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용지 공급 방식, 추첨 대신 평가?···"시장 너무 모른다"
공동주택용지 공급 방식, 추첨 대신 평가?···"시장 너무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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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택지 내 공동주택용지, 임대주택 공급 많은 업체에 우선권
건설업계 "'벌떼입찰' 등 편법행위 차단 위한 도입 취지엔 공감"
"싸고 질 좋은 주택? 현실적이지 못해"···대형·중견 건설사 '난색'
서울시 전경.(사진=서울파이낸스DB)
서울시 전경.(사진=서울파이낸스DB)

[서울파이낸스 박성준 기자] 정부가 앞으로 2·3기 신도시 등 공공택지의 아파트 등 공동주택 용지 공급 방식을 추첨이 아닌 입찰·평가에 따라 우선 공급하기로 했다. 낙찰 확률을 높이기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내세우거나 계열사를 동원하는 '벌떼입찰' 등의 편법행위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업계에서는 추첨 방식으로 빚어진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정책 방향 및 취지에 대해 대체로 공감했다. 하지만 임대주택 등 공공성 확대의 내용이 시장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설익은 발표라는 지적이다.

9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따르면 올해 4월 이후 입찰 등 일반매각(공모일 기준)으로 공동주택용지는 총 45곳의 필지가 공급됐다. 인허가 문제로 지연된 일부 필지를 제외하고 연말 집중된 공급물량을 고려하면 대부분의 물량을 소화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달 추첨을 진행한 '고양장향B1블록'이 올해 가장 높은 30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는 등 공동주택용지를 차지하기 위한 건설사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수백대 1에 달하는 경쟁률에는 허수가 존재한다. 분양가상한제가 민간에도 적용되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사업이 가능한 공공택지에 건설사들이 몰린 것도 있지만,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한 편법도 이용됐다. 일부 건설사들은 수십개의 계열사를 동원해 추첨확률을 높이고, 당첨 시 모회사에 전매하는 방법으로 벌떼입찰 문제가 빚어진 것. 이는 결국 공정성 문제까지 불거지게 만들었다.

그동안 별다른 해결방안을 찾지 못했던 정부는 결국 추첨 방식 전면 개선해 실질 요건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강구책을 내놨다. 핵심은 임대주택 공급 등 사회적 기여와 주택 품질을 평가하는 경쟁 공급 방식이 도입된다는 점, 기존 추첨 방식도 일정 수준 이상 업체에 공급 우선권을 부여하고 택지수급 목적의 계열사 응찰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정책의 취지가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추첨 방식으로 빚어진 벌떼입찰 논란은 꾸준히 제기돼 왔으며, 신청자격 순위에 차등을 두는 것으로도 온전히 막을 수 없었다. 이번 변경으로 법인만 많이 만들어 '찔러 보자'는 식의 경쟁을 막을 수 있고, 특별설계공모 등의 입찰 계획으로 향후 대형 건설사들의 참여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질 좋은 주택 공급을 강조해온 정부로서는 '래미안', '힐스테이트', '자이', '푸르지오' 등의 브랜드파워가 있는 임대주택도 노려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대안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시장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정책이란 비판이다.

통상 한국사회에서의 임대주택은 상대적으로 싼 건축비를 통해 시세 대비 저렴한 주택으로 공급돼 왔다. 평가를 통해 공공주택에서 야기되는 부실공사를 막고 견실한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취지도 중요하지만, 이같은 문제가 대부분 공사수익에서 초래한 문제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임대주택 등 공공성을 확대한다는 것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한 대형 건설사들의 참여를 유도한다고 하지만, 시중가격보다 싼 값에 브랜드 주택을 공급하는 데는 공사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문제가 있다. 애당초 비싸게 짓고 고가에 집을 파는 대형 건설사들의 구미를 당기지 못할 것이란 지적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그동안 임대주택은 중상위 계층을 위한 공급이 아니었다. 유럽의 화려한 공공주택 모델들을 얘기하지만 모두 그만큼 비용이 투입됐으며 높은 임대료 상황은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향후 임대주택에 들어설 수 있는 임차인들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의 임대료와 순수하게 질이 높은 주택의 비용 사이에 차이가 발생할 경우 이는 모두 국고로 메꿔야 한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건설사들도 각기 다른 고민에 빠졌다. 중견사들은 그렇지 않아도 대형사들로부터 일감을 위협받고 있는 가운데 더욱 설자리를 잃지 않을까 걱정이다.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공공부문 가점 변환으로 예전보다 더욱 공공택지에 대한 수익성이 떨어지게 되고 설계 공모 심사 등은 대기업들에게 더욱 유리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다"라고 하소연했다.

대형사들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해외리스크가 커진 탓에 일감 확보 측면으로 정부의 유인책을 마냥 무시할 수도 없지만, 낮은 수익성과 임대주택 공급에 따른 브랜드 이미지 약화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임대주택 이미지 제고를 위해 대형사의 브랜드를 활용하는 것은 정부로써는 손해보지 않는 장사지만 대형사 입장에서는 커다란 위험 요소"라며 "사업 다각화에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무리해 들어갈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번 개편이 궁극적인 제도 개선의 목적보다는 정책적 필요에 의한 것이란 의혹도 제기된다. 세부 방안이나 구체적인 내용도 공개되지 않은 데다 매입임대형 주택을 확대하겠다는 정책 발표와 함께 임대주택 실적을 평가에 반영했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사들이 규모의 경제로 평가항목을 맞춰나가기 시작하면 당연히 유리할 수 밖에 없고, 중견 이하를 고려해 형평성을 맞추다 보면 정책 방향을 잃을 수 있다"라며 "본격적으로 적용되는 시점은 현 정권의 임기를 벗어나기 때문에 대책이 유야무야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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