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미국과 중국 간 디커플링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우리나라도 수출 시장 다변화의 필요성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오일머니'를 앞세운 중동 국가들이 새로운 수출 시장 후보로 떠오르는 가운데 한국과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새로운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우리나라 수출은 575억2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6%가 증가했다. 이 가운데 중국과 미국은 각각 122억 달러, 104억 달러로 우리나라 주요 수출국 1, 2위를 차지했다. 2010년 이전까지는 대(對)중국 수출 비중이 미국의 2배 이상을 차지했으나 2019년 이후 격차가 점차 좁혀져 현재는 대미 수출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여기에 아세안 지역도 100억5000만 달러를 기록하면서 9대 주요 수출 지역 가운데 미국과 중국, 아세안 3개 지역의 수출액 비중이 56.7%에 이른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가 포함된 중동 지역은 15억3000만 달러로 전체 수출액 대비 2.65%에 불과하다. 이는 독립국가연합(CIS), 인도 다음으로 적은 수준이다. 그동안 사우디와 우리나라의 경제 교류는 플랜트 사업을 위주로 진행됐으나 사우디가 '비전2030'을 통해 탈석유 전략을 펼치는 만큼 친환경에너지와 디지털 전환 사업을 중심으로 교류가 확대되고 있다.
'비전 2030'은 사우디가 경제 다각화를 통해 석유 의존도를 줄이고 국가 이미지 변화를 모색하는 프로젝트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 2030년 리야드 엑스포 개최도 확정한 만큼 빈 살만의 '비전 2030'도 더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사우디와 가장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는 기업은 네이버다. 네이버는 2022년 사우디 정부와 AI 협업을 논의한 이후 주기적으로 교류하며 긴밀합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네이버는 올해 안에 사우디에 중동 총괄 법인을 설립하고 사우디 정부가 조달하는 첨단 사업을 수주할 계획이다.
또 같은 해 11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방한했을 때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 재계 총수들이 총출동해 면담을 진행했다. 2019년에는 빈 살만 왕세자와 5대 그룹 총수가 삼성그룹 영빈관 승지원에서 회동하기도 했다.
국내 대기업들의 이 같은 적극적 공세는 사우디 최대 프로젝트 네옴시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사우디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줄어들고 재정적자가 늘어나면서 네옴시티 규모가 대폭 축소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네옴시티 '더 라인' 수직도시 터널공사를 수주한 상태지만, 추가 수주가 나오지 않으면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네옴시티 프로젝트를 제외하더라도 사우디가 친환경 재생에너지와 e스포츠, 콘텐츠 등 신사업을 모색하고 있어 우리 기업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 9월 사우디 문화부 초청으로 현지를 방문해 문화 산업 시너지 방안을 모색했다. CJ그룹은 최근 사우디 리야드에서 2년 연속 KCON을 개최하고 현지에 CJ대한통운 글로벌통합물류센터를 건설하는 등 다양한 사업영역에서 협력하고 있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중동 국빈방문 당시 이재용 회장과 정의선 회장 등이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하기도 했다. 당시 경제사절단에 참가한 기업은 139개사에 이르며, 대통령실에 따르면 현지에서 체결한 계약만 46건에 이른다.
사업 협력 외에 기술 교류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KAIST는 2013년부터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와 '이산화탄소 연구센터'를 설립하고 이산화탄소와 지속가능한 에너지 기술 개발하고 있다.
양 측이 앞으로 다양한 기후 기술과 이산화탄소 포집·전환 기술, 지속가능한 에너지 기술 등에서 연구개발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만큼 이에 대한 사업화 가능성도 열려있다. 실제로 연구센터는 지난달 아람코가 주관하는 국제 지속가능 화학산업 엑스포인 '켐인딕스'에서 공동 연구성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처럼 에너지와 IT, 콘텐츠 등 다방면에서 협력이 확대되고 있지만, 왕정 국가라는 점과 중동 전쟁 등이 위험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7월 빈 살만 왕세자가 구성한 반부패기구는 자국 왕자 11명과 현직 장관 4명, 전직 장관 10명에 부패 혐의를 적용해 체포하는 이른바 '피의 숙청'을 단행했다.
또 지난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공으로 중동 전쟁이 발발한 가운데 지정학적 위험도 작용하고 있다. 전쟁 우려가 있는 만큼 투자처로 위험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다만 방위산업에 한해서는 매력적인 투자처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난달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사우디 국가방위부 장관과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사우디는 '비전 2030'을 통해 방위 산업의 50%를 현지화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여기에 중국과 사우디가 밀접한 협력관계에 있는 점도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는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실제 지난해 중국의 사우디 직접 투자 규모가 미국의 6.3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사우디는 최근 미국채 보유액이 1440억 달러로 전체 해외 자산의 35%에 이른다. 그동안 바이든 행정부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던 사우디는 이를 바탕으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관계를 개선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제통화기금(IMF)은 사우디의 경제성장률이 올해 1.5%에서 내년 4.6%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내년에는 원유 생산과 출하를 둘러싼 혼란이 수습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중동·중앙아시아 전체 경제성장률도 3.9%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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