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문영재 기자] 현대차와 기아가 글로벌 시장에서 각기 다른 전략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다음 달 2일 불공정 무역국을 대상으로 한 관세 부과를 예정대로 강행할 방침이어서, 북미 시장을 둘러싼 리스크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진 탓이다.
현대차는 북미 현지 투자 확대로 정책 변화에 적극 대응하는 반면, 기아는 관세 부과를 피해 유럽 시장으로 전략적 무게 중심을 옮기는 모습이다.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한 차량을 미국으로 수출하는 구조인 만큼, 관세 부과 시 직격탄을 피하기 어려워서다. 유럽은 법인차 전기화 의무화 등 기아 전동화 전략과 맞물리는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최근 종전 협상 급물살에 따라 시장 개방 기대감을 키우고 있는 러시아의 경우 두 회사 모두 재진출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북미 생산 확대로 관세 리스크 해법 모색 =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다음 달 2일 멕시코, 캐나다, 유럽, 일본, 한국, 중국 등 불공정 무역국에 대한 25% 관세 부과 방침을 공식화한 상태다.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예정대로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현대차는 북미 현지 생산 확대를 통한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이달 말 미국 조지아주에서 열리는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준공식에서 현지 생산 확대 등 추가 투자에 대한 메시지를 낼 방침이다.
준공까지 76억 달러(약 11조원)가 투입된 HMGMA는 연산 30만 대 규모의 생산 능력과 8600여 개의 직접 고용 창출 효과가 있는 대규모 생산 거점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북미 시장에서 강한 수요를 바탕으로 오버 캐파 부담 없이 추가 투자가 가능한 만큼, 생산 확대와 일자리 창출 등으로 관세 리스크 완화 의지를 분명히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20일 서울시 서초구 엘타워에서 열린 제57기 정기주주총회에서 "현지화 전략으로 미국 내 정책 변화에 유연히 대응하겠다"며 "HMGMA에서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를 혼류 생산해 연간 생산 능력을 최대 50만대까지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직접 고용도 늘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 정책에 따른 리스크를 해소하겠다"고 덧붙였다.
◇관세 리스크에···기아, 전략적 무게 유럽으로 = 기아는 현대차와 달리 불공정 무역국으로 지정된 멕시코에도 생산 거점을 두고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가 현실화될 시 타격이 더 클 전망이다.
기아는 지난해 기준 멕시코 공장에서 연 23만 대를 생산했으며, 이중 15만 대를 미국에 수출했다. 이는 기아 미국 내 전체 판매의 18%에 해당하는 수치다. 업계는 이러한 상황에서 25% 관세가 부과되면 올해 영업이익 추정치의 7.8%에 달하는 1조원 가량의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북미 관세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기아는 전략적 방향을 유럽으로 돌리고 있다. 유럽은 전동화 가속화를 위해 연말까지 법인차 전기화를 의무화하는 입법을 추진 중이다. 유럽 신차 시장에서 법인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달해, 법안 시행 시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은 또 2030년까지 신규 구매 차량의 100%를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상태다. 이에 따라 210만 대 규모의 전기차 추가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보이며, 이는 지난해 전기차 수요의 65%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2035년부터는 내연기관차 판매 역시 전면 금지할 방침이다.
기아는 이러한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지난 달 말 EV 데이 개최 장소를 유럽 스페인으로 잡고, 미래 전동화 전략을 공개했다. 이 자리에서 송호성 기아 사장은 "유럽은 중국을 제외하고 전기차 시장 규모 면에서 가장 앞선 지역이고 앞으로도 전동화가 가장 빠른 지역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분기 중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V5를, 하반기에는 준중형 전기 세단 EV4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했다. 또 "내년 초에는 소형 전기 SUV EV2를 현지 생산하고, 가격을 3만 유로 대(약 4800만원)로 책정해 수요가 늘고 있는 중저가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려 나가겠다"고 밝혔다.
◇러시아 재진출에도 '속도'···현대차, 바이백 카드 주목 = 한편 현대차와 기아는 북미와 유럽 외에도 글로벌 시장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위해 러시아 시장 동반 재진출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미국의 개입으로 러우 전쟁 종전 협상이 급물살을 타면서, 서방 기업들의 러시아 재진출 기대감이 커지고 있어서다. 양사도 이러한 흐름 속 하반기 복귀를 타진하는 모습이다.
현대차의 경우 2010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생산 거점을 세우고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했으나,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부품 수급난과 수출 제한 여파로 2023년 12월 공장을 아트파이낸스에 매각했다. 다만 2년 내 재매입할 수 있는 바이백 옵션을 걸어둔 만큼, 종전 시 복귀 여부가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러시아 복귀가 현대차·기아 실적 반등의 촉매제가 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인구 1억4000만 명을 지닌 러시아는 연간 160만 대 규모의 시장으로 730만 대 수준에서 정체된 현대차·기아의 글로벌 판매량을 끌어올릴 전략적 거점으로 평가된다.
실제 양사는 최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딜러 마케팅, 시장분석, 물류 관리 등 주요 인력 채용에 나서며 재진출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차·기아 관계자는 "현재까지 러시아 재진출과 관련해 확정된 바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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