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이재명 정부가 '실용주의'에 방점을 둔 인사 기조를 표명하면서 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 인사 수난사에 마침표가 찍힐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취임한 후 대통령실 인사도 빠르게 진용을 갖춰가고 있다.
이 중 가장 시급한 분야로 거론되는 경제 부문의 참모(정책실장·경제성장수석·재정기획보좌관)로는 각각 김용범(63) 전 기획재정부 1차관, 하준경(56)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류덕현(56)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가 기용됐다.
김용범 실장은 기재부 출신 정통 관료로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높은 이해력과 국제적 감각은 물론 민간 근무 이력까지 보유한 경제·금융 전문가다. 공직에선 기재부 1차관 외 세계은행 선임이코노미스트, 금융위원회 사무처장 등을 지냈으며 직전까지 블록체인 전문 투자사 해시드의 싱크탱크인 해시드오픈리서치 대표이사로 활동했다.
하준경 수석은 한국은행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2021년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위원회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대선 당시 선거대책위원회 전환적공정성장전략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학계에서는 '중도성장' 주류 경제학자로 분류되며 실물경제 전략에 밝다는 평가다.
류덕현 보좌관은 재정 분야 전문가로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조세연구원 등에서 거시경제, 조세·재정 관련 연구를 진행했다.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로 연구를 이어가면서 한국재정학회, 한국경제학회 등에서 활동했다. 이 대통령이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등 적극적인 확장 재정을 예고한 만큼, 재원 확보 등에 대한 전문 시각을 가진 인사를 기용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경제 참모 인사를 보면 공직과 민간, 학계 등을 두루 거친 전문가들을 적극 기용하는 실용·성과주의에 초점을 맞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용을 강조해 온 이 대통령의 인사 철학이 강하게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0%대에 머무를 것이란 우려스러운 전망이 나오고 있고,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연체·폐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등 경제위기에 발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정부가 저성장 국면을 빠르게 탈출하기 위해 다방면에서 경제·금융 감각을 익힌 전문가를 발탁하는 등 실용주의에 방점을 둔 만큼 민간 금융권 인사 개입도 최소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통상 금융권에서는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대대적인 '인사태풍'이 불 수 있다는 우려에 긴장감이 컸다. 새 정부 입맛에 맞는 인물을 기용하도록 입김을 불어넣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엔 이 전 대통령 최측근인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과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 강만수 전 산업은행 회장 등이 금융권 4대 천왕으로 업계를 주름 잡았다. 어윤대·이팔성·김승유 전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대학 출신, 강만수 전 회장은 대선캠프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다.
박근혜 정부에선 4대 천왕이 물러나고 박 전 대통령과 대학 동문인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가 득세했다. 당시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과 이덕훈 전 수출입은행장, 정연대 전 코스콤 사장 등이 서금회 멤버로 분류됐다.
문재인 정부에선 민간 금융사 인사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적용, 상대적으로 코드인사가 적었다는 평가다. 금융지주사 회장들이 탄탄한 실적을 내세우며 여러차례 연임에 성공했던 것도 문 정부 시절이다.
그러다 윤석열 정부 들어 민간 금융사 인사에 개입하려는 기조가 강해지면서 '관치금융' 논란이 커진 바 있다. 특히, 윤 전 정부가 금융지주 CEO들의 장기집권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던 터라 윤종규 전 KB금융 회장, 조용병 전 신한금융 회장,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손병환 전 농협금융 회장 등이 연임을 포기해야 했다.
앞선 정부들과 달리 실용주의를 앞세운 이 정부에선 관치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과도한 개입을 최소화하고, 선진화 작업이 진행 중인 금융지주 승계절차에 따라 능력있는 CEO를 선임하는 관행을 안착시킬 것이란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거시경제와 달리 민간의 경우 기업 경영전략과 내부 기준에 따라 실무 경험을 두루 거친 전문가를 선임하도록 장려하는 게 '실용주의' 아니겠나"라며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발탁하도록 대부분의 금융지주사들이 승계절차를 마련했기 때문에 외부에서 개입할 여지가 줄어든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4대 금융지주 회장 중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과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내년 3월 임기가 끝나고, 양종희 KB금융 회장은 내년 11월 임기가 만료된다. 앞서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의 경우 지난 3월 연임에 성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