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정진완(57) 우리은행장이 부당대출, 횡령 등 금융사고로 홍역을 치른 우리은행을 쇄신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취임한 지 100일이 지났다.
은행원 생활 대부분을 영업점에서 보내 현장 애로사항을 잘 이해하고 있는 정 행장은 불필요한 업무를 걷어내고 내실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조직문화 쇄신을 꾀하고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1일 우리은행장에 오른 정 행장은 지난 9일자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정 행장은 지난해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 사고로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던 중 조직 쇄신을 이끌 적임자로 평가되며 은행장으로 발탁됐다.
당시 중소기업그룹 부행장을 맡던 정 행장은 행장 후보군 가운데 가장 젊었던 데다 부행장 1년차였던 터라 '파격 발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은행의 뿌리깊은 온정·계파주의 문화를 타파하는 것이 그룹의 가장 시급한 과제인 만큼 쇄신 의지를 보여주는 차원에서 정 행장을 선임했다는 분석이 많았다. 정 행장은 사실상 통합 세대 이전의 마지막 한일은행-상업은행 세대로, 두 은행 간 계파갈등에 마침표를 찍을 인물이란 기대를 받기도 했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듯 정 행장은 대대적인 인사를 통해 세대교체를 꾀하는 한편,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인사제도 혁신에 나섰다. 계파와 상관 없이 '능력' 중심의 인재 기용을 원칙으로 하고, 직원들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제도는 과감하게 정리했다.
정 행장의 이같은 철학은 지난해 12월 단행한 은행 임원인사와 조직개편에서 엿볼 수 있다. 당시 인사와 조직개편에는 취임을 앞둔 정 행장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우리은행은 본부조직을 20개 그룹에서 17개 그룹으로 축소하고 부행장 정원을 23명에서 18명으로 대폭 줄였다. 기존 부행장 11명이 물러났고 승진한 부행장 6명 가운데서는 1971년생을 포함, 연령대를 크게 낮췄다. 해외법인장 연령도 1970년대생 본부장급으로 낮췄고 유사한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들은 통·폐합해 조직 슬림화와 효율성을 도모했다.
조직개편 과정에서 '영업점 VG(Value Group) 제도'를 폐지한 것 역시 정 행장이 추진하는 업무 효율성 제고 작업의 대표적인 사례다. 인근 영업점 5~6개를 묶어 공동으로 영업하고 성과도 합산해 평가하는 VG제도는 영업점 직원들 간 협업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난 2021년 도입됐다.
그러나 협업 시너지를 확대하겠다는 취지와 달리, 이 제도는 성과 무임승차, 중복 업무 등 오히려 현장 기동력과 직원들 사기를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개인과 소속 영업점의 성과와 상관 없이 인근 영업점의 성과까지 반영되는 구조라 KPI(핵심성과지표)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불만도 나왔다.
'영업통' 정 행장은 이같은 현장 고충을 반영, VG제도를 폐지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도록 했다. 이번 '정진완 방식'의 조직개편은 경영환경이 날로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효율성을 높여 영업력을 강화하는 것이 은행 기초체력을 키울 핵심 '키'라는 것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최근 우리은행 IB그룹을 여의도 파크원타워로 이전한 것도 업무 효율성 제고 전략의 일환이다. 은행 IB그룹을 우리금융의 자본시장 계열사인 우리투자증권, 우리자산운용, 우리PE자산운용이 모여있는 여의도로 집결시켜 보다 신속한 정보 교류가 가능하도록 했는데, 이를 통해 집적효과를 높인다는 복안이다.
취임 직후 열린 은행 경영전략회의에서 '내실 경영'을 약속한 정 행장은 KPI 절대평가 도입, 업무·인사·평가제도 개편 등 전폭적인 업무 혁신을 추진할 계획이다. 정 행장이 약속한 제도 개선안들은 충실한 내부통제 시스템으로 이어져야 한다. 지난 100일간의 경영을 통해 실용적 리더란 평가를 얻은 정 행장이 속도감 있는 내부 혁신으로 조직 쇄신에 성공할지 이목이 집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