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정부가 기업형슈퍼마켓(SSM)과 편의점의 구분 기준을 새롭게 마련하고, SSM에 대한 규제 완화 방안을 검토한다. SSM은 대기업 간판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영업자가 자본을 투자해 운영하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상 대기업과 동일한 규제를 받아왔다. 최근에는 SSM과 일부 대형 편의점 간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면서, 현행 규제 체계의 개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17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SSM과 편의점의 구분이 불분명한 점포에 대해 현장 실사를 포함한 사전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이를 토대로 유통법 시행령 개정 작업에도 착수할 예정이다.
현행 유통법은 SSM을 소유, 면적, 업태 기준으로 구분한다. 대규모 점포를 경영하는 회사나 계열회사, 또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 합계 10조원 이상)의 계열사가 직영이나 프랜차이즈 형태로 운영하면 SSM으로 분류된다. 면적은 3000㎡ 이하, 업태는 한국표준산업분류상 슈퍼마켓이나 기타 음·식료품 위주 종합소매업에 해당한다.
문제는 자영업자가 직접 투자해 GS더프레시, 롯데슈퍼, 이마트에브리데이, 홈플러스익스프레스 등 대기업 간판을 사용해도 동일한 규제를 받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영업시간이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로 제한되고, 주말 의무휴업 등 지자체 조례에 따른 규제도 적용된다.
2013년 유통법 개정 당시 SSM 대부분이 대기업 자본으로 운영돼 대형마트와 동일한 규제가 적용됐다. 그러나 최근 SSM 가맹사업자가 늘면서, 오히려 소상공인까지 규제 대상이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2024년 말 기준 국내 SSM 4사 점포 1433개 중 668개(47%)가 가맹점이다.
정부는 가맹점주의 투자 비율에 따라 규제 적용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각 사의 투자 분담 구조가 달라 실태조사를 통해 예외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SSM 점포까지 대기업 자본과 동일한 규제를 받는 것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실태조사에 나선 상태"라고 설명다.
편의점 업계가 대형화되고 신선식품, 화장품, 의류 등 취급 상품이 다양해지면서 업태 기준이 무너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이랜드그룹의 킴스편의점은 편의점으로 등록됐지만, 실제로는 SSM처럼 다양한 신선식품을 대량 취급해왔다. 이에 정부는 판매 품목을 편의점 수준으로 조정하고, 편의점 관련 시설을 배치하라는 행정지도를 내렸다. 행정지도는 법적 강제성은 없으나, 이랜드리테일은 가맹사업과 추가 출점을 중단하고 기존 직영점을 조정하기로 했다.
이 관계자는 "전문가 회의를 통해 SSM과 편의점을 구분하는 내부 기준을 1차 산물 비중, 매장 면적, 영업시간 등으로 정했다"며 "킴스편의점은 표면적으로는 편의점이지만 실제 운영 방식은 SSM과 유사하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유사 사례에도 이러한 기준을 적용해 검토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상품 구성, 매출액, 담배 판매 여부, 담배 매출 비중 등 평균 데이터를 바탕으로 SSM이 편의점 또는 대형마트 중 어느 업태에 가까운지 판단 기준도 마련할 예정이다.
다만, 모기업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지 여부에 따라 규제 적용이 달라지는 문제도 있다. GS25, 세븐일레븐, 이마트24는 규제 대상이지만, CU는 모기업이 대기업 집단이 아니어서 동일한 형태로 운영해도 규제를 받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유통법이 전통시장 보호를 위해 도입됐으나, 오히려 대형마트만 고사시키고 이커머스, 편의점, 식자재마트 등에는 규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변화된 시장 환경에 맞춰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으로 법과 규제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 산업군에서 모두 경쟁하는데 특정 기업만 규제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도 "현재 규제를 받지 않는 기업까지 무리하게 규제 대상을 확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커져버린 온라인 시장이 대기업과 중소상공인을 모두 위협하고 있다"며 "유통기업들이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전 정부의 규제개혁 1호 과제였던 유통법 규제 완화는 동력을 잃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민주당 및 조국혁신당 등 진보 계열 정당 소속 의원들은 현행 의무휴업일 제도를 공휴일까지 확대하는 등 유통업계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 6건을 발의한 상태다. 허영 민주당 의원은 대형마트가 지역 협력 계획을 이행하지 않으면 강제금을 부과하는 유통법 개정안을, 김동아 민주당 의원은 대형마트의 지역 협력 계획 미이행 시 지자체장에게 등록 제한권을 부여하는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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