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대국민 담화를 내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12일 대국민 담화를 내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국내 정계가 탄핵 정국에 접어든 가운데 경제계에서도 코리아 패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보편 관세'를 예고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있지만, 이에 대해 대응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 1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35차 한미재계회의'는 비교적 엄중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사전에 예정된 리셉션 행사는 취소됐으며 참석자들은 미국 정재계 주요 인사와 접촉하며 위기 대응에 집중하는 분위기였다. 행사를 주최한 한국경제인협회 관계자는 "리셉션은 행사가 열리기 전 만찬 성격으로 현지 사정에 따라 조율될 수 있다"며 "이를 제외하면 한미재계회의는 성공적으로 치러졌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서 한국과 미국 재계 리더들은 △한미 FTA 준수를 통한 경제협력 강화와 △주요 산업 공급망 복원 △강력한 기술동맹 구축 △제약·바이오·의료기기 산업 성장 위한 생태계 구축 △에너지 안보 강화와 저탄소 경제 전환 촉진 등을 공동선언문으로 채택했다. 

김봉만 한경협 국제본부장은 "트럼프 2기 출범 대비 한미 경제협력의 중요성과 미국 경제에 대한 한국기업들의 기여도를 미국 의회 및 정부 측에 널리 알리고 이해시킬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미국의 오피니언 리더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이라며 "이런 차원에서 한경협은 우리 기업과 한국경제의 불이익을 최소화하고 미국과의 비즈니스 협력 기회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최선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회의는 양국의 협력을 강화하는 선언문을 채택하며 성공적으로 치러졌으나 기업 관계자들은 정치권의 탄핵 정국이 기업활동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계 관계자는 "M&A가 미뤄지고 비즈니스 미팅이 취소되고 있다"며 "현재 정책이 차기 정부에서도 이어질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투자를 추진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1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미국상공회의소에서 개최된 ‘제35차 한미재계회의 총회’에서 댄 설리번 상원의원(왼쪽)이 에반 그린버그 미한재계회의 위원장(오른쪽)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인협회)
1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미국상공회의소에서 개최된 ‘제35차 한미재계회의 총회’에서 댄 설리번 상원의원(왼쪽)이 에반 그린버그 미한재계회의 위원장(오른쪽)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인협회)

이 같은 '코리아 패싱' 우려는 지난 3일 비상계엄령 선포 이후 불거졌다. 바이든 정부의 국방부 장관인 로이드 오스틴은 마지막 아시아 순방에서 일본만 방문한 후 한국은 들르지 않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로이드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첫 번째 탄핵 시도가 무산된 이후에도 "한국의 민주적 제도와 절차가 완전하고 적절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계속 촉구할 것"이라고 압박한 바 있다. 

또 계엄령 발표 직후 베단트 파텔 미 국무부 수석대변인은 "계엄령의 발동과 그러한 조치가 개인의 권리와 자유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확실히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라며 "우리가 한국과 맺고 있는 파트너십은 태평양 양국의 특정 대통령이나 정부를 초월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의 계엄령에 대한 이 같은 우려는 내년 1월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체제에서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6년 트럼프 1기 행정부 인수위원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당시 "죽은 권력은 상대하지 않는다. 다음 정부와 대화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14일 국회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둔 가운데 탄핵안이 가결되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안을 통과하더라도 차기 정부는 내년 3월 이후에야 갖춰질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사실상 차기 정부 출범 전까지 우리나라는 외교무대에서 고립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결국 이런 상황들이 우리 경제계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선거운동 기간 중 10% 보편 관세 부과를 강조해왔다. 이 같은 정책이 시행될 경우 현대차·기아는 영업이익이 최대 19%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또 우리나라 수출이 최대 443억달러(약 63조원) 줄어들 수 있으며 다른 수출 통로를 찾지 못한다면 국내총생산(GDP) 역시 최대 0.67% 떨어질 수도 있다. 

경제계에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와 사전 협상을 통해 관세를 면제받는 활동을 펼쳐야 하는데 국내 정계가 탄핵 정국에 이른 만큼 협상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한국은 대미 주요 무역흑자국 중 하나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통상압박에 주요 타겟이 될 수 있다. 

또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 대선에서 여유있게 당선된 만큼 경제통상 어젠다를 빠르게 밀어붙일 수 있어 우리 정부는 사실상 대응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통상교섭본부장 출신인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예상과 달리 레드 웨이브를 몰고 오며 낙승함에 따라, 제2기 행정부의 경제통상 어젠다는 취임 100일 이내에 강력하고 속도감있게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며 "무역적자 축소, 제조업 부흥, 미중 패권경쟁 우위 확보라는 3대 목표 하에 관세 등 통상정책을 핵심수단으로 사용해 '아메리카 퍼스트' 비전 실현을 위한 드라이브를 걸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한편 재계 일각에서는 대미 무역뿐 아니라 대중 무역에 대해서도 냉기류가 흐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2년 이상 한국 내 군사시설들을 촬영한 중국인 3명이 최근 적발된 일과 지난달 드론으로 국가정보원을 촬영하다 붙잡힌 40대 중국인 사례를 들며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 형법의 간첩죄 조항을 수정하려 했지만, 거대 야당이 완강히 가로막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말을 아낀 중국 정부는 윤 대통령의 이날 담화 이후 즉각 논평을 내고 항의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 측이 내정 문제를 중국 관련 요인과 연관 지어 이른바 중국 간첩이라는 누명을 꾸며내고 정상적 경제·무역 협력을 먹칠하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이는 중한 관계의 건강하고 안정적인 발전에 이롭지 않다"고 밝혔다. 

또 윤 대통령이 담화문 중 "중국산 태양광 시설들이 전국 산림을 파괴할 것"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마오 대변인은 "중국의 녹색 산업 발전은 세계 시장의 수요와 기술 혁신, 충분한 경쟁의 결과"라고 반박했다. 

현재까지 논평 이후에 추가 움직임은 없다.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한 같은 날에는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과 리페이 중국 상무부 부부장이 한중 통상당국 고위급 회담을 열고 양국의 성과를 점검하고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통상당국 간 협력을 통해 글로벌 통상환경의 불확실성 증대 속에서도 양국 간 교역이 증가하고 공급망이 안정적으로 관리됐다"며 "내년에도 교류와 협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다만 재계에서는 어렵게 개선된 한중 관계에 다시 냉기류가 흐를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기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은 우리 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요 시장"이라며 "이들 시장에 악재가 생긴다면 우리 경제 전체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빠르게 국내 정치권 상황이 수습되고 외교무대에서 성과를 보여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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