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80조원'에 육박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폭탄에 책임준공 리스크가 고개를 들고 있다. 건설경기 침체와 공사비‧인건비 상승으로 수익성이 낮아진 가운데, 근로자들의 노동 여건 개선과 건설자재 수급 변동성 등이 커지면서 공사 기간이 지연되는 사례가 빈번해진 탓이다. 이에 따라 건설사들이 주택 건설 사업 수주를 위한 관행으로 굳어진 책임준공(신용공여)을 줄이는 모습이다.
20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DL이앤씨는 최근 천안 성성호수공원 공동주택 신축사업에 책임준공 확약 없이 시공사 참여를 결정했다. 다만, 정해진 책임준공 기한까지 공사를 마무리하지 못할 경우 보상금을 지급하겠다는 지체상금 조항이 포함됐다.
현대건설은 서울 가산동 LG전자 부지 개발에 나서면서 건설공제조합으로부터 2000억원의 책임준공 보증을 발급받았다. 책임준공에 따른 벌칙 조항을 채무인수 대신 손해배상으로 대체하는 일종의 '보험'을 든 것이다.
책임준공은 주택사업 등에서 시공사‧신탁사가 기한 내 공사를 완료하지 못한 경우 공사비 증액분과 금융비용을 전액 떠안거나 손해배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통상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을 추진할 때, 자금조달을 맡는 금융사가 시공사‧신탁사의 책임준공 확약을 조건으로 내거는 경우가 많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물론 은행이나 증권사 등 금융사들도 자금 회수가 어려워질 경우를 대비해 건설사의 신용공여를 요구하는 것이다.
문제는 부동산 경기 침체와 공사비 상승으로 공기 지연, 미분양 리스크가 커지면서 책임준공이 자칫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호황기 무리하게 확장했던 책임준공 사업이 건설사의 발목을 잡으며 경영 부실을 초래할 수 있다.
이미 건설사가 책임준공 관련 채무를 떠안는 사례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부산 강서구 지사글로벌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에 참여 중인 GS건설은 책임준공 기한을 지키지 못해 지난 4월 1312억원 규모 부동산 PF 채무를 인수했다.
지난 2월에는 금호건설이 경기 수원시 오피스텔 신축사업 책임준공 미이행으로 612억원의 채무를 떠안았다. 같은 달, 동양은 충북 금왕 물류센터 개발사업 책임준공 기한을 지키지 못해 1800억원의 채무를 인수했다고 공시했다. 지난해 12월에는 HDC현대산업개발이 경기 안성 물류센터와 관련해 995억원 규모의 채무를 인수했다.
실제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건설사의 책임준공 관련 PF 대출 규모는 70조원에 육박하는 실정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3분기 기준 10대 건설사의 부동산 PF 책임준공 약정 대출 규모는 68조5679억원으로, 지난해 말 68조2724억원 대비 2955억원이 늘었다. 현대건설(별도 기준)이 10조8984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대우건설이 10조1559억원, 롯데건설이 10조1408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또 한국기업평가 집계 결과, 올해 상반기 기준 한국기업평가 신용등급을 보유한 18개 건설사의 PF 보증 규모는 79조1000억원 수준으로, 많은 건설사가 자기자본의 2배가 넘는 책임준공 약정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코오롱글로벌 등 3개 건설사는 자기자본 대비 3배가 넘는 책임준공을 확약 중이다. 미분양이 발생해 사업비 확보가 어려워도 공사 기한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운전자본 부담이 급증할 수 있는 상황이다.
김현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2020~2021년에는 분양을 개시하자마자 완판되던 시장이었기 때문에 건설사들에 책임준공은 PF와 관련한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며 "그러나 올해 들어 미수금이 늘어나고 미분양, 근로기준법 등 많은 요소들이 준공의 허들을 높이며 건설사들의 리스크가 커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PF를 일으킬 때 시행사나 조합, 발주처가 영세하다는 이유로 금융사 등이 관행처럼 시공사에 책임준공이나 매입확약 등 추가 신용공여를 요청해왔으나, 이는 공사에 대한 리스크가 아닌 사업적 리스크까지 감당하라는 과도한 요구"라며 "상당수 건설사들이 책임준공으로 모든 리스크를 과도하게 지는 데 대해 다른 방법을 모색하며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도 당초 취지와 맞지 않게 시공사에 과도한 책임을 요구하고 부실 발생 시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제도적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에 나선 상황"이라며 "조속한 조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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