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오후 (현지시간) 미국 뉴욕 롯데 뉴욕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서명식'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하기 앞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오후 (현지시간) 미국 뉴욕 롯데 뉴욕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서명식'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하기 앞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서종열 기자] "Make Ships in America Again(미국이 다시 배를 만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일(현지 시각) 미국 조선업 재건을 위한 행정명령에 전격 서명했다. 중국의 해양 산업 패권 확대에 대응하고, 자국 해양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이 조치로, 트럼프 특유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노선이 해양 산업 분야로 확장됐음을 의미한다. 미국 내 조선업·해운업 인프라를 재정비하고, 전략산업으로서의 해양 주권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연설에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해군을 보유하고 있지만, 더 이상 그것을 자체 건조하지 않고 있다"며 "미국은 다시 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중국산 선박과 장비가 우리의 항만과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며 중국을 직접적으로 겨냥했다.

이번 행정명령에는 △미국 항만에 입항하는 중국산 선박 및 크레인에 대한 수수료 부과 △국내 조선소 인프라 재건 및 노동자 임금 인상 △'해양 기회 구역(Maritime Opportunity Zones)' 지정 △'해양 안보 신탁기금(Maritime Security Trust Fund) 설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산하 조선사무국(Maritime Policy Office) 신설 등 광범위한 내용이 담겼다.

◇ 中 해양굴기에 본격 대응… "크레인도 무기 될 수 있다" =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조선·해운 산업을 통해 해양 패권을 확장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이 세계 선박 건조량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미국 항만에 설치된 대형 크레인의 80% 이상이 중국산이라는 점이 트럼프 대통령과 미 행정부의 우려를 증폭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산 크레인에는 감시 장비가 탑재돼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해양 산업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의 문제"라고 못박았다. 실제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부터 중국산 크레인에 대한 사이버 보안 조사를 본격화했다.

이와 동시에 미국 정부는 국내 조선업 인력을 대폭 확충하고, 핵잠수함 등 전략자산 건조에 필요한 고급 기술력을 회복하기 위한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핵잠수함 조선소 근로자의 임금을 최대 30%까지 인상하고, 정부 조달 절차도 대폭 간소화할 예정이다.

필리조선소 전경 (사진=한화오션)
필리조선소 전경 (사진=한화오션)

◇ 韓 조선업에 호재?···美 시장 진출 기회 확대 = 트럼프 행정부의 조선업 부활 정책은 우리나라 조선업계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LNG 운반선,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등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에서 세계 1위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 내 조선업 인프라 회복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만큼 국내 조선업체들이 그 빈틈을 메울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실제 한화그룹은 지난해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Philly Shipyard)를 인수하며 미국 조선업에 직접 진출했다. 향후 미국이 자국 내 선박 생산을 확대하더라도, 기술 이전, 설계 협력, 기자재 공급 등 다양한 방식의 한미 협력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한국 조선업의 입지는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안덕근 장관은 지난 10일 기자들과 만나 "한국은 세계 최고의 조선 기술력을 보유한 나라로, 미국과의 조선업 협력이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관세 협상에서도 전략적 카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 공급망 재편 속 '기회와 도전' 공존 = 일각에서는 미국의 조선업 보호 정책이 자칫 '신(新)조선 냉전'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국과 중국이 해양 산업까지 전면 충돌하면서 글로벌 해운 및 조선 공급망이 크게 재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이 특정 국가(중국)산 부품이나 기자재에 대해 제재를 확대할 경우, 글로벌 공급망을 활용하던 기존 방식에 변화가 불가피하다"며 "공급망 다변화와 기술 독립성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국이 기술력과 품질에서는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향후 미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자국 기업에 우선권을 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밀어붙일 가능성도 있다"며 "미국 시장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 중장기적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대해 조선업이 단순한 산업 영역을 넘어 '국가 안보' 차원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음을 지적했다. 

통상업계 한 관계자는 "앞으로 조선업은 단순히 수주 경쟁을 넘어서, 국제 정치와 안보 전략의 축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한국은 기술력뿐 아니라 외교, 통상 전략까지 아우르는 종합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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