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SK그룹이 강도 높은 '리밸런싱'(사업 재편)을 진행하면서 장기 침체에 빠진 배터리 계열사인 SK온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를 부여받았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은 그룹 내 알짜 에너지 계열사인 SK E&S와 합병하고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도약을 모색했으나 1분기에 적자를 기록하면서 '리밸런싱(사업재편)'이 시급해졌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총괄사장으로 선임된 장용호 사장을 중심으로 강도 높은 리밸런싱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장용호 총괄사장은 19일 오전 계열사 전체 구성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타운홀 미팅에서 본원적 경쟁력 강화를 위한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사업재편), 운영 개선(OI), 원 팀 역량 결집 등의 실행 방안을 강력하게 추진하자고 강조했다.
장 총괄사장은 "사업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라며 "실행 가능한 방안을 만들어 빠르게 추진해 나가겠다"며 "성장과 수익성을 기반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적극적으로 재편해 나가겠다"면서 "리밸런싱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을 이끌어 내겠다"고 밝혔다.
배터리 사업에 대해서는 "내실과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며 "단기적으로는 경쟁력 확보가 가능한 영역과 시장에 집중하고, 포트폴리오와 기술 경쟁력을 강화해 글로벌 톱티어 배터리 회사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했다.
당장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사업에 대해 강한 의지를 드러냈으나 시장 상황은 녹록치 않은 편이다. 장기화된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 최근 완화되고 있지만, 수요가 온전히 회복되기에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LS증권에 따르면 SK온이 주력하고 있는 전기차향 파우치형은 시장 성장성이 더디고 주요 고객사인 현대차와 다임러, 폭스바겐 등도 배터리 용량 기준에 정체가 나타났다. 또 전기차 배터리 중에서도 각형 배터리 점유율이 늘어나면서 파우치형은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올해 1분기 SK이노베이션의 실적을 살펴봐도 SK온은 주요 사업부문 중 가장 큰 규모인 299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SK온은 지난해 3분기 잠시 흑자전환에 4분기에 바로 3594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 차입금 규모는 15조5996억원으로 한떄 20조원에 육박했던 것에 비하면 다소 줄었으나 여전히 높은 편이다.
그동안 배터리 사업은 그룹 차원에서도 강하게 드라이브를 건 만큼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졌다. 지난해 말 SK이노베이션과 SK E&S가 합병을 추진한 것 역시 SK온의 차입금 증가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여기에 올해 초 SK온은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SK엔텀과 합병했다. 재무구조 안정화를 위한 그룹 차원에서의 조치로 해석되고 있다.
◇ SK온, 생존 위한 '마지막 기회'···험난하지만 호재도 = 그룹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진 만큼 SK온은 올해가 성과를 증명해야 할 '사실상 마지막 기회'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13~14일 경기도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열린 경영전략회의에서는 AI를 중심으로 한 성장 전략과 그룹 차원의 시너지 방안이 논의됐다.
이처럼 그룹 전체가 AI·반도체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배터리 사업은 내실을 꾀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SK온은 지난해 경영전략회의 직후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하고 임원 연봉 동결과 복리후생 축소에 나섰다. 당시 SK온은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는 지속하겠다고 밝혔으나 올해 CAPEX(시설투자) 규모는 3조5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체급을 줄이고 경영 효율성을 강화하는 와중에도 실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SK온에 대한 매각설이 고개를 들 수 밖에 없다. SK그룹은 우선 매각과 관련해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2028년까지 상장을 목표로 한 만큼 당장 매각에 나서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무구조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일부 생산시설에 대한 매각이 이뤄질 수 있다. 지금보다 공장 수를 줄이는 대신 생산능력에 집중해 사업의 효율화와 내실화를 꾀할 가능성이 있다.
그룹 차원에서는 과거 SK스퀘어 출범 이후 주요 자회사에 대한 연속 상장을 추진했으나 실패한 전적이 있다. 2021년 SK텔레콤에서 분할해 출범한 SK스퀘어는 비(非)통신 기업의 중간 지주사 역할을 하며 자회사의 연속 상장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과 시장 경쟁 악화 등으로 상장이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2023년 보안 자회사인 SK쉴더스의 지분을 68%를 스웨덴 EQT파트너스에 매각하면서 SK스퀘어는 2대 주주로 밀려났다. 이 밖에 상장을 추진했던 11번가, 콘텐츠웨이브, 티맵모빌리티, 원스토어 등 모두 상장이 이뤄지지 않았다. 콘텐츠웨이브는 최근 티빙과 합병이 추진되고 있다.
다행히 배터리 시장의 경우 하반기 개선 조짐을 보이면서 SK온의 흑자전환도 기대되고 있다. KB증권에 따르면 미국 완성차 업체가 신차 출시를 앞두고 있어 SK온의 미국 공장 가동률도 상승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미국 전기차 보조금이 올해까지만 제공되기로 하면서 전기차 구매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밖에 미국 상원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2차 수정안으로 배터리 분야 세액공제가 2033년으로 재조정됐다. 이에 따라 SK온의 예상 수령액도 늘어날 전망이다. 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견제와 맞물려 올해 미국 시장에서 성과도 기대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