선다. 공급 과잉과 낮은 가격으로 제 기능을 상실한 현 제도에 대한 개선 필요성이 제기된 가운데, 4차 계획기간에는 총량 축소와 유상할당 확대, 시장안정화조치(MSR) 도입 등이 추진된다.

김마루 환경부 기후경제과장은 21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5 배출권시장협의회 자문위원회 세미나'에서 "우리 ETS는 동아시아 최초로 국가 단위 제도로 시행됐고, 현재 10년째 운영 중이지만 최근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공급 과잉과 가격 저하로 인해 기업의 감축 유인이 약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할당 대상 업체는 700~800개 수준이며, 이들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73%를 담당하고 있다. 특히 산업·전환·발전 부문이 전체 할당량의 90%를 차지해 배출권 거래제의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3차 계획기간(2021~2025년) 중 배출권 가격은 1톤당 8800원 수준으로, 1만원대 이하에 머무르고 있다. 

그는 "이 가격은 기업에 감축 비용이 1만원 이상 드는 설비 투자를 유도하지 못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고효율 기술 투자가 사장되고 있다"며 "일부 기업은 배출권을 기대 가격보다 저렴하게 팔게 돼 오히려 감축 투자로 손해를 보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배경에는 배출권 할당량 과잉이 자리잡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산업 전반의 배출량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할당량은 유지되면서 잉여 배출권이 누적됐다. 그는 올해 말 기준 배출권시장 내 잉여량이 9000만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과거 1~3기 통틀어 최대 규모다. 

정부는 4차 배출권거래제(2026~2030년)의 시행을 앞두고 오는 6월 까지 배출허용총량, 배출권 할당 기준, 유상할당 비율 등에 대한 배출권 할당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환경부는 제도 정상화를 위해 제4차 계획기간을 수립할 때 상향된 감축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ETS가 되도록 실질적 총량 설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가능성, 적정 탄소가격, 기금 수입규모, 전기요금 상승 부담 등 경제적 영향 분석을 통해 설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유상할당과 BM(벤치마크) 할당을 확대해 참여자를 늘리고 시장성을 강화하며, 시장안정화조치(MSR)도 도입하기로 했다.  

김 과장은 "ETS 총량은 국가 NDC 경로에 맞춰 급격히 감소할 예정"이라며 "기업들은 계획 초기에 여유가 있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감축 부담이 커지게 되며, 미리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제는 시험 일주일 전인 상황으로, 기업들이 더 이상 감축을 미룰 수 없게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ETS는 EU와 달리 전기 사용에 따른 간접배출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기요금 인상과 ETS 부담이 중첩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간접배출 제외를 검토하겠다는 방향도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적용 시점과 조건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유상할당은 대폭 상향하고, 이로 인해 늘어난 기금 수입을 통해 투자 지원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유상할당은 배출권 거래제(ETS)에서 온실가스 배출권을 무상으로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돈을 주고 경매 방식 등으로 사서 확보하는 제도를 말한다. 현재 한국의 배출권거래제(ETS)에서 유상할당 비율은 전체 할당량 대비 약 10% 내외다. 발전 부문의 유상할당 확대는 전기요금과 연결되는데, 이에 따라 간접배출량을 단계적으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할당 방식에서도 변화가 예고된다. 효율 기반의 벤치마크(BM) 방식 적용 비율을 현재 62%에서 75% 이상으로 확대한다. 특히 반도체, 디스플레이, 비철금속 등 고효율 업종들이 BM 적용 대상에 포함되며, 전체 공정 배출 기준으로는 92%가 BM 방식 할당을 받게 될 전망이다. 

상쇄제도의 경우 배출 유연성을 유지하지만, 인정 비율 확대가 총량 초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조정할 계획이다. 국제감축 실적 확보, ETS 외부 기업의 감축 유도 등도 함께 고려된다. 아울러 ETS 시장에 금융사, 연기금 등의 참여도 확대된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제3자 참여 기반은 마련됐으며, 위탁매매 시스템이 준비되는 11월부터 실질적인 진입이 가능할 전망이다. 이후 선물 및 파생상품 도입도 추진된다.

김 과장은 "활성화란 단순히 거래량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감축 경쟁이 일어나고 시장이 자생적으로 균형을 찾아가는 구조가 되는 것"이라며 "일방적인 규제가 아니라 시장 원리를 활용한 제도 설계를 지향하겠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이르면 올 하반기 중 제4차 계획 초안을 확정하고, 부처 협의 및 공청회를 거쳐 2026년부터 새로운 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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