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트 건설 현장 모습. (사진=픽사베이)
플랜트 건설 현장 모습. (사진=픽사베이)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올해 상반기 해외 수주 실적이 300억달러를 돌파하며 올해 목표치인 500억달러 달성에도 파란불이 켜졌다. 수치로만 보면 완연한 성장세지만 실질 성과는 초대형 프로젝트인 체코 원전 사업에 집중되며 '쏠림 구조'가 심화됐다. 특히 핵심 텃밭인 중동 실적이 반토막난 데다 글로벌 불확실성이 확대됐으며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라 기대되던 대형 프로젝트들이 줄줄이 지연될 전망이라 하반기 해외 수주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29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국내 기업들의 해외 건설 수주액은 310억1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지난해 동기 수주액인 155억8000만달러의 두 배가 넘는다. 구체적으로 274개사가 88개국에서 총 258건의 프로젝트를 따냈다. 

지역별로는 유럽이 전체의 63%인 196억8000만달러를 차지하며 1위를 기록했다. 유럽 수주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43배 증가했는데, 이는 사실상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건설사업 수주(187억2000만달러)가 실적을 견인한 결과다. 단일 프로젝트 수주가 전체의 약 60%를 차지하면서 외형은 커졌지만, 수주 불균형이 심화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해당 프로젝트를 제외한 수주액은 123억달러에 불과하다. 이는 지난해 동기 156억달러와 비교하면 크게 부족한 수준이다.

이어 중동 지역의 올해 상반기 수주액은 55억75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4.4% 급감했다. 사우디 복합화력발전소, 송전선로 등 일부 인프라 수주는 있었지만, 예년에 비해 규모나 수가 모두 줄었다. 전체 수주액에서 중동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지난해 64.4%에서 올해 18%로 크게 줄었다. 

현재 중동 지역은 유가 하락과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다. 특히 주 거점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유 생산량을 줄이고, 보수적 재정 기조를 유지하는 등 신규 발주 물량을 축소시켰다. 세마포(Semafor)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 네옴은 비용 절감 일환으로 전체 정규직 직원 20%에 달하는 1000여명을 감원할 계획이다. 네옴 현장에서 근무 중인 인력을 수도 리야드로 재배치해 급여를 줄이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네옴 예산 삭감은 국내 건설사 해외 수주에도 직격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 여파로 상반기 사우디 수주액은 26억8000만달러로, 8.6% 비중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81억5300만달러를 수주하며 52% 몫을 견인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2022년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현대건설이 수주한 10억달러 규모 '네옴 더 라인 러닝터널 공사'는 현재까지 공정률이 30% 수준에 그친다.

건설업계는 이 같은 흐름에 따라 북미, 유럽, 중앙아시아 등 새로운 시장을 중심으로 '신규 텃밭' 확보에 나섰다. 먼저 현대건설은 최근 미국 시카고와 워싱턴D.C.에서 현지 대형 건설사들과 릴레이 협약을 맺었다. 와이팅-터너(Whiting-Turner), DPR 컨스트럭션, 자크리(Zachry) 등과 함께 현지 원자력 프로젝트 수행 전반을 아우르는 협업을 추진한다. 

유럽 시장 공략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핀란드 현지 기업들과 신규 원전 건설을 위한 사전업무착수계약(EWA)을 체결했고,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 7·8호기 프로젝트의 EPC(설계·조달·시공) 본계약 체결도 연내 목표로 추진 중이다. 해당 사업 규모는 최대 70억달러(약 9조5000억원)로 추산된다.

삼성물산은 미국 테일러공장 공사비 증액과 함께 호주 나와레 BESS(1억4747만달러), 루마니아 원전 설비 개선 공사 등을 따내며 해외건설 경쟁력을 확대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에너지 부문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해 호주 에너지 대기업 우드사이드 에너지 및 현대글로비스와 함께 '액화천연가스(LNG) 액화사업 개발을 위한 3자 간 업무협약'을 맺었다. 

대우건설은 중앙아시아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지난 5월 투르크메니스탄 국영화학공사와 총 7억8400만달러 규모의 미네랄 비료 플랜트 본계약을 단독 체결했다. 정원주 대우건설 회장은 직접 투르크메니스탄 등 주요 국가를 방문하며 해외 수주 확대를 위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쌓고 있다. 

다만 신시장 개척도 녹록치는 않은 상황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과 함께 블루오션으로 주목 받은 우크라이나 재건시장은 지속된 전쟁 탓에 활로가 보이지 않고 있으며, 대형 프로젝트 중 하나였던 인도네시아 신수도 이전사업도 예산이 당초 계획보다 64% 가까이 축소된 실정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전방위 관세정책에 더해 나토(NATO) 회원국, 사우디 등 주요 우방국을 상대로 방위비 인상을 압박하며 향후 유럽·중동국가들의 인프라부문 예산 및 신규발주 감소, 미국기업 우선순위 배정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우리 기업들은 도급형 단순 시공사업에서 투자개발형 전환 시도를 통해 원전이나 친환경 플랜트 등 고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수익 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있고 지역적으로도 기존 아시아·중동 지역에 집중했다면 미국, 유럽, 호주 등 선진 시장으로 진출하는 과도기에 있는 상황"이라며 "다만 선진 시장의 경우 시장을 선점한 플레이어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기업 단독 진출은 쉽지 않은 만큼 개별 기술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세계적인 기업과의 컨소시엄, M&A 등 형태로 시장을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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