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freepik)
(사진=freepik)

[서울파이낸스 이도경 기자] 6월 치러질 제21대 대선을 앞두고 여야 주요 대선 주자들이 잇따라 인공지능(AI) 산업 육성을 위한 대규모 투자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투자 규모만 100조~200조원에 이르는 거대한 구상들이지만, 정작 전문가들은 "구체적 실행 방안과 인재 확보 대책은 빈약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최근 "AI 투자 100조원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국가 주도의 대규모 투자를 통해 'AI 기본사회'를 구축하고, 국민 누구나 선진국 수준의 AI를 무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위원회를 강화해 대통령이 직접 기술, 연구, 투자 기업, 정부 협력 등을 챙기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 후보는 또 GPU(그래픽처리장치) 5만개 이상을 확보하고, AI 전용 반도체(NPU) 개발을 지원하는 국가 차원의 인프라 확대를 약속했다. 지역 거점 대학에 AI 단과대학을 설립해 석·박사급 인재를 대거 양성하고, 공공 데이터 개방과 국제 협력 확대도 공약에 담았다.

민주당 경선 후보인 김동연·김경수 후보도 5년간 100조원 투자 공약을 내놨다. 김동연 후보는 GPU 100만개 확보와 AI 핵심 인재 100명 집중 양성, 김경수 후보는 민관 공동 투자와 한국형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을 약속했다.

국민의힘 후보들도 질세라 대규모 투자 계획을 경쟁적으로 내걸었다. 한동훈 후보는 "AI 산업에 200조원을 투자해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AI 인프라 조성에 150조원, 데이터센터·컴퓨팅·반도체 등 AI 생태계 조성에 50조원을 투입하는 방안이다.

김문수 후보는 100조원 투자로 AI 청년 인재 20만명을 양성하고, 전국에 AI 스타트업 빌리지를 조성하겠다고 공언했다. 홍준표 후보는 AI·양자·초전도체 등 초격차 기술 분야에 5년간 5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안철수 의원은 구체적 투자 규모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AI를 반도체, 미래 모빌리티, 바이오, K-서비스와 함께 5대 초격차 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공약했다. 과학기술 인재 100만명 양성, GDP 대비 R&D 투자 비중 5% 달성, 20조원 규모 K-스타트업 펀드 조성 등이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야 대권후보들의 '천문학적 공약'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다. 당장 정부의 연간 R&D 예산이 약 30조원, 지난해 민간부분에서의 AI 투자액이 1조8500억원 수준에 불과한 현실을 감안하면, 후보들이 내건 100조~200조원 투자 계획은 현실성이 낮다는 지적이다.

최병호 고려대 교수는 "지금까지는 AI 육성을 시장 논리에 맡겨왔지만, 민간 투자만으로는 성과를 내기 어려운 한계가 명확해졌다"며 "이제는 공공이 과감하게 자원을 투입해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 교수는 "정작 중요한 것은 인재 확보인데, 이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이 대부분 부재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AI 기술이 가속적으로 팽창하는 상황에서 인재를 확보하지 못하면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효과를 보기 어렵다"며 "단순히 관련 학과를 신설하거나 장학금을 늘리는 식의 접근으로는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AI 인재에 대한 파격적 대우, 예를 들어 의사 수준 이상의 사회적 보상 체계를 구축하거나, 전면 무상교육·병역 혜택 등 전방위적 인센티브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미국 스탠퍼드 AI 연구소가 발간한 '글로벌 AI 인덱스 2025'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민간 AI 투자 규모에서 주요 선진국 대비 한참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의 투자 확대를 견인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지원책 없이 단순한 재정 투입만으로 글로벌 AI 경쟁에 뛰어드는 것은 위험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규모 투자 공약이 표심을 자극하는 데는 성공할지 몰라도, AI 강국으로의 도약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이루려면 훨씬 더 촘촘하고 현실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문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서울파이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