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오세정 기자)
10일 오전 세운상가옥상에서 바라 본 종묘(가운데)와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전경. (사진=오세정 기자)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종묘 앞 세운 4구역 재개발을 둘러싸고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정면으로 충돌한 가운데, 문화유산 경관 보존과 도시 정비를 둘러싼 찬반 입장이 맞붙고 있다.

재개발을 반대하는 이들은 초고층 빌딩으로 인해 세계문화유산인 종묘가 지정 해제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시는 세운 재개발 구역의 낙후도를 언급하며 오히려 종묘의 가치가 두드러질 수 있다고 반박한다.

12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시는 지난달 30일 세운 4구역 높이 계획 변경을 뼈대로 한 '세운 재정비 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 촉진 계획 결정'을 고시했다. 세운 4구역의 건물 최고 높이는 당초 종로변 55m·청계천변 71.9m에서 종로변 101m·청계천변 145m로 변경됐다. 일반적인 주거·상업용 건물의 층고를 3.5m에서 4m 사이로 가정하면 최대 41층 건물이 올라갈 수 있는 수치다.

이를 두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유산청 등이 크게 반발했다. 종묘는 조선 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사당으로, 1995년 국내 문화재 중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돼 문화·역사적으로 그 의미가 깊기 때문이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지난 7일 종묘 정전을 방문해 "권한을 조금 가졌다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겠다는 시의 발상과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며 높이 규제를 완화한 시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대한민국 문체부 장관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겠다"며 세운 4구역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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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앞 전경. (사진=오세정 기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는 세계문화유산에 '시각적 완전성(Visual Integrity)'을 요구하고 있는데, 주변 경관과 시야가 종묘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세계유산특별법이 정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훼손할 경우 세계문화유산 지정이 철회될 가능성도 크다. 이런 경우 유네스코는 '위험에 처한 유산'으로 등록하고, 개선되지 않으면 등재를 취소한다. 영국 리버풀 '해양 상업 도시',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10일 김민석 국무총리도 종묘를 둘러본 뒤 "지금 시에서 얘기하는 대로 종묘 바로 코앞에 고층 건물이 들어선다면, 이게 종묘에서 보는 눈을 가리고 숨을 막히게 하고 기를 누르게 하는 그런 결과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된다"며 "문화와 케이 관광이 부흥하는 시점에 와 있기 때문에, 문화와 경제, 미래 모두를 망칠 수 있는 결정을 지금 하면 안 된다는 관점에서 정부가 아주 깊은 책임감을 갖고 이 문제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와 관련해 관련 부처에 법과 제도 보완을 지시하기도 했다.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장기간 토지 소유자들이 문화재로 인해서 재산권을 행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개발을 해야 한다"면서도 "세계문화유산인 종묘를 가치, 경제적 가치, 문화적 가치를 해하지 않는 선에서 진행돼야 한다"며 재개발 이전에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휘영 장관 역시 세계유산영향평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시는 동의하지 않고 있다.

1995년 유네스코 자문 기관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종묘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려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종묘가 완충 지대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 너머에 상당한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다. 유적지 일대 시야를 해칠 수 있는 고층 건물이 들어서지 않도록 보장해 달라"는 권고 사항을 남겼다는 SBS 단독 보도도 나오며 이 같은 주장에 힘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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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세운상가옥상에서 바라 본 종묘 (사진=오세정 기자)

한국고고학회, 한국건축역사학회 등 27개 학회와 문화유산 관련 6개 협회는 12일 서울 중구 상연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는 종묘에 인접한 지역 건물 층고를 상향하는 규제 완화를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시민들도 종묘 주변의 경관을 해칠까 걱정하고 있다. 종묘 인근 직장에 다니는 40대 이은선씨는 "높은 건물이 올라오는 것에 반대한다. 종묘를 초고층 건물로 막아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서 빠지게 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김민지(32)씨는 "학교가 근처라 이 지역을 자주 오가는데 초고층 건물이 생기면 답답하고 경관을 해칠 것 같다"며 "굳이 초고층 건물을 짓지 않고도 종묘와 인근 광장시장이나 주변 문화유산과 연계해 주변을 랜드마크로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이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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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종묘에서 바라 본 세운상가(오른쪽)와 세운재정비촉진지구 4구역(왼쪽) 전경(사진=오세정 기자)

시는 종묘와 재개발 지역 거리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기준인 100m 밖에 있으며, 종묘로부터 멀어질수록 낮은 건물부터 높은 건물까지 단계적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종묘의 문화유산적 가치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대법원이 시가 문화재 인근 고층 건축물 규제 조항을 삭제한 것이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하며 아무런 법적 위반 사항은 없는 상황이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 11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세운 4구역 개발은 "종묘가 지금보다 더 돋보이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그는 "(세운 4구역은) 종묘 정문으로부터 지금 170m 떨어져 있고, 종로 정문부터 정전까지 아주 우수한 건축물이라고 하는 문화유산과는 한 300m가 떨어져 있어서 총 500m 떨어져 있는 거리에 고층 건물이 지어지는 것"이라며 경관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는 이같이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상인들과 주민들의 피해가 크다고 호소하고 있다. 실제로 1968년 지어져 올해로 58년째인 세운상가의 노후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비가 새는 것은 물론이고 빌딩 노후화로 외부 자재 추락 등 안전 사고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세운상가 일대에는 판잣집 지붕으로 뒤덮인 대표적인 노후 주거지 중 하나다.

오 시장은 "세운상가에서 내려다본 세운 4구역은 '판자촌'이라 58년 된 낡은 건물을 보존하고 싶어도 콘크리트가 뚝뚝 떨어져 지나가는 시민이 다치기도 했다"며 "(재개발 지역의) 아파트, 상가 분들을 내보내려면 1조5000억원이 들어가는데 주변 개발하는 분들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과정에서 높이를 충분히 높여 드려야 거기서 비용을 지불할 수익이 나기 때문에 그분들 입장에서 신축 건물의 높이를 보장해 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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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재정비촉진지구 4구역 공사현장 (사진=오세정 기자)

세운 4지구 등 세운지구 토지주들은 개발이 지체되면서 재산상 피해가 막심하다고 목소리를 내는 상황이다. 이들은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다시세운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운 4구역은 종묘 문화재 보호구역에 속해 있지 않음에도 문화재 보호구역 내 건축물보다 과도한 규제로 국가유산청의 인허가 횡포로 누적 채무가 7250억원에 이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2006년부터 사업을 시작해 철거까지 마친 상황에서 착공조차 하지 못하는 사이 토지주들이 분담해야 하는 금융비용만 쌓이고 있다는 것이다. 토지주들은 기자회견에서 매달 금융이자 손실 비용이 200억원 이상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토지주들은 "국가유산청이 재개발을 불가능하게 한다면 부당한 행정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물어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국가유산청장,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정부는 우리 생존이 걸린 세운 4구역을 정치적 싸움터로 전락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50여 년간 세운상가 내 한 상가를 운영해 왔다는 송모씨는 "4구역 토지주는 그동안 세도 못 받고 피해가 막심하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상인이고 지주 할 거 없이 당연히 개발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알고 있다"면서 "문체부 등에서 지적하는 게 경관을 해치고 유네스코 등재 취소될 수 있다는 것인데 일본이나 영국 사례를 봐도 핵심 유산 인근에 초고층을 올렸다. 4구역은 180m나 떨어져 있고 정전에서 직통상으로는 녹지를 만들고 양옆에 고층을 올리겠다는 계획인데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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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앞 도로 하나 사이에 세운재정비촉진지구 4구역 공사현장이 있다. (사진=오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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