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 아비커스의 자율주행 솔루션을 탑재한 '프리즘 커리지'호 (사진=HD현대)
HD현대 아비커스의 자율주행 솔루션을 탑재한 '프리즘 커리지'호 (사진=HD현대)

[서울파이낸스 김완일 기자] 자율운항 선박이 해운·조선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새로운 먹거리로 급부상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선원 부족과 고령화 문제가 심화되는 가운데, 자율운항 기술은 사고 위험을 줄이고 인력난을 해소할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 조선 '빅3'로 평가받는 HD현대, 한화오션, 삼성중공업도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전방위 기술개발과 실증에 속도를 내고 있다.

22일 글로벌시장조사업체 어큐어마켓리포트에 따르면 자율운항 선박 시장은 오는 2032년 약 1805억 달러(한화 약 250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특히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높은 수준의 항해 안정성과 효율성이 확보되면서 시장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기존 선박 대비 연료비 절감과 온실가스 감축이 가능하다는 점도 각국이 주목하는 요소다. 이에 따라 글로벌 조선 강국들은 기술 주도권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 국내 조선 3사, 기술 고도화 '총력전' = HD현대, 한화오션, 삼성중공업은 자율운항 선박을 미래 주력 사업으로 낙점하고 관련 기술 내재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자율운항 기술은 선박 운항의 상당 부분을 보조하는 수준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선박 스스로 바다 위에서 인지-판단-제어를 수행할 수 있는 고도화된 AI 기술이 목표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자율운항 선박 안전기준인 'MASS 코드'를 오는 2032년 발효할 계획이다. 업계는 이 시점을 자율운항 기술의 '상용화 분기점'으로 보고, 그 전에 시장을 선점하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HD현대는 자회사 아비커스를 통해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2022년 LNG운반선 '프리즘 커리지'를 이용해 세계 최초로 대양 자율운항에 성공하며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후 상용화를 본격화하며 HD현대중공업에서 건조되는 선박에 AI 기반 항해보조 시스템 '하이나스(HiNAS)'를 기본 탑재하고 있다. 이 기술은 인공지능과 센서 융합으로 선박 주변 상황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최적의 항해 경로를 제안한다. HD현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레저보트용 자율운항 시스템 '뉴보트'도 개발하며 B2C 시장까지 겨냥하고 있다.

한화오션은 2021년 자율운항 시험선 '한비'를 공개한 데 이어, 자율운항 시스템 'DS4'를 대형 상선에 적용해 실증시험을 진행 중이다. 방산 명가답게 군용 무인 수상정, 정찰용 무인 잠수정, 기뢰전 장비 등 방위산업 분야로도 기술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화시스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방산 계열사와 협력해 해양 방산 기술 고도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 AI 기반 전투용 무인선박 개발도 장기 과제로 검토 중이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11월 자율운항 연구선 '시프트 오토'를 출항시키며 본격적인 실증에 돌입했다. 이 선박은 항해, 접안, 정박 등 선박 운항 전 과정을 자동화했으며, 삼성전자의 음성비서 '빅스비'와 스마트홈 플랫폼 '스마트싱스'를 탑재해 생활밀착형 기술을 접목했다. 실제 선원 없이 AI와 센서만으로도 자율운항이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입증하며 조선 분야 '스마트십' 기술 진화를 주도하고 있다.

◇ 정부도 'K조선 기술 자립' 팔 걷었다 = 정부도 자율운항 선박을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규정하고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해양수산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공동으로 총 1600억원 규모의 '자율운항 선박 기술개발사업(KASS 프로젝트)'을 추진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항해지원, 제어시스템, 통신 및 사이버보안 등 핵심 기술의 국산화를 목표로 한다.

또한 올해 1월부터 세계 최초로 '자율운항 선박법'도 시행됐다. 이 법은 자율운항 기술 개발과 상용화 지원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조선소와 기자재 업체, 해운업계가 체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법 시행과 함께 '자율운항 선박 정책위원회'를 출범시켜 연구개발 방향과 정책 과제를 논의했다. 위원회에는 산업계, 학계, 연구기관 전문가들이 참여하며, 조선3사를 포함한 기술협의회도 함께 운영될 예정이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기술개발에서 실증, 상용화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촘촘한 지원을 하겠다"며 "올해 말까지 해수부와 협력해 향후 10년간의 기술개발 로드맵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도 "자율운항 선박 상용화를 위한 해운물류체계 전환과 전문인력 양성, 제도 개편 등 중장기 추진 전략을 연내 마련해 실행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율운항 선박이 단순한 조선업 혁신을 넘어 해운물류, 국방, 환경 등 다양한 산업을 포괄하는 '융합 기술'로 진화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산업계의 경우 조선과 전자, AI 등 관련 산업들이 고르게 발전하고 있는 만큼 자율운항 선박 기술에 대한 노하우도 늘고 있다"면서 "조선 3사가 치열한 기술경쟁을 펼치고 있는 만큼 '조선 강국'이란 타이틀을 넘어 '해양 스마트기술 강국'으로의 도약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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