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미국을 상징하는 동시에 대표적인 종합반도체기업(IDM)인 인텔이 공중분해될 위기에 직면했다.
반도체 산업이 세분화되고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IDM의 생존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이에, 세계 최대 규모의 IDM인 삼성전자의 향후 전략과 앞날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1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브로드컴이 인텔의 칩 설계 및 마케팅 사업 부문에 대한 인수를 검토하고 비공식 입찰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실제 제안이 이뤄지진 않았지만, 조건이 갖춰진다면 제안에 나설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앞서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정부가 대만 TSMC에 인텔 미국 공장 지분 일부 인수를 요청했다고 전했다. 대만 현지 매체는 이와 함께 미국 정부가 TSMC에 인텔 파운드리 사업부(IFS)의 지분 일부 인수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이와관련 반도체 업계에서는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인 인텔을 살리기 위해 TSMC에 지원요청을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TSMC의 경우 인텔 인수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주요 국가 경쟁당국의 승인이 필요한 만큼 실제 성사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업계 반응이다. 다만, 그만큼 인텔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인텔의 부진에 대해서는 조직 혁신의 실패와 기술 확보 부진이 표면적인 이유로 꼽힌다. 그러나 AI 반도체 수요 확대 이후 반도체 산업이 커지면서 설계와 제조, 패키징을 모두 수행하는 IDM이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게 주된 이유로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은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가 제조를 맡길 수 있어야 하는데, 팹리스와 파운드리를 겸하는 IDM은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를 가질 수 있어 TSMC와 같은 파운드리 전문 기업으로 고객사가 몰린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실제로 현재 반도체 업계에서 고공성장 중인 TSMC와 엔비디아는 각각 파운드리와 설계·제조·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다.
이 때문에 사실상 '마지막 IDM'인 삼성전자의 향후 행보에도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해 8월 인텔이 파운드리 분사를 선언했을 때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분사 가능성도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해 10월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파운드리 사업의 분사 가능성에 관심없으며, 사업을 성장시키고 싶다"며 일축했었다.
이후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분사나 철수 대신 투자 규모를 줄이고 기술 고도화에 나섰다.
지난해 삼성전자 DS부문 연간 시설투자액은 46조3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 같은 투자는 메모리는 미래 기술 리더십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비 집행과 HBM 등 첨단 공정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투자에 집중됐다. 반면 파운드리 사업은 투자 규모가 줄어들었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사장단 인사에서 파운드리사업부 CTO(최고기술책임자)를 신설하고 남석우 사장을 임명했다.
남 사장은 반도체 공정개발 및 제조 전문가로 반도체연구소에서 메모리 전제품 공정개발을 주도했다. 메모리·파운드리 제조기술센터장, DS부문 제조&기술담당 등의 역할을 수행하며 선단공정 기술확보와 제조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다.
또 신임 파운드리 사업부장에는 한진만 DSA총괄 부사장을 승진·임명했다.
한 사장은 D램·플래시 설계팀을 거쳐 SSD개발팀장, 전략마케팅실장 등을 역임했으며 2022년말 DSA총괄로 부임해 미국에서 반도체 사업을 맡았다. 기술전문성과 비즈니스 감각을 겸비했고 글로벌 고객대응 경험이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삼성전자는 한 사장을 통해 미국 내 고객사 확보와 기술 경쟁력 강화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파운드리 사업부 전열 재정비와 함께 삼성전자는 전영현 DS부문장이 메모리사업부를 직접 챙기며 본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또 DS부문 내 경영전략담당을 신설하고 조직 재정비에도 나서기로 했다. 경영전략담당은 삼성전자 미래전략실과 사업지원TF를 거친 김용관 사장이 맡는다.
이처럼 대대적인 체질개선과 전략 수정을 꾀하고 있지만, 시장 상황은 녹록치 않다.
증권가에서는 지난해 4분기 HBM을 앞세운 SK하이닉스가 D램 매출에서 삼성전자를 따라잡았다고 보고 있다. 그동안 삼성전자가 반도체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게 D램 덕분인데 이제 그마저도 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삼성전자 DS부문 영업이익은 15조1000억원으로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23조4673억원보다 크게 뒤쳐졌다.
업계 관계자는 "AI 기술의 발전에 따라 시장의 요구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팹리스와 파운드리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됐다"며 "첨단 공정 확보와 수율 개선으로 시장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IDM의 몰락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