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박소다 기자)
서울 한 대형마트에 오뚜기 라면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사진=박소다 기자)

[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정부가 탄핵정국으로 물가 관리에 총력을 쏟지 못하는 가운데 식품·외식업체들이 제품 가격 줄인상에 나서고 있다.

이달에만 수십 개 기업이 가격 인상을 단행하며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쳤다.

경영 제반 비용이 오르면서 수익성 제고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업계 일부에서는 소비자 설득 없이 가격만 올리면 가뜩이나 위축돼 있는 소비 심리가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오뚜기는 다음달 1일부터 27개의 라면 제품 중 16개의 제품 출고가를 평균 7.5% 인상한다. 주요 제품 가격은 대형마트 판매가 기준으로 △진라면 716원→790원(10.3%) △진라면 용기 1100원→1200원(9.1%) △짜슐랭 976원→1056원(8.2%) △오동통면 800원→836원(4.5%)으로 오른다.

앞서 농심도 지난 17일부로 신라면을 비롯한 라면 14개 브랜드의 출고가를 평균 7.2% 올렸다. 주요 제품 가격 인상률은 △신라면 5.3% △너구리 4.4% △안성탕면 5.4% △짜파게티 8.3% △새우깡 6.7% △쫄병스낵 8.5% 등이다.

두 기업은 라면 원가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수입 팜유와 전분류, 스프 원료 등의 가격이 올랐고, 평균 환율과 인건비 등 생산 제반 비용이 상승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격 인상을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비슷한 라면 제품을 취급하는 팔도와 삼양식품은 아직 가격 인상을 단행하지 않았다. 팔도는 "가격 인상을 검토 중"이라 했고, 삼양식품은 "현재로선 가격 인상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라면뿐 아니라 가공식품을 취급하는 식품기업들과 외식기업들은 지난해 말부터 제품 가격을 올리는 분위기다. CJ제일제당은 이달 비비고 만두 20여 종과 스팸 가격을 올렸고, 맥도날드는 20일부터 20개 메뉴 가격을 100~300원씩 올린다. 지난달엔 롯데웰푸드가 빼빼로(1800원→2000원)를 포함한 과자와 아이스크림 26종의 가격을 평균 9.5% 인상했다.

롯데아사히주류가 취급하는 아사히 맥주 가격은 이달부터 최대 20% 뛰었고, 커피 프랜차이즈 스타벅스, 할리스, 폴바셋 등도 지난 1월 가격 인상에 동참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먹거리 물가에는 비상이 걸렸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올해 2월 가공식품 물가는 전년 대비 2.9% 오르며 1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외식 물가도 3.0% 올랐다. 전체 물가를 0.43%포인트(p)나 끌어올렸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인 점을 고려하면 외식 물가가 소비자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것을 알 수 있다.

일부 소비자단체에서는 원재료가 인상 탓 외에도 탄핵정국으로 정부의 물가 관리가 느슨해진 틈을 타 기업들이 가격 인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재작년 부서별 물가 담당자를 지정하며 연일 가격 인상에 압박을 가했고,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추경호 당시 경제부총리가 직접 라면 제조기업에 압박을 가하자 당시(2023년 7월) 농심은 신라면, 새우깡 등의 제품 가격을 일제히 인하했다. 이에 경쟁사 삼양식품도 12개 제품값을 평균 4.7%, 오뚜기도 15개 라면 가격을 평균 5% 내렸고, 다른 식품기업들도 물가 안정에 동참하기 위해 일제히 제품가를 낮췄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부의 리더십 공백으로 가격 인상 계획을 정부에 통지만 하면 되는 수준으로 약해지면서, 업계가 가격인상에 나서고 있는 것.

실제로 이번 가격 인상에 동참한 기업 중에서는 원가율(제품 내 원자재값 비율)이 되려 개선된 기업도 있다. 각 기업의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롯데웰푸드는 지난해 원가율이 70.4%로 전년보다 1.7%p 줄었고, 빙그레 원가율은 68%로 같은 기간 0.4%p 하락했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원가율이 71.3%로 전년 73.0%보다 1.8%p 하락했다. 다만 CJ제일제당은 바이오부문과 함께 집계되기 때문에 수익성이 개선된 것처럼 보일 뿐, 식품 부분만 따로 보면 원가율이 낮아졌다는 설명이다.

가격 인상으로 인해 소비 심리는 더 위축될 가능성이 높지만, 기업들의 단기 매출은 개선될 여지가 있다. 식품기업들의 증권을 취급하는 관계자들도 가격 인상에 대해 대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식품사 관계자는 "가공 식품 제조 기업은 대부분 소비자에게 직판매하지 않고 유통 업체와 계약을 맺고 납품하다 보니 계약된 제품 수대로 출고가만 높아지면 매출이 즉시 오르는 효과를 본다"며 "또 외식 물가가 워낙 높아 여전히 저렴한 수준인 가공 식품의 인기를 대체하기 어려워 인상된 제품가에도 익숙해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적극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코코아 가공품 등 6개 품목을 포함 총 20종 식품 원료에 대해 할당관세와 구입 비용 등을 지원하며 기업들의 경영 부담을 완화하고 있다.

또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과 박범수 차관은 지난달부터 34개의 식품기업을 만나 물가 안정 협조를 구하는 행보에 나서고 있다. 이달 11일에도 박 차관이 롯데칠성음료·롯데웰푸드 현장을 방문했다.

이 외에도 정부는 할당관세 적용이 실제로 기업들의 원가 부담을 얼마나 줄였는지 분석할 계획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고한 수입 농산물 관세 관련해서도 예의주시하며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박범수 차관은 "정부가 가격 인상을 강제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소비자를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지원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한 인상이라면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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