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사회관습과 문화를 바꾸는 '중대재해처벌법'
[전문가 기고] 사회관습과 문화를 바꾸는 '중대재해처벌법'
  • 이은형 문화칼럼니스트,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
  • eunhyung@ricon.re.kr
  • 승인 2021.03.26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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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작 영화인 '레인메이커'는 신참변호사들이 보험가입자가 보험금을 지급받기 어려운 상품을 대량으로 불완전판매한 보험사를 상대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승소를 앞둔 이들에게 상대방 로펌은 협상안을 제시한다. 내용은 만약 법원에서 거액의 배상액이 책정된다면 보험사가 파산해서 당신들에게 돈을 지급할 수 없으니, 그 전에 자신들과 거액으로 합의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해당 보험사가 불완전판매 등을 지속해 유사한 피해자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에, 신참변호사들과 의뢰인들은 합의대신 판결을 선택한다. 이후의 결과는 상대로펌의 말처럼 된다. 그렇지만 이들은 금전배상 대신 사회적으로 올바른 선례를 만든 것에 만족한다.

영화에서 주목할 것은 우리 사회와 다른 징벌적 배상의 수준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단순히 피해액이나 소정의 벌금을 내는 것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이기에 기업이 두려워한다. 그리고 기업이 파산할 것이 명백하더라도 판결이 내려지는 것도 큰 차이점이다.

이와 달리 얼마 전 국내에서는 혹서기나 혹한기에도 적절한 냉난방시설이 제공되지 않는 한 기업의 근로환경 때문에 산재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지적됐다. 여전히 국내에서는 적지 않은 산업현장에서 산재사고가 꾸준히 발생한다. 유독 산재가 많은 산업순위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간혹 특정 사안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면 그때마다 제도적 개선을 외치지만 그때뿐인 것 같다. 몇 년 전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물류창고화재 이후에도 유사한 사고가 발생했던 것이 그런 예시다. 이런 문제는 어째서 근절되지 않을까.

작업자에게 해가 없는 근로환경의 구축과 안전수준의 상향은 생산과 유통 등의 전반에 걸친 비용상승으로 연결된다는 점이 늘상 문제로 제기된다. 입찰 과정에서의 저가수주와 속칭 '품 떼기'라는 인건비절감 등이 드물지 않은 현실에서 굳이 발주자나 고객이 앞장서 비용을 더 지불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고는 방지해야 하지만 기업의 과실책임에 대한 처벌이 크다고만은 보기 어렵다.

굳이 선진국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각 산업분야의 위상은 해당 산업의 종사자들이 누리는 삶의 수준과 직결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저들이 누리는 생활 수준에 따라 우수인력의 지속적인 유입과 장기근속, 산업경쟁력 향상의 선순환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의 비용투입 대비 산출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성과지표를 높게 잡고 근무 인원과 생산투입요소 등을 통제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렇더라도 이윤 극대화라는 경제적 논리가 충족된다면 다른 요소는 부차적이라는 경영 논리는 지나친 비약이다. 다만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이런 내용이 일상화되는 경향이 커진다. 때로는 성과가 명확히 나타나지 않는 안전 부분에 소요되는 비용은 줄일수록 이익으로 간주한다.

사회의 경제나 교육 수준 등이 높아지는 만큼 기업이 변하지 못한다면 강력한 규제가 필요해진다. 경영진의 이해도 동일한 연장선에 있다. 소득수준이 높지 않거나 단순 업무 등을 지칭하는 자조적인 표현들이 어색하지 않은 것은, 평소에 눈에 띄지 않는 직업군에서는 지금의 현황이 고착화 됐기 때문이다. 안전사고나 산재의 발생 가능성도 여기서 높아진다.

논란이 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나타난 배경도 실상은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지금은 다듬어져야 할 부분도 많고 법안의 내용이 과도해 보이기도 한다. 안전에 대한 문화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질지 혹은 시기상조라며 배척될지는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에 달려있다. 만약 법으로 명시된 내용이 선행돼야만 민간의 자율을 효율적으로 끌어낼 수 있다면 규제는 필연적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결과를 성취하기 적정비용, 면책요건, 사회적 합의, 공공의 변화 등이 정립되고 서서히 사회 관행과 문화로 정착될 것이다. 우리는 중대재해처벌법을 그런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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