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학계 "금융감독체계, '규정'에서 '원칙' 중심으로 전환"
금융당국-학계 "금융감독체계, '규정'에서 '원칙' 중심으로 전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은행법학회, 22일 금융감독체계 현황·개선과제 세미나
2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은행법학회 주관 '금융감독체계 현황과 개선과제'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행연합회)
2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은행법학회 주관 '금융감독체계 현황과 개선과제'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행연합회)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디지털화로 금융산업에서도 다양한 업종 간 경계가 사라지는 '빅블러(Big Blur)' 현상이 빨라짐에 따라 국내 금융감독체계를 '규정중심'에서 '원칙중심'으로 전환해 환경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세하게 규칙(규정)으로 이뤄진 현행 금융규제 하에서는 새로운 금융기술과 플레이어(Player)를 감독하는데 한계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산업 육성을 가로막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원칙중심 규제를 통해 복잡다기한 기존 규제를 단순화하고, 금융기관의 자율성과 책임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은행법학회가 2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개최한 '금융감독체계 현황과 개선과제(원칙중심 감독체계로의 전환 가능성에 대한 논의)' 세미나에서는 '규정중심'의 국내 금융감독체계를 '원칙중심'으로 전환해 감독·제재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규정중심규제는 규제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금융회사가 준수해야 할 구체적 행위 기준을 세세하게 제시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원칙중심규제는 규제목적 달성을 위한 큰 원칙만 제시하고 구체적인 행위 기준은 각 금융회사가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도록 한다.

현재 국내 금융감독체계는 규정중심을 따른다. 그러다 보니 기존 규정에서 벗어난 새로운 플레이어나 서비스가 나타났을 때 유연하고 탄력적인 대응이 불가능했다. 금융회사들이 디지털금융에 맞는 신상품이나 신서비스를 영위하고 싶어도 이를 감독할 수 있는 규정이 없는 탓에 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기 쉽지 않았다. 감독·제재 주체인 금융당국 입장에서도 규정을 벗어나는 서비스에 대한 인허가 판단을 내리기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김자봉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보비대칭성을 특징으로 하는 금융시장에서 모든 가능한 경우의 수를 법규정에 담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원칙중심 도입은 필수적"이라며 "원칙중심 도입이 규정중심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고, 규정과 원칙이 합리적으로 상호보완하고 자율과 책임이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원칙중심규제의 지향점"이라고 설명했다.

또다른 발제자인 최승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규정중심에 따라 과도하게 보수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금융업 진입규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진입규제 요건에 대한 법령상 규정도 과도하게 하위규범에 위임하기보다 본질적 사항에 대해서는 상위규범에서 정해 예측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며 "진입규제를 인허가제, 등록, 신고제 등 본래 의미에 맞도록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금융감독·제재 주체인 금융당국도 같은 맥락에서 현재의 규제 패러다임을 큰 틀에서 '원칙중심'으로 바꿀 시점이 왔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연준 금융위원회 은행과장은 "기존의 법령체계는 아날로그적으로 이뤄져있는데 금융산업의 디지털전환이 급격히 이뤄지면서 현행 규정을 곧이곧대로 적용했을 때 문제점이 발생하는 측면이 있다"며 "그런 차원에서 새로운 규제체계의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 과장은 "현재 금융규제 체계는 은행, 보험 등 업권별로 규제하는 업권법과 지배구조, 금융소비자보호 등 기능별로 규제하는 기능법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 두 규제를 조화롭게 운영하는 게 감독당국 입장에서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소비자보호, 건전성 유지 등 만고불변의 원칙만 제시할 수는 없지만 원칙중심주의가 (현행 규제의) 보완적 측면에서 조화롭게 전개될 필요가 있고, 현재의 복잡다기한 금융규제들도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훈 금융감독원 수석조사역도 "금융환경이 변화하면서 감독당국은 규정이 없어 제재를 못하거나 혹은 규정상 제재해야 하지만 상황상 제재하기 어려워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며 "현재의 규정중심 풍토를 한번에 바꾸긴 어렵고, 규정 위반이 발견되더라도 규제목적을 훼손했는지 여부를 놓고 제재하는 방법, 세세한 규정은 없지만 규제목적을 훼손했는지를 보고 제재하는 방법을 감독집행 과정에서 먼저 시작해보고, 이후 규정을 점진적으로 (원칙중심으로) 바꿔나가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했다.


관련기사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