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김완일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정부가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에 사용되는 철강 파생제품에 대해 '최대 5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하면서 국내 가전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국내 주요 가전업체들은 즉각 영향 분석과 대응 방안 마련에 착수했고, 정부도 긴급 회의를 소집해 업계와 공동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지난 12일(현지시간) 연방 관보를 통해 냉장고, 건조기, 세탁기, 식기세척기, 냉동고, 오븐, 레인지, 음식물 처리기 등 10개 이상의 가전제품을 '철강 파생제품'으로 분류하고, 이들 품목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해당 조치는 오는 23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번 고율 관세 부과는 국내 가전업계에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가전제품 원가에서 철강이 차지하는 비중이 30~40%에 달해, 관세 부과 시 제조원가 상승과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올해 들어 수출 부진에 시달리는 국내 가전업계에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국내 가전 수출은 올해 1월부터 5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 중이다. 특히 6월 1일부터 10일까지 가전 품목 수출액은 1억4200만 달러(약 1937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30% 급감했다. 같은 기간 전체 수출이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가전 분야만 유독 부진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관세 인상에 따른 원가 상승은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소비 수요 위축과 수출 감소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KB증권은 이번 관세 부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한국산 가전의 대미 수출 규모를 약 38억4000만 달러(약 5조2354억원)로 추산했다. 이는 전체 대미 수출의 약 2.8%에 해당한다.
문제는 국내 가전업체들의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랙라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 생활가전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매출 기준 점유율은 각각 20.8%, 21.2%로 두 기업의 합산 점유율이 42%에 달한다. 이번 조치로 가격 경쟁력과 수익성 모두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각 미국 현지에 생산거점을 운영 중이지만, 핵심 자재인 철강은 대부분 한국이나 멕시코 등에서 조달하고 있어 관세 회피가 쉽지 않다. 미국산 철강은 아시아산보다 가격이 약 20% 비싸, 현지 조달 확대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더욱이 미국의 철강 자급률은 80%에 미치지 않아 관세로 인해 수요가 몰릴 경우 가격이 더욱 상승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로 인해 미국에서 생산되는 제품마저 관세 부담에서 자유롭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삼성전자는 1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프리미엄 제품 확대와 글로벌 생산 거점의 유연한 운영을 통해 일부 물량의 생산지를 이전함으로써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LG전자는 테네시 공장을 중심으로 세탁기·건조기 생산 물량을 확대해 미국 현지 대응 비중을 10% 후반까지 끌어올리고, '스윙 생산 체제'를 통해 지역별 관세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도 즉각 대응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3일 삼성전자, LG전자 등 주요 가전업체 및 협력사 임원들과 긴급 점검 회의를 개최해 국내외 영향을 진단했다. 산업부는 "가전 품목이 다양하고 품목별로 관세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며 미국의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가전업계 공동대응 TF'를 통해 실효적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생산지 이전, 가격 인상, 미국산 철강 확대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두고 시뮬레이션을 진행 중"이라며 "미국 내 생산을 확대하더라도 관세 부담과 상호보복 관세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대응이 간단치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