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건설현장 (사진=서울파이낸스DB)
서울의 한 건설현장 (사진=서울파이낸스DB)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지난해 상반기만 견디면 나아질 거라던 건설경기가 시간이 갈수록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새해 상반기까지 건설경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며 시공 능력 평가 상위 10대 건설사들은 한껏 몸을 움츠리고 있다. 이들은 내년에 분양을 올해보다 30% 가까이 줄일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R114에 따르면 10대 건설사의 내년 분양계획 물량은 10만7612가구로 집계됐다. 이는 올해 분양했던 15만5892가구의 69% 수준이다.

10대 건설사의 분양계획을 보면 분양을 올해보다 축소한 곳이 6곳으로 가장 많았다. 또 유지한 곳은 3개사, 늘리기로 한 곳은 1곳으로 집계됐다. 내년 아파트 분양 물량 중 자체 사업(도급 포함)은 53%(7만7157가구), 정비사업(리모델링 포함)은 47%(6만8973가구)로 집계됐다.

특히 내년에는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분양 물량이 감소할 전망이다. 올해 대부분의 정비사업장이 분양하며 물량이 소진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내년 1000가구 이상 분양되는 대규모 정비사업은 서울에서 서초구 방배동 래미안원페를라(1097가구)가 유일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도도 고양 원당 더샵포레나(2601가구), 의왕 고천나 재개발(1913가구), 딸기원2지구 재개발(1096가구) 정도만 예정돼 있다.

부동산R114 관계자는 "2025년 아파트 분양시장은 단순한 경기 변동을 넘어, 정책적, 경제적, 구조적 이슈가 복합적으로 얽혀 역대 최저 물량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입주 물량의 부족과 함께 분양시장이 장기 침체의 기로에 놓였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처럼 건설사들이 몸을 움츠리고 분양 물량을 축소하는 데는 올해와 마찬가지로 내년에도 건설경기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건설업 불경기의 원인으로는 원자재값과 인건비 상승, 고금리와 대출 규제 등이 꼽힌다.

건설공사비지수(2020년=100)는 2019년 10월 98.73이었는데 2021년 10월 116.79까지 상승했으며 올해 10월에는 130.32로 최고치를 찍었다. 4년 전에 비해 공사비가 30% 이상 올랐다는 뜻이다.

또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현실화와 계엄·탄핵 정국의 불확실성이 맞물려 나타난 고환율 장기화는 건설업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달러 강세는 일부 대형 건설사에는 해외 프로젝트 환차익 상승으로 호재가 될 수 있지만, 국내에선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오르며 공사비 상승을 초래한다.

물가를 끌어올려 금리 인하가 지연되면 환헤지 여력이 없는 건설사들은 불황을 벗어나기 더 힘들어진다. 건설사 이자보상비율은 2020년 3분기 577.99%에서 올해 3분기 205.35%로 수직 낙하했다. 해당 비율이 낮을수록 영업이익으로 이자 등을 부담하기 버겁다.

이에 따라 대형 건설사들 대부분 내년도 업황도 악화할 것으로 보고 보수적인 경영 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수도권 중에서도 입지적으로 사업성이 우수한 곳을 중심으로 선별 수주 전략을 강화하는 한편, 신기술 개발 및 신사업 투자를 확대하면서도 '내실 다지기'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A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올해와 마찬가지로 내년에도 불황이 이어질 것으로, 경기가 단기간에 회복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어서 선별 수주 등 보수적으로 사업 계획을 잡고 있다"면서 "원가가 많이 오른 상황에서 재개발·재건축 사업도 많이 안 나올 것이며 모듈러 사업을 비롯, 해외 토목이나 플랜트 등 인프라 공사와 같은 비주택 사업에 보다 집중해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전략을 가져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B 대형 건설사 관계자도 "올해 예년보다 빠르게 사업 목표를 구축하고 조직 개편을 단행할 것으로, 내년 초까지 불황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면서 "올해 분양 공급 기준 1만8000세대 목표를 겨우 부합했는데, 내년은 목표치를 하향해 1만4000세대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C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금리와 고환율, 자잿값 상승과 더해 집값 회복세도 더딘 가운데 탄핵 정국까지 여러 불확실성이 큰 만큼 내년 경기도 보수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면서 "입지를 볼 때도 사업성 있는 곳을 중심으로 선별 수주에 나서는 한편 해외 사업에서 대안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 다만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존하기 때문에 해외 사업도 돌파구가 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내년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건정연)이 최근 '2025 건설·주택 경기 전망 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새해 건설투자는 전년 대비 1.2% 감소한 300조 원을 하회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 근거로는 민간 부문에서 2022~2023년간 부진했던 건축 착공 실적의 시차효과로 상반기 건설투자 감소세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토목 부문은 보합세를 유지하겠으나, 건축 부문의 경우 주거용과 비주거용 모두 각각 2% 내외의 감소세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도 유사한 분석을 내놨다. 2022년과 2023년에 걸쳐 나타난 건축 착공 감소가 지난해 하반기는 물론 2025년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건산연은 "2023년 수주가 대폭 감소(-16.8%)한 206조7000억원을 기록, 민간에서만 50조원 가까이 감소했고, 건축 착공 면적 또한 대폭 감소해 서울시 면적 8분의 1가량이 줄었다"며 "부진 여파가 올해 상반기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새해 건설경기가 회복되려면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건정연은 "새해 하반기 이후에는 고금리 및 고물가 완화 추세, 신도시 재건축·재개발 효과로 감소폭이 완화될 것인 만큼 2025년 하반기, 늦어도 2026년 상반기에는 회복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 기대된다"며 "다만 건설투자의 약 80%를 차지하는 민간 건축 부문의 부진 자체는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바, 건설경기 회복을 위해 정부의 역할과 지원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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