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문영재 기자] 제21대 대통령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가운데, 국내 수출산업 전반이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여파로 거센 파고를 맞고 있다. 자동차, 철강, 일반기계, 무선통신기기 등 주력 수출 품목들이 연이어 타격을 입고 있는 상황에서, 새 정부가 협상력을 앞세워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4일 산업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대외 통상 환경의 급변이라는 중대 과제에 직면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수출 감소세가 뚜렷해지며 정부 차원의 시급한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지난 5월 자동차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4.4% 줄어든 62억7000만달러(약 8조6400억원)를 기록했다. 특히 대미 수출이 32%나 급감하면서 전체 감소폭을 키웠고, 자동차 부품 수출도 8.3% 줄어들었다.
산업계는 이 같은 타격이 시작에 불과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월 외국산 자동차에 대해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고, 5월부터는 부품까지 관세 적용 대상을 확대했다. 관세 조치가 장기화될 경우,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완성차 및 부품 업계 전반에 걸쳐 실적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이런 위기 속에 현대차그룹은 미국 현지 생산 확대에 나서고 있다. 기존 앨라배마·조지아 공장의 가동률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최근 준공한 친환경차 공장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연산 규모를 50만대로 확대해 미국 내 판매 물량의 70% 이상을 현지 생산으로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생산라인 전환과 부품 조달 체계 재편에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단기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철강 산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은 지난달 30일 펜실베이니아주 US스틸 공장에서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기존 25%에서 50%로 두 배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해당 조치는 현지시간으로 4일부터 즉시 적용된다.
미국은 한국산 철강의 최대 수출국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대미 철강 수출액은 35억5000만달러(약 4조9000억원)로 전체 수출의 22%를 차지했다. 업계는 관세 인상으로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면 수출 감소세가 본격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이미 5월 수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20.6% 감소했다"며 "하반기 낙폭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반기계 산업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고율 관세로 인한 투자 위축과 수요 감소 영향으로 5월 수출액은 8억7000만달러(약 1조2000억원)로 전년 동월 대비 5.6% 줄었다. 아직 직접 타격은 없지만, 무선통신기기 역시 관세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외국산 스마트폰에 최소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내 생산 거점이 없는 만큼 관세 부과가 현실화될 경우 가격 전략 전면 재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7월 출시 예정인 신제품 가격에 부담이 전가될 경우 시장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
이처럼 산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확산되면서, 이재명 정부의 통상 전략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의 관세 부과는 전략적 협상 카드일 뿐"이라며 성급한 대응보다 유리한 협상 지점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특히 "개별 기업이 각개격파당해서는 안 된다"며 정부-업계 공동 대응을 주문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의 외교통상 보좌관인 김현종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도 "트럼프 1기보다 더 거센 통상 압박이 올 수 있다"며 "정교한 전략과 빠른 판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보좌관은 과거 한미 FTA 협상 사례를 언급하며 "당시 미국의 무리한 요구는 대부분 관철되지 못했고, 오히려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두 배 이상 증가했다"며 새 정부가 통상 주도권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는 정부의 역할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한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이재명 정부가 관세 이슈에서 주도권을 잡고 업계에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길 기대한다"며 "국익을 앞세운 외교가 실질적 산업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