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를 대표하는 주요 대기업들은 6월이 되면 하반기 경영전략회의를 연다. 상반기 경영 성과를 점검하고 하반기 계획을 수립하는 자리다. 올해 기업들의 하반기 전략회의는 예년과는 다를 전망이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조기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고, 새로운 정부가 이제 막 출범했다. 새 정부는 이전과 다른 경제정책 기조로 경제 위기를 끝내고 성장을 이루겠다는 포부를 내세우고 있다. 기업들 역시 이러한 정부 기조에 맞춰 하반기 전략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본 기사에서는 국내 상위 8개 그룹이 하반기에 어떤 경영전략을 세울지 살펴본다. /편집자주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현재 업종을 불문하고 글로벌 경기침체와 불확실성 확대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데 이들 기업 중 가장 심각하게 침체된 곳을 꼽으라면 롯데와 포스코가 대표적일 것이다.
롯데는 야심차게 추진한 석유화학사업이 부진한 가운데 관광, 식품, 유통 등 주력 사업 전반이 침체돼있다. 포스코 역시 중국산 철강제품 밀어내기와 트럼프 정부의 철강 관세로 몸살을 앓고 있고 배터리 소재 사업 역시 전기차 부진과 중국산 제품의 공습으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숙제를 떠안았지만, 두 회사의 전략은 사뭇 다르다. 롯데는 기존 사업의 경영효율화를 꾀하면서 신사업 발굴을 통해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 있다. 포스코는 기술 경쟁력을 강화해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두 회사 역시 새 정부의 정책 기조에 발맞춰 기회를 잡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 롯데, 핵심사업 경쟁력 키우고 재무건전성 확보 '총력' = 롯데그룹은 매년 두 차례 VCM(Value Creation Meeting)을 개최한다. VCM은 과거 사장단 회의로 불렸던 경영 의사결정 회의체로 롯데지주 대표이사, 사업군 총괄대표, 계열사 대표 등 80여명이 참석한다. 상반기 VCM은 지난 1월에 열렸으며 다음달 하반기 VCM을 개최한다.
롯데그룹은 하반기 VCM에서 올해 상반기의 경영 성과를 평가하고 하반기 전략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해 말 증권가에서 불거진 유동성 위기설은 사그라들었지만, 주력 사업에 대한 불확실성은 여전한 만큼 핵심사업 경쟁력 회복, 재무건전성 강화, 글로벌 브랜드 가치 제고, AI 내재화 등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를 통해 "올해 불확실성 확대와 내수 시장 침체 장기화 등으로 경제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울 것"이라며 "혁신 없이는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석유화학 사업에서는 대대적인 사업재편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과 HD현대는 대산 나프타분해설비(NCC) 통합을 위한 협상에 돌입했다. 전쟁 영향으로 유가가 불안정한 만큼 NCC 가동을 효율화 하기 위한 '빅딜'인 셈이다.
이보다 앞서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화학사업군 CEO 13명 중 10명이 올해 임원인사에서 교체되기도 했다. 특히 화학사업군을 총괄했던 이훈기 롯데케미칼 사장은 취임 후 1년만에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이 밖에 신사업에 대한 투자현황과 전략도 점검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인천 송도에 4조6000억원을 투입해 바이오캠퍼스를 조성하고 있다. 성장세가 두드러진 바이오 시장의 후발주자인 만큼 조기에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동빈 회장이 주문한 'AI 내재화' 현황도 점검할 것으로 보인다. 상반기 VCM에서는 AI 혁신을 주제로 한 'AI 과제 쇼케이스'를 진행한 바 있다. 쇼케이스에서는 롯데이노베이트, 대홍기획 등 9개 계열사가 참여해 AI 우수 활용 사례를 선보였다.
또 이재명 대통령과 간담회에서 언급된 내용을 바탕으로 중장기 경영전략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13일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경제계 간담회에 신동빈 회장도 참석한 만큼 간담회 내용을 중심으로 세부 전략이 논의될 수 있다.
◇ 포스코, 초격차 기술로 경쟁력 확보 = 포스코는 지난 3월 장인화 포스코 회장 주재로 기술전략회의를 개최했다. 이어 하반기에도 기술전략회의를 개최하겠다고 밝힌 만큼 9월 중 회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는 지난해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으며 올해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포스코홀딩스는 올해 1분기 매출 17조4400억원, 영업이익 570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4%, 전분기 대비 2.1% 감소했으며 영업이익은 전분기 대비 470% 늘었으나 전년 동기 대비 1.7% 줄었다.
철강사업 자회사인 포스코는 1분기 매출 8조9700억원, 영업이익 350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8%, 전분기 대비 3.3% 줄었으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6.7%, 전분기 대비 9.4% 늘었다. 차세대 주력 사업인 에너지소재사업은 포스코퓨처엠의 하이니켈 양극재 판매가 확대되면서 적자 폭을 줄였다. 음극재도 고객사의 공급망 다변화와 수요 확대로 판매량이 늘었다.
올해 들어 실적이 다소 개선됐지만, 포스코는 기술 경쟁력 확보로 시장 불확실성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장인화 회장은 지난 3월 기술전략회의에서 "지주사를 중심으로 연구개발(R&D) 조직 간 시너지를 높이고, 기술개발 프로세스를 정립한 '코퍼레이트 R&D' 체제를 구축하겠다"며 "초격차 기술로 대내외 위기를 돌파하고, 초일류 소재기업으로 도약하자"고 말했다.
이에 따라 포스코는 철강 부문에서 고부가가치 제품의 생산기술을 고도화하고, 미래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혁신 제품 개발에 집중한다. 에너지소재 부문은 아르헨티나와 광양리튬공장 등 2차전지 소재 공정의 조기 안정화와 함께 전고체 전지용 소재 등 차세대 기술의 조기 상용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포스코는 새 정부 출범과 글로벌 무역환경 변화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일 25% 철강 관세 부과 대상을 파생제품인 가전에도 추가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미국 수출 제품이 대부분 베트남, 멕시코 등 해외에서 생산되는 만큼 직접적인 영향은 적을 수 있지만, 철강산업 자체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포스코는 경쟁사인 현대제철과 함께 미국 철강 공장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또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선거운동 당시 포항을 방문해 철강산업 위기 극복을 위한 국가 차원의 지원방안을 모색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특히 수소 환원 제철 기술을 통해 철강 산업을 부흥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이에 발맞춘 대응도 필요한 상황이다.
포스코는 수소 사업에 대해 직접 설비 투자에서 장기 구매 계약으로 전환하고 수익성을 확보하기로 했다. 새 정부가 수소 환원 제철을 내세운 만큼 포스코 역시 수소 사업에 대한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