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신민호 기자]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마무리 중인 카드사들의 표정이 어둡다. 비용절감 노력으로 3년 만에 호실적을 기록했지만, 침체된 내수와 건전성 리스크에 발목을 잡혔다. 설상가상 수수료율이 또 다시 인하되며 내년 전망마저 불투명해졌다.
◇3년 만의 순성장···대부분 두자릿수대 성장세
올해 3분기 8개 전업카드사(신한·삼성·KB·현대·롯데·우리·하나·BC)의 누적순이익이 2조2511억원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8.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2년간 연간 순이익이 감소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모처럼 희소식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하위권으로 분류된 하나카드(1844억원)와 BC카드(1293억원)의 순익이 각각 44.7%, 85.8%씩 급증하며 가장 높은 성장세를 기록했다.
이어 △신한 5527억원(17.8%) △삼성 5315억원(23.6%) △KB국민 3704억원(36.0%) △우리 1402억원(19.4%) 등 대부분의 카드사가 두자릿수대 성장세를 보였으며, 현대카드의 순익(2401억원)도 6.4% 늘었다.
다만 롯데카드의 순익(1025억원)은 전년 대비 72.0%나 급감, 유일한 실적 감소세를 기록했다. 작년 상반기 자회사 매각에 따른 기저효과와 조달비용 증가의 여파다.
◇역마진 우려에도 또 수수료 인하···호실적 '독' 됐나
올해 호실적은 카드사들에 독으로 작용했다. 이달 초 금융위원회가 연매출 10억원 이하 영세·중소가맹점의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0.1%포인트(p), 연매출 10억~30억원 이하 중소가맹점의 수수료율을 0.05%p 인하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선 이번 수수료 인하로 내년 카드업권 전체의 연간수익이 2400억원 이상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 2012년 여전법 개정 이후 3년 마다 적격비용을 재산정해 가맹점 수수료율을 결정하고 있다. 당국은 적격비용 산정 결과 카드사들이 영세·중소가맹점에 대한 카드수수료를 약 3000억원 경감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문제는 지속된 수수료 인하로 본업인 신용판매 부문의 수익성이 악화됐다는 점이다. 실제 김병환 금융위원장 역시 "신용카드 등 매출세액 공제제도를 감안하면, 연매출 10억원 이하의 영세·중소가맹점까지는 카드수수료 부담 보다 공제받는 금액이 더 큰 상황"이라고 언급키도 했다.
이 때문에 카드 노조 측은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수수료율 개편안을 놓고 "카드산업을 몰락으로 내모는 포퓰리즘적 정책"이라고 비판키도 했다.
◇내수침체·풍선효과에 불어난 카드론···연체도 고민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카드론 잔액도 카드사들의 발목을 잡았다. 11월 말 기준 카드론 잔액이 42조5453억원으로 전년 대비 3조6665억원이나 급증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카드론 잔액은 9월을 제외하면 매월 증가세를 이어갔다.
경기침체로 대출 수요가 늘어난 가운데, 당국의 대출규제로 풍선효과가 나타났단 진단이다. 다만 차주들의 상환능력이 악화되면서 상반기 말 기준 평균 연체율이 1.37%로 일년새 0.19%p나 악화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빚으로 빚을 갚는 형태인 대환대출 잔액도 1조7247억원으로 일년새 8.1%나 늘었다.
결국 카드사는 부실채권 매각 규모를 크게 늘리는 강수를 뒀다. 단적으로 상반기 기준 작년과 올해 8개사의 대출채권매매이익은 각각 3596억원, 3685억원으로, 2022년 상반기(1908억원)와 비교해 두배 가량 급증했다.
연체율을 낮추고 수익을 올렸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나, 채권의 적정 가치 대비 낮은 가격으로 판데다 미래 이익을 당겨썼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마이너스란 평가다. 설상가상 계엄사태 등으로 내수침체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어, 건전성 리스크가 더욱 커졌단 전망도 나온다.
◇티메프 사태에 직격···환불 책임 논란에 한숨
올해 7월 발생한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 역시 카드업권을 위축시킨 악재였다. 이커머스사 티몬과 위메프가 플랫폼에 입점한 판매자들에게 판매대금을 미정산하면서 판매자들과 결제대행사들이 철수했고, 이로 인해 환불을 받지 못한 소비자들의 피해가 커졌다.
특히 대규모 손실을 떠안게 된 PG사가 카드사에 책임분담을 요구하면서 업권의 불안도 커졌다. 이 같은 책임 논란은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가 지난 19일 티메프 사태의 책임 범위를 티메프(100%), 여행사(90%), PG사(30%)로 결정하며 일단락됐다. 다만 해당 결정에 여행사와 PG사가 반발한 데다, 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나서 불똥이 다시 튈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티메프 사태의 부정적 여파도 현재진행형이다. 단적으로 3분기 카드사 민원건수(2344건)는 전년 대비 117.4%나 급증했으며, 4분기에도 증가세가 예상되고 있다. 특히 티메프 사태로 인한 소비 위축과 지급결제 시장 내 빅테크 영향력 확대 등을 고려하면 간접적 악영향은 훨씬 컸다는 평가다.
◇'트래블'에 꽂힌 카드업계···해외 체크 결제액 '쑥'
올 한해를 가장 뜨겁게 달군 상품은 트래블카드다. 엔데믹 이후 해외 여행객이 급증한 가운데, 100% 환율우대와 해외 수수료 면제 등을 내세운 트래블카드 이용이 급증했고, 이로 인해 카드업권 전체로 경쟁이 확대된 것이다. 단적으로 올해 1~11월 국내 카드사의 해외 체크카드 이용액은 5조202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3.6%나 급증한 상태다.
트래블 경쟁을 촉발시킨 것은 단연 하나카드의 '트래블로그'다. 지난 2022년 7월 출시된 트래블로그는 현금 없는 해외여행을 슬로건으로 현재 트래블카드의 혜택과 개념을 적립했고, 이달 기준 가입자 700만명을 돌파하는 등 강력한 선점효과를 누리고 있다.
실제 하나카드의 자산규모는 업권 최하위임에도 11월 말 기준 해외체크 이용액 점유율은 43.3%에 달한다. 이어 '쏠트래블'을 출시하며 발빠르게 트래블전쟁에 참여한 신한카드가 점유율 29.1%를 차지한 상태다. 이런 성과에 타사 역시 상품을 출시하며 트래블 전쟁에 참전했고, 이벤트 가뭄에 시달렸던 업권에 모처럼 해외여행 관련 혜택이 확대되는 선순환이 발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