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죽전 퍼시픽써니 데이터센터 (이미지=현대건설)
용인죽전 퍼시픽써니 데이터센터 (이미지=현대건설)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주택시장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국내 건설사들이 데이터센터 건설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는 인공지능(AI) 기반 디지털 인프라 수요에 발맞춰 AI 특화 데이터센터가 새로운 '미래 먹거리'로 부상한 모습이다. 건설사들은 단순 시공을 넘어 설계·투자·운영까지 아우르는 통합형 사업으로 진출 범위를 넓히며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11일 맥킨지앤컴퍼니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인프라 투자 규모는 2030년까지 약 6조70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AI 확산과 생성형 AI(Gen AI)의 급성장이 핵심 동력으로, 이 중 5조2000억 달러가 AI 수요 대응 인프라 확충에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2020~2024년 사이 데이터센터 투자 규모는 110억 달러에서 540억 달러로 약 5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민간 자본만 1700억 달러가 투입됐으며, 전체 디지털 인프라 투자 중 데이터센터 비중은 16%에서 47%로 급등했다.

이에 따라 건설사들은 단순 시공에서 벗어나 데이터센터에 지분을 투자하거나 직접 개발에 나서는 등 시장 선점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국내 건설사 중 데이터센터 시공 실적이 가장 많은 현대건설은 프로젝트의 기획·설계 단계부터 참여해 발주자의 요구와 시설 특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시공 전략을 제안하고 있다. '프리컨스트럭션 서비스(PCS)'를 통해 공사 기간 단축과 비용 절감은 물론, MEP(기계·전력·수배전) 시스템 최적화까지 포함한 토털 솔루션을 제공한다.

현대건설은 2004년 금융결제원 분당센터를 시작으로 KT 목동 통합데이터센터(IDC), NH 통합 IT센터, KB국민은행 통합 IT센터, 네이버 세종 데이터센터 등 다수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올해는 7월 서울 금천구 '케이스퀘어데이터센터 가산'과 10월 '용인 죽전 퍼시픽써니 데이터센터'를 연달아 준공했다.

또한 미국 뉴욕에 현지 AI데이터센터 법인을 설립해 북미 시장 진출을 모색 중이며, 계열사 현대엔지니어링과 함께 '설계-시공-운영 일괄 수주(EPC+O&M)'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국내외를 아우르며 데이터센터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하남 데이터센터 △삼성전자 수원 슈퍼컴센터·화성 HPC 센터 △우리은행 상암 종합지원센터 △KT 광주 IDC 센터 등 총 13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티어4 최고등급 인증을 받은 사우디아라비아 타다울타워 데이터센터를 통해 해외에서도 시공 역량을 입증했다. 특히 냉각기술 전문기업 '데이터빈'과 협업해 액침냉각 시스템(Immersion Cooling)을 자체 개발했으며, 관련 특허도 보유하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미국이나 스페인 등 글로벌 업체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데, 국내 업체가 데이터센터에 필수적인 차세대 핵심 인프라 기술을 자체적으로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필수적인 서버 냉각기술로서, 액침냉각 시스템을 적용한 그린 데이터센터 건설은 향후 고부가가치 상품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GS건설은 네이버 각 춘천·하나금융그룹 통합데이터센터(IDC) 등 총 10건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존재감을 높였다. 지난해에는 경기도 안양시 '에포크 안양 데이터센터'를 완공해 개발·운영 단계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에포크 안양 센터는 지하 3층~지상 9층, 총 40MW 용량 규모의 시설로 약 10만 대 이상의 서버를 갖춘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다. 앞서 2021년 GS건설은 디벨로퍼 시장 진출을 위해 자회사 '디씨브릿지(DCBridge)'를 설립하고, 데이터센터 영업과 운영 서비스를 직접 담당하고 있다.

DL이앤씨는 지난 9월 서울 금천구에 '가산 데이터센터'를 준공했다. 이번 사업은 호주 'DCI Data Centers'와 합작법인을 설립해 추진한 프로젝트로, DL이앤씨는 단순 시공을 넘어 시운전을 통해 성능을 검증하는 커미셔닝(Commissioning) 업무까지 수행했다. 이는 DL이앤씨가 해외 발주처를 대상으로 수행한 세 번째 데이터센터 신축 사업이며, 올해 4월에는 네 번째 사업으로 'ICN11 김포 데이터센터'도 착공했다.

이 밖에 한화 건설부문은 안산 카카오 데이터센터를 준공하며 직류 기반 친환경 데이터센터를 선보였다. 대우건설 역시 2023년 강남 데이터센터(GDC) 기공 후 지난 6월 준공 허가를 받았다.

건설사들이 데이터센터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명확하다. 데이터센터는 일반 건축보다 보안·전력·냉각·이중화 기술 등 고난도 기술력을 요구하지만, 고정 임대수익과 안정적 운영 수익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신재생에너지 산업과 연계하면 포트폴리오 측면에서도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성장세도 뚜렷하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베리파이드 마켓 리포트(Verified Market Reports)가 최근 공개한 '한국 데이터센터 건설 시장 규모 및 전망 2033' 자료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센터 건설 시장은 2024년부터 2033년까지 연평균 8.2% 성장할 전망이다. 시장 규모는 2025년 45억 달러(약 6조4000억원)에서 2033년 98억 달러(약 14조원)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10년 새 두 배 이상 성장하는 셈이다.

정부 역시 AI 인프라 확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AI 3대 강국 도약'을 선언하며 100조원 규모의 민간 투자 유치 청사진을 제시했다. 특히 블랙록·오픈AI·엔비디아로 이어지는 'AI 삼각 동맹'을 바탕으로 정부 정책 기조에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최근 한국을 찾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국내 기업과의 'AI 동맹'을 강조하며 2030년까지 자사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장을 한국에 우선 공급하겠다고 밝힌 점도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데이터센터 관련 사업을 지속해 왔는데, 향후 발주가 더 많아지고 규모도 커지면서 발전시장을 중심으로 수익성이 확보될 것으로 보인다"며 "아마존 등 외국 빅테크 기업들이 국내 데이터센터 투자 계획을 가지고 있어 시장성이 더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동남아시아 등 해외 현지 인프라 설립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도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비교해 국내 기업들의 AI 산업 발전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딘 만큼, 국내 시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대규모 전력 사용에 따른 전자파 및 열 방출 우려로 주민 반대에 부딪혀 인허가가 지연되거나 전력 수급 불균형 문제가 발생하는 등 과제도 적지 않다. 이러한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AI 산업이 긍정적으로 흘러가고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 기준으로 네이버나 카카오, SK 등이 AI 산업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는지를 따지면 굳이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돌릴 이유가 많지 않다"며 "데이터센터가 미래 먹거리가 될 수는 있지만, 지금보다 국내 AI 산업이 더 성장해야 하고, 원자력 산업처럼 시장이 확 열렸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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