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본사 전경. (사진=흥국생명)
흥국생명 본사 전경. (사진=흥국생명)

[서울파이낸스 신민호 기자] 상반기 호실적을 기록한 흥국생명이 국내 1위 부동산 운용사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전에 뛰어들며 업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성장세가 정체된 가운데, 제도·금리 환경 변화에 홍역을 치룬 만큼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시급했단 진단이다. 그룹 차원의 포트폴리오 재편과 연결된 전략적 승부수로도 해석된다.

27일 투자은행(IB) 업권에 따르면 이지스자산운용 매각 예비입찰에 흥국생명이 참전했다. 기존 이지스자산운용의 인수전엔 대신파이낸셜그룹과 한화생명, 캐피탈랜드투자운용 등이 참여했는데, 흥국생명의 참전으로 경쟁구도가 한층 심화될 예정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운용자산(AUM) 규모만 30조원을 웃도는 국내 최대 부동산 투자운용사다. 리츠(부동산투자신탁)나 대체투자 등 부동산 자산 운용에 강점을 지녔다.

업계에선 이번 인수 시도에 대해 사업 다각화의 일환으로 평가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와 저성장 환경 속 전통적 보험영업이 둔화되면서, 새로운 성장축을 확보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흥국생명의 상반기 순이익은 138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1.6%나 증가한 반면, 본업인 보험손익(500억원)이 일년새 13.1%나 감소했다.

이는 흥국생명뿐 아닌 업계 전반의 공통적인 고민거리다. 금감원에 따르면 상반기 22개 생보사들의 보험손익은 3조3340억원으로 전년 대비 12.8%나 쪼그라들었다. 금리 하락이나 할인율 같은 계리적 가정 변경 등에 따라 손실부담 계약이 늘고, 보험금 관련 지출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반면 흥국생명의 상반기 투자손익은 66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1.1%나 급증했는데, 이 중 파생상품관련수익(2595억원)이 대폭 늘며 실적 개선을 견인했다. 통상 보험사들은 주가나 금리, 환율 등의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파생상품을 운용하는데, 금리 하락과 증시 호황 등 환경적 요인에 힘입어 단기적으로 실적이 개선됐단 평가다.

이처럼 생보사의 핵심 상품인 종신보험 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제도·환경 등 외부변수 영향이 커지자 사업다각화를 통한 실적 기반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계열사인 흥국리츠운용, 흥국자산운용과의 시너지나, 금리인하 국면에서 대체자산 부문의 투자 역량 강화 등의 측면에서 이번 인수는 매력적인 카드다.

특히 올해 3월 취임한 김대현 대표이사는 과거 KB손해보험에서 전략영업, 장기보험, 경영관리 등의 부문장을 지낸 인물이다. 영업과 재무관리 양쪽에서 폭넓은 경험을 쌓은 만큼, 이러한 환경변화에 보다 민감히 반응한 것으로 보여진다.

실제 흥국생명은 이번 인수 건 외에도 올해 사업 다각화 노력이 돋보인다. 올해 초 그룹 계열사인 흥국화재와 함께 한국신용데이터가 이끄는 한국소호은행 컨소시엄에 참여해 인터넷전문은행에 진출 의사를 밝힌 것이 그 예다.

퇴직연금 부문의 변화도 눈에 띈다. 올해 1~5월 흥국생명의 원리금 보장형 퇴직연금의 수입보험료(8170억원)는 전년 상반기(1527억원)의 4배 이상 폭증했는데, 이 중 98.4%가 초회에서 발생했다. 기존 적립금 안정화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물량 확대 중심으로 전략으로 전환한 것이 주효했단 설명이다. 

지난 6월 30일에는 또 다른 그룹 계열사인 예가람저축은행에 후순위 정기예금으로 350억원을 예치하는 형태의 신용공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자율은 3.04%로 만기는 10년이다.

다만 이번 인수전을 좀 더 뜯어보면 태광그룹 전체의 포트폴리오 재편과 맞물렸다는 점이 드러난다. 지난달 1일 그룹 핵심계열사인 태광산업은 올해와 내년에 걸쳐 1조5000억원 규모의 투자 로드맵을 공개한 바 있다. 또한 지난달 31일 진행된 임시주총을 통해 리츠,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에 대한 출자, 지분투자 및 운영참여업 등을 사업목적에 추가했다.

이는 기존 주력산업인 석유화학과 섬유 중심의 사업구조의 한계가 뚜렷해진 만큼, 화장품과 에너지, 부동산개발 등에 투자해 사업구조를 다변화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로드맵상 연내 1조원 가량이 신사업에 집행되며, 현재 태광산업은 애경산업 본입찰에 참여한 상태다. 

인수 자금 관련 행보도 그룹 전략에 부합한다. 흥국생명은 지난 6월 신문로 사옥 매각 감정평가 용역 업체 선정을 위한 입찰을 마무리했다. 올해 초 설립된 그룹 계열사 흥국리츠운용을 통해 자산 유동화에 나서며, 자금의 일부는 이번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전에 활용될 예정이다.

통상 리츠는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끌어모아 부동산 등을 매입한 뒤, 해당 부동산을 임대해 얻은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배당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유동성 확보와 동시에 계열사에 부동산 자산을 편입시켜 그룹 전반의 부동산 금융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나아가 업계에선 신문로 사옥을 리츠로 매각할 경우, 해당 리츠에 태광산업이 지분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접점을 늘릴 것이라 보고 있다. 앞서 태광산업은 흥국리츠운용의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남대문 호텔 인수에도 1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그룹 차원에서 자산유동화나 보험영업을 통해 확보한 유동성을 M&A나 지분확보에 활용하는 전략 기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1분기 기준 지급여력비율이 200%에 육박하고 있다는 점도 자본확충 부담을 덜어 준다.

현재 업계에서는 기존 부동산 등의 자산 유동화나 금리인하 기조 속 퇴직연금이나 저축성 보험을 확대해 유동성을 추가 확보하는 방안과, 사업목적변경 공시에 언급된 가상자산에 대한 투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번 인수 시도에 대해 흥국생명 관계자는 "부동산 등 대체투자 역량 확대가 목적"이라며 "아직 예비입찰 단계라 섣부르지만, 만약 인수한다면 재무적투자자가 아닌 전략적투자자로서 장기 보유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그룹과의 연계성에 대해선 "금융계열사와 자산운용사와의 시너지 효과는 이미 타금융그룹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며 "당사 역시 그룹 내 금융계열사와의 시너지 통해 견고한 성장과 수익성 개선을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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