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마통' 부활했지만···은행권 확산은 시기상조
'억대 마통' 부활했지만···은행권 확산은 시기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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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농협은행·케이뱅크, 한도 복원
국민·신한·우리은행 "확대 계획 없어"
한 은행의 대출 창구 (사진=서울파이낸스DB)
한 은행의 대출 창구 (사진=서울파이낸스DB)

[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일부 은행에서 '억대 마이너스통장(마통)'이 부활한 가운데, '마통 한도 복원' 조치를 두고 은행권 내 시각이 엇갈린다. 새해 들어 '대출총량 리셋' 등으로 대출 여력이 늘어난 만큼 한도를 다시 유연하게 책정하는 은행이 있는가 하면, 나머지 은행은 아직까지 한도 재조정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들은 일단 실수요자 대출에 중점을 두고 여신 포트폴리오를 운영하겠다는 방침이다. 가계부채 정상화 고삐를 당기겠다는 금융 당국의 스탠스가 여전하다는 점에서 투기적 수요가 많은 마통의 한도는 당분간 확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새해 들어 마통 한도를 되돌린 곳은 하나은행과 NH농협은행, 케이뱅크 등이다. 하나은행은 지난달 25일부터 8개 마이너스통장대출의 한도를 정상화했다. 급여통장플러스론과 전문직 전용 신용대출 등 8개 주요 신용대출 상품이 대상으로, 하나원큐신용대출의 경우 마통 한도가 5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늘어났다.

지금까지는 금융당국의 신용대출 축소 권고에 따라 연소득과 상관없이 마통을 최대 5000만원 한도로만 뚫을 수 있었지만, 한도 복원 조치로 연소득이 2억원인 고소득자라면 1억5000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도 지난달 마통 대출 한도를 종전 1억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늘렸다. 앞서 농협은행은 지난달 3일 마통 한도를 5000만원으로 복원했다. 지난해 11월 신용대출과 마통을 합쳐 총 2000만원으로 한도를 끌어내린 지 2달여 만이다.

이들 은행은 가계대출 급증으로 한도 축소가 불가피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강화 등으로 효율적인 가계대출 운용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 강화로 투기수요가 감소한 데다 가계대출 급증세를 막아줄 차주별 DSR 규제가 시행되는 만큼, 대출을 필요로 하는 고객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판을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다만 이런 판단은 일부 은행에서만 작용한 모양새다. KB국민·신한·우리은행은 여전히 "마통 한도 변경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당초 금융권 안팎에서는 하나은행을 시작으로 다른 은행 역시 한도 확대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으나, 가시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없는 상황이다.

마이너스통장 한도 복원과 관련해 은행들 사이에서 전략이 엇갈리는 것은 마통이 투기적 수요가 많다는 판단에서다. 마통은 투기적인 목적에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당국이 은행권에 가계대출 증가율을 작년(5~6%)보다 낮춘 4~5%대로 제시한 터라 굳이 한도를 복원할 이유가 없다는 게 대다수의 반응이다.

실제 지난달 18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LG에너지솔루션(LG엔솔) 공모주 청약 당시 5대 시중은행에선 신용대출이 7조원가량 증가하기도 했다. 청약 마감 후 대부분 자금이 회수됐으나, 대부분 마통을 개설해 빌려간 자금이다.

A은행 관계자는 "여신 포트폴리오 내에서 마이너스통장 비중을 늘릴 필요가 있는 은행들은 적극적으로 한도를 늘리겠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굳이 한도를 복원할 필요가 없다"며 "당국에서 가계대출에 대해서는 실수요 위주로 접근하라는 게 최근 트렌드여서 (마통 한도 축소는) 이런 시그널을 받아들이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기회 비용 측면에서도 은행권 입장에선 마이너스통장 한도 정상화가 부담으로 여겨진다. 예컨대 1억원 한도의 마통을 직장인에게 내줬는데 1년 내내 1000만원도 안 썼다고 가정할 경우 이자는 적게 나오는 반면, 나머지 9000만원의 기회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고객이 돈을 꺼내 쓰지 않더라도 은행은 해당 금액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돈이 묶이게 되는 셈이다. 

B은행 관계자는 "마통은 전체 여신한도 내에서 사용잔액이 높지 않은데, 대출 총량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의 마통은 그만큼 기회비용을 잃게 된다는 의미"라면서 "한도를 줄인 이후에 고객 민원도 많지 않기 때문에 현재로선 한도 복원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한도 정상화 흐름이 당장 은행권 전반으로 확대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보는 분위기다. 하지만 고객 확보 경쟁 차원에서 이 흐름에 동참하는 곳이 나올 여지도 있다. 총량 관리에 공을 들이면서도 일부 은행이 시행하는 대출 조건 변화를 마냥 무시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올해 들어서 신용대출 수요가 감소했기 때문에 대출 한도를 억지로 제한할 필요가 없어졌다"면서 "고객을 확보하고자 타 은행처럼 한도를 정상화하자는 내부 의견이 나온다면 각자 대출 성장 추이에 따라 언제든지 한도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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