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미국과 중국의 관세 전쟁으로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져 가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이 경제 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장기적으로는 미국과 유럽이 경계하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마련할 발판이 될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상황이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국회 미래산업포럼' 발족식에서 한국과 일본의 경제 공동체에 대해 언급했다.
최 회장은 글로벌 산업 환경의 변화에 대해 언급하며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30년 만에 우리의 수출액이 5.5배 증가하는 등 성장의 밑거름이 됐지만, 상품 수출 중심의 성장 모델은 큰 위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통상 환경의 변화와 패권국들의 압박 속에서 일본 등과의 파트너십을 통한 경제 권역의 규모 확대를 아이디어로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일본과 △청정수소 △LNG(액화천연가스) 공동 구매 및 탄소 포집·활용(CCUS) △반도체 제조·소부장 등 분야에서 협력을 제안했다.
최 회장은 "현재로서는 유럽연합(EU) 모델 형태를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며 "한국과 일본이 (경제 공동체 형태로) 병합할 수 있다면, 이것을 아세안의 다른 국가로 더 늘려 나갈 수도 있다"고 전했다.
◇ 대한상의, 일본상의와 84년부터 교류 = 그동안 민간 단위에서 일본과 경제 교류 및 협력은 이뤄졌으나, 정부 차원에서의 교류는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경제인협회는 1983년부터 일본경제단체연합회와 협력을 맺고 매년 한일재계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열린 제31회 한일재계회의에서는 한일 스타트업 협력 포럼이 함께 열렸다. 당시 포럼은 한국 진출을 희망하는 일본 스타트업들이 한국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과 교류하기 위해 마련됐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일본상공회의소와 1984년부터 교류를 이어 오고 있다. 양측은 2023년에 6년 만에 실무자 회의를 개최했다. 한일 상의는 2001년부터 꾸준히 교류해 왔으나, 한일 무역 갈등과 코로나19 팬데믹 등의 영향으로 2018년부터 교류를 중단했다.
지난해 11월에는 한일 상의가 일본 오사카에서 만나 에너지와 공급망, 첨단기술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하고 각 지역 상의 간의 협력 모델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당시 이성우 대한상의 국제통상본부장은 "이번 회의를 계기로 양국 경제계를 대표하는 대한상의와 일본상의가 협력의 시너지를 바탕으로 경제 성장에 기여함은 물론, 한일 관계 개선의 구심점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대한상의는 서울재팬클럽과 간담회를 갖고 반도체, 에너지, 배터리 분야의 협력을 모색하기도 했다. 서울재팬클럽은 1997년에 설립된 한국 내 최대 일본계 커뮤니티로, 1600개가 넘는 법인 및 개인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비즈니스 정책 제언이나 한일 교류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 정부 간 협력 "갈 길 멀다"···역사·국방 등 해결해야 = 이처럼 경제단체 단위의 교류는 이뤄지고 있으나, 정부 차원에서의 교류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경제 분야와 달리 역사나 영토, 국방 분야에서는 위안부 배상 문제나 독도 영유권 주장 등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도 일본이 미국에 한반도와 동중국해, 남중국해를 '하나의 전쟁 구역'으로 통합하자고 제안하면서 파장이 생기고 있다. 이 제안이 성사되면, 한국과 관련 없는 전쟁에 한국군이 참여할 수도 있고, 유사시에는 일본 자위대가 한국에 주둔할 명분도 생길 수 있다.
이 같은 갈등으로 국민적 반발이 거센 만큼, 일본과의 경제 공동체는 자칫 대규모 반발을 유발할 수 있다. 대중문화와 여행 등의 교류는 양국이 활발히 진행하고 있으나, 정치, 경제, 문화 분야에서는 여전히 냉기류가 강하게 흐르고 있다.
또한 한국과 일본이 경제 공동체를 구축할 경우, 중국이 참여하는 동아시아 공동체로 확산될 수 있다. 실제로 세 나라는 지난달 외교장관과 경제통상 장관들이 모여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그러나 세 나라 간에 첨예하게 대립 중인 영토·역사 갈등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난달 22일 일본 도쿄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의 외교장관이 회담을 열었다. 같은 달 30일에는 세 나라의 경제통상 장관들이 서울에서 모여 자유무역협정(FTA) 논의를 재개하기로 했다.
당시 세 나라가 경제 협력을 다짐하며 악수하는 장면은 미국 사회에도 큰 충격을 줬다. 미국 민주당 소속 브라이언 샤츠 상원의원은 세 나라 경제통상 장관들이 악수하는 장면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가 세계를 뭉치게 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우리(미국)에 맞서 뭉치고 있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트럼프 정부의 위협에 맞서 한중일 3국의 협력이 급물살을 타고 있으나, 여전히 숙제는 남아 있다. 앞선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북핵 문제에 대해 3국 간 온도차가 있었고, 추후 제기된 영토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이 서해 잠정조치수역(PMZ) 내에 무단 구조물을 설치해 한중 간 갈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해당 구조물에 대해 중국 정부에 항의하는 한편, 논의를 지속하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