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문영재 기자] 지난 5월 22일, 벤츠는 서울 중구 소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전기차 세이프티 인사이트'를 열고 "작년 하반기 독일에서 전기차 차대차 충돌시험을 성공적으로 실시, 화재 안전성을 확보했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이날 벤츠는 실제 차대차 충돌시험에 쓰인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와 EQS SUV도 전시하며 "실제 사고 상황과 유사한 시간당 56킬로미터(km)로 50퍼센트(%) 오버랩 정면충돌을 전개했고, 그 결과 배터리는 온전한 상태를 보였다. 전원도 자동으로 끊겼다. 매우 안전한 전기차라는 얘기다. 안전은 벤츠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반적으로 전기차 1대를 시장에 내놓기 전까지 1만5000건에 달하는 시뮬레이션과 150건의 충돌시험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다가올 전기차 시대에서도 대중이 안심하고 이동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탑승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제품을 설계하고 있다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두 달이 조금 넘은 지난 1일, 인천 서구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벤츠 전기차가 자연 발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파트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주차돼 있던 흰색의 전기 세단 EQE 350 플러스가 갑자기 연기를 내뿜다 이내 폭발, 불길이 번지는 장면이 담겼다. 차주는 해당 전기차가 무충전 상태로 60여시간이나 주차돼 있었다고 언급했다. 이 사고로 주변에 주차돼 있던 80여대의 차량이 직접적 피해를 봤다.

대중은 불안감을 드러냈다. '가만히 있었는데도 불이 나는 전기차, 무서워서 탈 수 있겠냐', '역시나 전기차는 시기상조였다. 다음 차도 내연기관차를 선택하겠다'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벤츠는 "이번 차량 화재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당국에 협조해 차량을 철저히 조사하겠다. 피해를 본 이들에게 45억원 이상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번 사고로 벤츠의 전기차 차대차 충돌시험은 자충수가 됐다. 화재 발생 건수가 0건에 수렴한다는 주장은 그 의미를 잃었고, 충돌·충전이 아닌 일반적인 주차 상황에서 폭발한 탓에 '벤츠=안전'이라는 공식도 보기 좋게 깨졌다. 일각에서는 배터리 공급사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적하지만, 벤츠의 인증이 있어야만 전기차 탑재가 가능하다.

이 와중에 다른 업체들은 전기차 화재로 인한 수요 둔화 심화를 방지하고자 "우리 전기차는 화재와 거리가 멀다"며 안전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폴스타는 지난 13일 서울 용산구 소재 폴스타 스페이스 서울에서 열린 전기 SUV 폴스타4 출시행사에서 "우리의 첫 모델 전기 세단 폴스타2의 경우 는 전 세계적으로 16만대 이상이 팔렸는데, 지금까지 보고된 화재 건수 단 한 건도 없다"고 밝혔다. 이 업체 관계자는 "배터리 안전성을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배터리에 전해지는 외부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폴스타는 강철 알루미늄으로 배터리를 감싸고 외부 충격 시 고전압을 차단해 2차 피해를 줄이는 안전 장치를 달았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기아도 지난 15일 보도자료를 내고 "전기차 화재 안전을 책임지는 핵심 기술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을 지속 개선한 덕분에 시판 중인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BMS는 배터리 이상 징후 탐지 시 즉각 차량 안전 제어를 수행한다"고 주장했다. 또 "혹시나 모를 화재 사고에 대비해 지연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지난 6일 충남 금산군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나,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수입차 화재 건 대비 화재 진행 속도가 늦고 피해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학계에서는 배터리 특성상 화재 위험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 섀시·소재기술연구소 화학소재기술부문 엄지용 수석연구원은 "현재 전기차에 들어가는 대다수의 배터리는 다양한 화학반응으로 인해 예기치 못한 열폭주가 발생할 수 있다. 배터리는 크게 양극, 음극, 전해질, 분리막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 중 폭발을 야기하는 소재가 바로 전해질이다. 액체로 돼 있는 해당 소재는 결정 구조가 약해 휘발성이 높고 열안정성이 낮다"고 말했다.

박정준 FITI시험연구원모빌리티본부 선임연구원도 "전기차를 구동하거나 충전하는 과정에서 고전압 전기가 흘러 배터리 일부가 가열되는데, 이 열이 배터리 내부 액체 전해질 온도를 높이고 압력을 증가시켜 열폭주를 일으킬 수 있다. 주기적인 관리가 요구되기에 전조증상을 미리 파악, 사고를 방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사고는 불시에 일어나기 마련이다. 특히 전기차처럼 아직 기술력이 고도화되지 못한 차는 더더욱 그렇다. 난연재료 개발, 다양한 환경조건에서 실험을 통한 열폭주 특성 규명, 배터리 셀·모듈·팩 모델링 및 최적설계 기술 개발 등 화재를 잡기 위한 다양한 연구가 수행되고 있으나, 여전히 난도는 높아서다.

이 때문에 지금 당장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자신하는 건 훗날 스스로 발목을 잡는 발언이 될 수도 있다. 벤츠도 자사 전기차에서 불이 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들의 목표는 2050년까지 전기차 관련 사고를 '제로(0)'로 만드는 것이었다. 당장 수요 둔화를 걱정해 화재 발생 0건을 떠벌리기보다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화재 사례 기반 신뢰성 검증 기술을 구축하고 체계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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