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정부가 생활숙박시설(생숙)의 합법화 지원 정책을 내놓으며 5만실 이상의 '불법 주거 전용' 생숙의 '퇴로'를 열어줬다. 이행강제금 부과 조치를 한 달여 앞두고 이들은 '폭탄 벌금'과 더불어 위법 논란에서도 벗어날 기회를 얻었다. 일각에서는 법을 지켜온 준법 생숙 소유자와의 형평성 문제는 물론 이번 조치가 '버티니까 합법화'의 나쁜 선례라는 지적도 나온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가 지난 16일 보건복지부, 소방청, 17개 전국 지자체와 합동으로 발표한 '생활형숙박시설 합법사용 지원 방안'을 놓고 일각에서는 ‘사실상 특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한 추가 대책이 필요하단 주장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선의의 피해자(수분양자)를 구제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라면서도 "일단 저지르고 사안의 규모나 목소리가 커지면 특단의 조치라는 개념으로 (원칙은 일단 덮어두고) 합법‧양성화시키는, 그리 바람직하지 못한 선례가 더해졌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도 "이번 특례로 오피스텔로 용도를 전환할 수분양자는 임대와 실거주 등 미래 사용 가치가 올라가는 만큼 그에 상응해 일정 기간 전매 규제 페널티를 도입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며 "이미 용도 변경과 숙박업 신고를 마친 생숙업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추후 논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용도변경에 필요한 요건을 완화해 지원하되 생숙 소유자가 주차장 설치비, 기부채납 비용을 부담하도록 했다. 또 실거주 용도 사용 시 내야 하는 이해강제금 부과 시점을 2027년말까지로 유예하기로 했다. 이와 동시에 앞으로 짓는 신규 생숙은 주거용으로 쓰이지 않도록 1, 2실 규모의 분양을 원천 차단한다.
일명 '레지던스'라고도 불리는 생숙은 당초 외국인 관광객이나 장기 출장자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도입됐다. 숙박용이 아닌 주거용 사용은 현행법상 불법이다. 그러나 부동산값이 크게 오른 2020년부터는 주거용으로 투기 수요가 몰렸다. 주택법이 아닌 건축법 적용을 받는 시설이라, 과세나 전매제한 등 부동산 관련 규제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2021년 생숙을 숙박업으로 신고하지 않거나 오피스텔로 전환하지 않으면 매년 공시가격의 10%를 이행강제금으로 부과하겠다는 강제 조치를 꺼내들었다.
당초 윤석열 정부도 생숙 규제에 단호한 태도를 보여 왔으나, 올해 들어 달라진 기류를 보여왔다. 이행강제금 부과 시기를 지난해 10월에서 올해 말, 다시 내년 9월로 줄줄이 연기하는가 하면, 이번에는 아예 용도변경 문턱을 낮추는 규제 완화책을 꺼내든 것이다. '실수요자 보호'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불안', '사회적 갈등 비용 증가' 등에 따른 안정화 조치로 평가된다.
실제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7월 기준 전국 생숙은 18만8000실이며, 이중 공사중인 6만실을 제외한 12만8000실이 사용 중이다. 이중 숙박업 신고를 한 6만6000실과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한 1만실을 제외한 5만2000실은 내년부터 이행강제금을 내야할 처지였다. 이에 생숙을 분양받았던 사람 중 일부는 이행강제금 부과 시점이 다가오면서 거액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생숙을 처분하려고 하는 한편 시행사와 시공사를 상대로 '주거용도인 것처럼 속여 분양했다'며 소송을 벌여왔다. 한국레지던스연합회에 따르면 전국에서 생숙 관련 집단 소송은 최소 50여건 진행 중이며, 참여인원은 3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영세 생숙 소유자들의 퇴로를 열어주는 조치라지만, 일각에서는 '버티니까 합법화'를 해주는, 이미 법대로 운영하고 있는 투자자와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선 신고·용도변경자에 비해 훨씬 완화된 규제를 적용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성실히 정부 시책을 이행한 7만6000실 거주자보다 유리해진 것이다. 정부는 그간 숙박시설의 주거시설 전용이 원천적으로 불법이라고 선을 그어왔다. 지난해 9월 당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버티니까 합법화해준다'는 잘못된 선례를 남기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분명히 한 바 있다.
또 '부동산 규제 우회 투자처'로 부각돼 공급이 급증한 생숙이 아파트보다 규제는 덜 받으며 사실상 아파트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 데다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까지 나서 지구단위계획 수정으로 생숙의 오피스텔 용도변경을 돕겠다는 차원이라, '과도한 특혜'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법 개정과 별개로 지자체는 지구단위계획상 주거 시설이 들어설 수 없는 곳에 위치한 생숙에 대해 기부채납을 전제로 용도 변경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서울 강서구 마곡동 '롯데캐슬 르웨스트' 수분양자들은 총 200억원을 기부채납하는 조건으로 합의에 성공해 용도 변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장우철 국토부 건축정책관은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이번 지원 방안은 규제 방식을 유연하게 가져가는 것"이라며 "오피스텔 전환을 위해선 기준을 만족해야 하고 그만큼 수천만원의 비용을 보유자가 부담해야 하는 만큼 무작정 특혜라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대책으로 사회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생숙을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며 "각 지자체는 배포된 생숙 가이드라인에 따라 장애요인별 맞춤형 지원방안을 신속히 마련해 안내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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