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이앤씨 관계자들이 부산의 공장에서 제작한 모듈러 주택을 조립하고 있는 모습. (사진=DL이앤씨)
DL이앤씨 관계자들이 부산의 공장에서 제작한 모듈러 주택을 조립하고 있는 모습. (사진=DL이앤씨)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공장에서 사전 제작한 모듈을 현장에서 조립하는 '모듈러 주택'이 건설업계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빠른 시공과 균일한 품질, 친환경성에 더해 정부의 공공 발주 확대까지 맞물리면서 대형 건설사들이 잇따라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다만 시장이 초기 단계라 시장성은 낮은 편이고, 초기 투자비용 절감과 기술 완성도 제고 등 과제도 남아 있다.

18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모듈러 공법을 적용한 공공임대주택 2000가구를 발주하고, 내년에는 3000가구 이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시공사에는 주택도시기금을 통한 10% 우대금리 융자 등 재정 인센티브도 제공된다. 정부가 모듈러 공법을 적극 권장하면서 업계도 모듈러 주택 시장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실제로 GS건설은 2020년 폴란드 목조 모듈러 전문기업 '단우드'를 인수하며 관련 기술 확보에 나섰다. 모듈러 공법의 일종인 프리캐스트 콘크리트(PC) 전문 자회사 'GPC'와 목조 모듈러 자회사 '자이가이스트'를 설립했다. 최근에는 GPC와 함께 충북 음성 공장 부지에 PC공법 공동주택 시범모델(목업)을 완공하고 주거 성능 검증을 마쳤다. 또 자이가이스트를 통해 충남 당진에 연 300채 이상 생산 가능한 모듈러 공장을 운영 중이다.

삼성물산은 최근 충남 천안시 서북구 삼성물산 모듈러 승강기 R&D 랩(Lab)에서 현대엘리베이터와 모듈러 승강기 기술 고도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을 통해 최대 500m 높이의 초고층 건물에 적용 가능한 3세대 모듈러 승강기 기술 개발을 추진한다.

현대건설은 지난달 AI·로봇 기반 목조 모듈러 전문기업 '공간제작소'와 업무협약을 체결, 친환경 목조 모듈러 기술 상용화에 나섰다. 현재 '힐스테이트 용인마크밸리' 아파트 현장에 자전거보관소와 키즈스테이션 등 부속시설부터 적용하고 있으며, 향후 어린이집과 경로당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대우건설은 옥탑에 모듈러, PC 등을 활용할 OSC(탈현장건설) 공법을 적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술로는 △옥탑 철골 모듈러 △하이브리드 PC 옥탑 △지하주차장 PC화 △지하 외벽 PC적용 △유닛형 욕실 등을 보유하고 있다. 옥탑 철골 모듈러는 2021년 파주 현장 적용을 시작으로 6개 현장에서, 하이브리드 옥탑PC는 3개 현장에 적용했다.

지난 2017년부터 모듈러 기술을 개발해 40여 건의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DL이앤씨는 2023년 전남 구례군 산동면에서 국내 최초의 '모듈러 단독주택 타운형 단지'를 준공했다. 소비자가 모듈러 유닛을 골라 원하는 대로 평면을 계획할 수 있는 '멀티 커넥션 기술'도 연구 중이다.

모듈러 공법은 벽체, 지붕, 전기, 배관, 실내 마감까지 대부분을 사전 제작해 설치하는 것으로, 시공 기간을 일반 현장보다 최대 절반까지 단축할 수 있다. 또 공장에서 사전 제작이 가능해 품질 관리가 상대적으로 수월할 뿐 아니라 건설 폐기물이나 소음 등 환경 이슈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국내 모듈러 주택시장은 2019년 324억원에서 2023년 8059억원으로 급성장했으며, 오는 2030년에는 2조원대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시장 확대, 기술 완성도, 비용 절감 등은 풀어야 할 숙제다. 국내는 대량생산 체계를 갖추지 못해 생산비용이 높을 수밖에 없고, 공사비가 기존 현장공사에 비해 20~30% 높게 책정되는 경우가 많다. 구조적 안정성, 방음, 단열 등 성능 개선도 업계의 공통 과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모듈러 공법 사용을 변경하는 사업이나 모듈러 사업을 철수하는 건설사도 속출하고 있다. 서울 최초 중고층 모듈러 주택사업으로 관심을 모은 구로구 '가리봉 청년주택 사업'의 발주처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는 최근 공법 변경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H공사는 주택 규모가 174가구에 불과한 사업에 모듈러 공법 적용 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이앤씨는 모듈러 사업을 담당하는 자회사 포스코에이앤씨 건축사사무소의 관련 사업 부문을 모듈러 전문기업 유창이앤씨에 통매각하기로 했다. 포스코이앤씨는 이번 사업 부문 매각과 관련, "주력 사업 집중을 위한 자산 효율화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포스코이앤씨가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모듈러 사업이 현재로서는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보고 있다.

모듈러 건설과 관련한 설계·성능 기준 등 제도가 미흡하다는 문제도 있다. 현행법상 모듈러 주택은 전기, 정보통신, 소방설비 등 다양한 설비가 일체형으로 시공됨에도 불구하고, 기존 주택처럼 분리발주를 해야 한다. 이는 유기적인 완성도 저하와 비용 상승 등 모듈러 건축이 지닌 장점을 무색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실제로 한국주택협회에 따르면 모듈러 주택을 분리발주 할 경우 비용이 30% 증가하고 공기 역시 지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 주도 턴키 방식이나 일괄입찰 방식을 도입하면 이를 극복할 수 있지만, 정부 지원책이 부족한 탓에 민간 건설사의 참여를 유도할 유인책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한국주택협회 관계자는 "관련된 특별법을 재정해서 분리 발주를 적용 예외하는 방안을 도입하는 것이 모듈러 건축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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