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서종열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핵심 국정과제를 반영한 '대규모 감세법(OBBBA·One Big Beautiful Bill Act)'이 지난 4일부터 발효되면서,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전기차 사업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새 법안 시행으로 현대차그룹의 미국 전기차 판매가 연간 최대 2조7000억원(약 19억5500만달러) 규모로 줄어들 수 있다고 20일 경고했다.
특히 OBBBA는 바이든 행정부가 도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포함됐던 전기차 구매 세액공제를 예정보다 7년 앞당겨 조기 종료함으로써, 한국 기업의 미국 내 전기차·배터리 투자에 커다란 불확실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IRA 7년 조기 종료···현대차, 배터리3사 울상 = 한경협이 이날 발표한 '미국 트럼프 대규모 감세법의 자동차·배터리 산업 영향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의 지난해 미국 전기차 판매량 12만3861대 가운데 최대 4만5828대가 감소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는 약 37% 감소한 수치로, 금액으로는 2조7200억원에 달한다.
이 같은 추정은 미국 민간 싱크탱크 전미경제연구소(NBER) 분석을 토대로 한 것이다. NBER은 IRA의 전기차 세액공제가 폐지될 경우, 미국에 생산기지를 보유한 주요 전기차 제조사의 판매량이 최대 37%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대차그룹은 그간 IRA 덕분에 미국 시장에서 전기차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려왔다. 현대차 아이오닉 5·9, 기아 EV6·9, 제네시스 GV70 전동화 모델 등 5개 차종이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되면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OBBBA 발효로 IRA 세액공제가 올해 9월 말 조기 종료되면서, 당초 2032년까지 계획됐던 혜택이 대폭 삭감된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미국 내 전기차 투자의 조기 회수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배터리 업계도 직접적인 타격이 예상된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현재 미국 내 다수의 전기차 업체와 합작 형태로 생산거점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IRA에 기반한 세액공제가 폐지되면, 완성차 업체와의 합작법인 수익성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완성차의 판매 감소는 곧 배터리 수요 위축으로 이어지고, 이는 공장 가동률 저하와 수익성 악화로 직결된다.
한경협 관계자는 "한국 배터리 업계는 미국 내 생산법인에 대한 조세 혜택을 전제로 투자 결정을 내렸던 만큼, 세제 변화에 따라 전략적 재검토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 한경협 "국내 정책기금·세제 혜택으로 선제 대응해야" = 이처럼 글로벌 정책 리스크가 가시화되자, 한경협은 정부 차원의 선제적 재정 지원과 제도 정비를 강력히 주문했다. 핵심은 산업기반 기금 확대와 세제 인센티브 보완이다.
한경협은 우선 산업은행법 개정을 통해 50조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집행할 전담 조직을 산업은행 내에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이 기금을 통해 전기차·배터리 등 핵심 산업에 대한 공급망 투자 및 위기 대응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또한 공급망 안정화 기금의 종료 시한(2029년)을 연장하고, 수출입은행 출연금을 활용한 유연한 기금 운용체계 마련도 촉구했다.
배터리 기업들의 연구개발(R&D) 중심 투자와 관련해서는, 연구·인력개발비에 대한 한시적 직접 환급, 세액공제 환급금 제3자 양도제 도입 등을 통해 세제 혜택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또한 한경협은 이번 보고서에서 글로벌 정책 환경의 불확실성이 심화되는 만큼, 정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전기차·배터리 산업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자리잡기 위해선 정부의 종합적인 정책 지원이 시급하다"며 "기금과 세제 혜택이 결합된 패키지 지원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IRA 수혜 기대감으로 전기차·배터리 생산라인을 미국에 구축한 한국 기업들이 당장 조기 회수 리스크에 직면하고 있다"며 "국내에서 이들을 보호하고 육성할 정책적 방파제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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