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1기획/경제 3대 악재上] 가계빚 규모·증가세·연체율 모두 '비상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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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잃은 '상저하고' 경기전망···3高·PF부실에 9월 위기설까지
"부채 양과 질 모두 우려 수준"···절벽 내몰린 청년·취약계층
'갈지자' 금융정책 혼란 가중···"중장기·구조적인 정책 시급"
금융위원회가 13일 '가계부채 현황 점검 회의'를 열고 가계대출 급증 원인으로 지목되는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 만기를 최장 40년으로 제한하고, 특례보금자리론 기준을 강화하기로 한 가운데, 이날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붙은 특례보금자리론 안내 현수막 앞으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금융위원회가 지난 13일 '가계부채 현황 점검 회의'를 열고 가계대출 급증 원인으로 지목되는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 만기를 최장 40년으로 제한하고, 특례보금자리론 기준을 강화하기로 한 가운데, 이날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붙은 특례보금자리론 안내 현수막 앞으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올해 우리 경제의 '상저하고(上低下高)' 전망이 힘을 잃고 있다. 지난해 말 정부는 올해 상반기 대규모 재정 투입을 통해 가라앉은 경기를 부양한 뒤 중국경기 회복, 수출 개선 등이 예상되는 하반기에 반전을 모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하반기도 절반가량 지난 현 시점에서 기대 섞인 전망은 우려로 뒤바뀌고 있다. 수출은 11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여파로 수출·투자·소비 역시 부진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사상 최고치까지 치솟은 가계부채는 우리경제의 뇌관이 되고 있고, 제2금융권·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규모 부실 우려까지 겹치면서 '9월 위기설'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경기를 둘러싼 불안심리가 어느 때보다 커진 지금, 우리 경제를 둘러싼 3대 악재를 3회에 걸쳐 짚어본다./편집자주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한국 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가 확연한 증가세를 보이면서 우리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다. 사상 최고치까지 치솟은 가계빚 규모는 물론 증가세 역시 가파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6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금융기관 대출, 신용카드 이용액 등 포괄적인 가계빚)은 1862조8000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9조5000억원 증가했다. 증가 규모는 지난 2021년 4분기(17조4000억원) 이후 가장 크다.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가계대출 증가세는 3분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13일 발표한 '2023년 8월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75조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전월과 비교하면 6조9000억원 늘어난 것으로, 증가폭은 2021년 7월(9조7000억원) 이후 2년1개월 만에 가장 컸다.

가계부채가 사상 최고치까지 치솟으면서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는 우리경제 성장에 족쇄가 되고 있다. 가계빚 급증은 이자부담을 늘려 소비 위축을 불러오는 주 요인이 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8일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가계부채가 지금 수준, 또 지금 수준보다 더 올라갈 경우 우리나라의 성장잠재력을 크게 저해할 가능성이 있고 이미 그 수준은 넘었다고 본다"며 "부채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이자율이 지금처럼 조금만 올라가도 쓸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들고 그것이 성장률을 낮추는 영향으로 크게 작용한다"고 우려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협의단은 우리나라 경제에 대해 가계부채 관리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우리나라 경제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2주간 한국을 방문한 IMF 협의단은 지난 6일 점검 결과(2023년 국제통화기금 연례협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부동산 시장 및 높은 가계부채 관련 금융 취약성을 통제하기 위해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가계부채 증가흐름과 관련해 양적 측면뿐 아니라 질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측면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취약층 이용 비율이 높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대출이 크게 늘어난 가운데, 이들 금융회사의 연체율 상승세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저축은행업권 연체율은 5.33%로 지난해 말(3.41%) 대비 1.92%p나 급등했다. 같은 기간 새마을금고 연체율은 3.59%에서 5.41%(1.82%p↑), 상호금융권은 1.52%에서 2.80%(1.28%p↑), 카드사는 1.20%에서 1.58%(0.38%p↑)로 각각 상승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가계부채 추세와 관련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주택가격에 영향을 받는 주택담보대출과 저축은행, 카드론 등 제2금융권의 대출 규모가 크게 불어나면서 이 부분의 연체율이 늘어났다는 것"이라며 "부채의 질이 나빠지고 있는 건데, 특히 저축은행들 중에선 연체율이 5%에서 8%를 넘어서는 곳도 있어서 정부가 해당 업권에 대한 건전성 관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8일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가계부채가 지금 수준, 또 지금 수준보다 더 올라갈 경우 우리나라의 성장잠재력을 크게 저해할 가능성이 있고 이미 그 수준은 넘었다고 본다"고 밝혔다. (사진=김무종 기자)

◇늘어난 빚에 연체율 덩달아 급증···절벽 내몰린 청년층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1900조원을 바라보는 가계빚에 대한 부실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 실제 최근 금융권 가계대출 연체율은 모두 증가세로 돌아섰다. 코로나19 당시 시장에 풀린 풍부한 유동성은 투자를 유도하고 대규모 부실을 틀어막는 역할을 했지만, 엔데믹 이후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이같은 부실 우려는 청년층, 자영업자, 제2금융권 등 취약 부문을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특히, 앞으로 우리 경제를 이끌어갈 청년층의 연체규모가 급증하고 있는 점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3일 국내 19개 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연령별 신용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20대 청년층의 연체율은 1.4%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6월 말 0.7%보다 2배 증가한 수치다. 30대 연체율도 0.6%를 기록, 전년 동기(0.3%)보다 2배 상승했다. 같은 기간 40대와 50대의 연체율이 0.5%를, 60대 연체율이 0.8%를 각각 기록해 0.2~0.3%p(포인트)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청년층의 연체율 증가속도가 상대적으로 가파르다는 분석이다.

최대 100만원인 소액생계비 대출을 받은 20대 4명 중 1명 꼴로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서민금융진흥원이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관련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4일까지 소액생계비 대출을 받은 20대의 이자 미납률은 24.5%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전 연령대 미납률(14.1%)의 2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소액생계비 평균 대출금액인 61만원에 대출금리(연 15.9%)를 적용할 경우 첫 달 이자는 8000원 가량이다. 생계비대출을 빌린 20대 청년 상당수가 한 달에 1만원도 안되는 이자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개인워크아웃(파산)을 신청하는 청년층도 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개인워크아웃을 통해 원금 감면이 확정된 20대는 4654명으로, 5년 새(상반기 기준) 최대 수준으로 불어났다. 20대 청년층의 특성상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지 못한 상황에서 고금리, 고물가로 생활고를 겪으며 파산에 이르게 됐다는 분석이다.

◇복잡해진 가계대출 관리 방정식···'백년대계' 없는 금융정책

제2금융권·부동산PF·청년층 등 약한 고리를 중심으로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고, '부동산시장 활성화'와 '가계빚 증가세 억제' 사이의 적정한 균형을 찾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보다 정교하고 장기적인 관점의 가계부채 관리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금융당국의 대책을 살펴보면 뚜렷한 방향성을 읽기 어렵다는 게 업권의 진단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가라앉은 부동산시장을 띄우기 위해 각종 대출규제를 완화하고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출시를 독려했던 것이 불과 몇 개월 전인데, 최근 들어 다시 금융회사들의 대출현황을 점검하는 등 강도 높은 규제 강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부동산 대출을 완화하면서 가계대출이 증가하는 등 엇박자가 나고 있다. 사진은 하늘에서 본 서울 아파트 등 부동산 모습. (사진=서울파이낸스)
정부가 부동산 대출을 완화하면서 가계대출이 증가하는 등 경제 리스크 대응에 엇박자가 나고 있다. 사진은 하늘에서 본 서울 아파트 등 부동산 모습. (사진=김무종 기자)

대표적으로 50년 주담대의 경우 고금리 시대 차주들의 원리금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상품으로, 애초 당국은 금융권의 상품 출시를 독려했었다. 이에 맞춰 은행, 보험사들도 올해 50년 주담대 판매를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 부동산시장 회복세에 힘입어 가계대출이 급증하자, 당국은 돌연 50년 주담대를 빚 증가 주범으로 꼽았다. 당국의 태도가 급변하면서 금융회사들은 상품 판매를 중단하거나 산정만기를 최대 40년까지로 줄이는 등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당국이 50년 주담대 상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대출 '막차수요'가 대규모로 몰리는 부작용도 발생했다. 실제 지난달 말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75조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은행 영업점에는 50년 주담대에 대한 문의가 폭주했다. 당국의 갈지자 대책에 금융회사는 물론 대출자들의 혼란도 커지는 모양새다.

특례보금자리론도 비슷한 상황이다. 당국이 올해 1년간 공급하기로 했던 특례보금자리론의 경우 △일반형(부부합산 연소득 1억원 초과 또는 집값 6억~9억원 해당)과 △우대형(부부합산 연소득 1억원 이하 및 집값 6억원 이하)으로 나뉘는데, 이 중 일반형 대상자와 일시적 2주택자에 대해선 이달 27일부터 특례보금자리론 공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기존 정책모기지보다 요건이 대폭 완화된 특례보금자리론이 50년 주담대와 함께 최근 가파른 가계대출 증가세의 주범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가계빚을 잡기 위한 취지라지만, 1년간 한시적으로 요건만 맞으면 대출을 내주겠다는 기존 발표와 달리 사실상 출시 8개월 만에 문을 내리게 되면서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장은 "가계부채가 위험 수위까지 도달했는데, 당국에서는 은행 위기로만 번지지 않으면 괜찮다는 단편적인 관점으로 관리를 하고 있다"며 "현재 적신호가 켜진 부동산PF, 제2금융권쪽에 대해서도 '급한 불만 끄자'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고, 뚜렷한 방향성이 담긴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정책이 부재하다 보니 최근의 50년 주담대 사례같은 게 나왔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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