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위기'라는 키워드의 뉴스가 연일 경제·산업면을 도배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토록 위태롭게 보였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여론의 걱정이 큰 상황이다. SNS에서도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삼성전자 망하는 거 아니냐"라는 의견이 커지고 있다. 확실히 지금의 삼성전자는 이전에 느꼈던 '세계 초일류 기업'의 위압감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미 반도체 사업 실적은 SK하이닉스에 추월당했고 스마트폰과 가전에서도 해외 기업들의 도전을 받고 있다. 그런데 창립 55주년을 앞둔 삼성전자에게, 위기가 이번이 처음이었을까? 삼성전자는 그동안 숱한 위기를 겪으며 오늘날의 위치에 이르렀다. 이들에게는 위기를 극복할 DNA가 내재돼있다. 본 연재기사는 삼성전자의 위기를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열쇠가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찾아본다. /편집자 주

21일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전자 기자실에서 갤럭시Z폴드6 스페셜 에디션 실물이 공개됐다. (사진=서울파이낸스 DB)
갤럭시Z폴드 시리즈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기술력을 집약한 제품이다. 그러나 플래그십 모델인 만큼 모바일 AP는 퀄컴 스냅드래곤8 3세대가 탑재됐다. (사진=서울파이낸스 DB)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몇 년 전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갤럭시 스마트폰을 아이폰과 비교하며 강점으로 '수직계열화'를 언급했다. 해당 임원이 당시 했던 말의 요지는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의 처음부터 끝까지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는 전세계 유일한 회사라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오디오(AKG), 배터리(삼성SDI), 카메라(삼성전자), 디스플레이(삼성디스플레이)는 모두 삼성전자 자체에서 만들 수 있다. 당연히 스마트폰의 핵심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역시 삼성 엑시노스 시리즈를 탑재할 수 있다. 

실제로 갤럭시 스마트폰 중 상당수는 전 부품을 삼성전자 내부에서 공급 받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플래그십 모델의 AP는 삼성이 아닌 퀄컴 스냅드래곤 시리즈가 탑재되고 있다. 수익성 확보를 위한 버팀목이 될 가장 중요한 플래그십 모델에서 삼성전자의 수직계열화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셈이다. 

오히려 수직계열화 체계를 구축했다는 것은 삼성전자의 주력사업이 하나가 아닌 다양하다는 의미와 같다. 이런 전략이 단점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삼성전자는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어서 단점이 부각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이는 반도체 사업에서 더 두드러진다.

삼성전자는 대표적인 글로벌 종합반도체기업(IDM)이다.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시스템 반도체도 생산하고 있으며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도 하고 있다. 여기에 팹리스(시스템 LSI) 사업도 하고 있다. 반도체의 설계부터 제조까지 전 공정을 삼성전자 내부에서 할 수 있다는 의미다. 

2000년대 디지털 시대가 도래한 이후 반도체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IDM들은 수요 만큼 체급이 커지기 시작했다. 반도체 사업은 그 특성상 천문학적인 시설투자가 요구되는데 사업영역이 다양할수록 투자 규모도 늘어난 셈이다. 하지만 반도체 시장의 규모가 커졌고 수요 역시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설계와 생산 중 더 확실한 분야로 역량을 집중하게 됐다. 체급을 키우는 대신 시장의 변화에 더 기민하게 대응하겠다는 의미다. 

현재 전세계에 남아있는 주요 IDM은 인텔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와 인텔은 전세계 IDM 중 분기 매출이 100억 달러를 넘는 유일한 회사다. 문제는 이들 두 회사가 AI 반도체의 호황기 속에서 '위기'를 겪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위기는 TSMC와 비교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TSMC는 3분기 매출 235억400만달러(약 32조3000억원)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 DS부문은 매출 29조2700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TSMC가 111억6200만 달러(약 15조2700억원), 삼성전자 DS부문이 3조8600억원이다. TSMC의 영업이익률이 47.5%인 반면 삼성전자 DS부문의 영업이익률은 13.1%에 불과하다. 

삼성전자 DS부문의 실적은 HBM과 DDR5, 서버용 SSD 등 고부가제품의 확대에 따른 것으로 TSMC와 정면으로 경쟁하는 파운드리 사업은 장기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대만의 파운드리 업체 TSMC. (사진=TSMC)
대만의 파운드리 업체 TSMC. (사진=TSMC)

TSMC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전문 기업으로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모토를 앞세우고 있다. 주 고객사인 팹리스의 사업영역을 넘보지 않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이는 고객사들에게 자신들의 영업비밀인 반도체 설계를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고객사 입장에서는 경쟁사나 다름없는 삼성전자에 자신들의 영업비밀을 맡기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 같은 상황이 IDM의 가장 큰 한계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인텔은 최근 파운드리 사업을 담당하는 인텔파운드리사업부(IFS)를 분사하기로 했다. 인텔은 IFS를 자회사로 운영하면서 독립성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기술경쟁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심각한 경영 위기를 겪고 있는 인텔이 생존을 위해 내놓은 특단의 대책이다. 인텔의 이 같은 결정 때문에 일각에서는 삼성전자 역시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사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파운드리 분사 전략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설비투자에 필요한 수십조원의 비용을 독자적으로 조달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TSMC에 IFS까지 본격적으로 경쟁에 뛰어들면서 고객사 확보가 더 치열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홀로 시장에 나가 스스로 투자재원을 확보하는 것보다 삼성전자의 울타리 안에 있는게 더 나은 상황이라는 의미다. 

삼성전자가 체급을 줄이는 일은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적기를 놓쳤다'는 말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업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체급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AI 반도체의 흐름은 앞으로도 이어진다. 이는 HBM뿐 아니라 CXL(Compute Express Link), PIM(Processing In Memory) 등 차세대 AI 반도체의 시장도 열린다는 의미다. 시장 경쟁이 지금보다 더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회사의 역량을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다. 

필리핀 클락에 진출한 삼성전자 매장 (사진=서울파이낸스)
필리핀 클락에 진출한 삼성전자 매장 (사진=서울파이낸스)

스마트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의 경쟁사인 애플은 매년 한가지 시리즈에 4종 모델의 스마트폰을 내놓는다. 삼성전자가 국가별로 다양한 가격대의 스마트폰을 내놓으며 글로벌 점유율 1위를 차지한 것과 달리 애플은 점유율 1위는 내줘도 수익성은 삼성전자에 앞서있다. 

여기에 애플은 아이폰의 부품 전체를 외부에 위탁생산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디스플레이와 모뎀 칩 등의 자체 생산을 모색하기도 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애플의 위탁생산 방식은 품질관리에 위험이 생길 수 있지만, 충분한 공급망 관리가 이뤄진다면 원가를 절감해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다. 

애플과 TSMC의 공통점은 다양한 사업영역에 확보하는 대신 모바일 디바이스, 파운드리 등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두 회사는 삼성전자보다 수익성을 확보하고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고 진통도 크겠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사업 역량을 집중하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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