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골든타임' 놓칠라···정세균이 쏘아올린 LG-SK 합의 촉구
배터리 '골든타임' 놓칠라···정세균이 쏘아올린 LG-SK 합의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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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전기차 배터리 자국 기업 육성 집중···미국도 '바이 아메리칸' 서명
CATL, 중국 정부 차별적 보조금·압도적 내수시장 기반 유럽시장 진출
정세균 국무총리 (사진=연합뉴스)
정세균 국무총리 (사진=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박시형 기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결정을 2주 앞두고 정세균 국무총리가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분쟁에 대해 합의를 촉구했다.

업계에서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이제 성장을 시작하는 단계인데 당장의 욕심 때문에 '골든타임'을 놓치고 글로벌 시장을 모두 잃을 수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29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정 총리는 전날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LG와 SK가 해외에서 벌이는 소송에 대해 나설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소송 비용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경제적인 것 뿐만 아니라 양사가 싸우면 남 좋은 일만 시킨다"며 "빨리 해결하시라"고 답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분쟁은 지난 2019년 4월 시작돼 햇수로 3년차가 됐다. 당시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에서 인력을 빼내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ITC에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으로 인해 어느 한쪽이라도 멈추게 되면 연결된 전기차 제조사도 다른 배터리 공급사를 찾을 때까지 생산을 중단해야 한다. 특히 소송이 진행되는 미국의 경우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거나 가동중이라 일자리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미국 하원의원들까지 나서 양 사의 합의를 촉구하고 있다.

정 총리도 이 부분을 지적하며 "미국 정치권도 나서 제발 빨리 해결하라고 한다. 정말 부끄럽다"고 말했다.

한국의 상황과 달리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탈한국을 꾀하며 각국 정부를 중심으로 자체적인 개발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최근 내놓은 '유럽 전기차 배터리 시장동향'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역외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자 'EU 배터리 연합(EBA)'를 출범하고 배터리 생산-유통-재활용으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은 유럽내에 구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뿐만아니라 2019년 12월 전기차 배터리 연합 7개국이 주도하는 IPCEI(Important Projects of Common European Interest) 전기차 배터리 연구 프로젝트에 32억유로(약 4조3000억원) 투자를 승인했다.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진=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진=SK이노베이션)

이를 통해 자동차 제조사와 배터리 제조사가 합작사를 설립하는 등 배터리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독일 폭스바겐과 스웨덴 기업 노스볼트는 독일에 공공으로 공장을 세우고, 2023~2024년 연간 16GWh의 배터리를 생산할 계획이다. 프랑스 자동차 메이커 PSV도 글로벌 에너지 기업인 토탈의 자회사 '샤프트'와 합작사를 설립하고, 2023년 24GWh를 생산할 예정이다.

EU는 또 지난 27일(현지시간) 2025년까지 전기자동차 배터리를 자급자족하기 위해 29억유로(약 3조8900억원)를 투입해 BMW와 피아트 등 42개 국가의 기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중국의 배터리 제조업체 CATL는 중국 정부의 차별적인 보조금 정책과 압도적인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글로벌 수요 대응에 나섰다. 현재 독일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중이며 내년 완공이 목표다. 인도네시아, 미국, 일본 등에도 배터리 공장을 지을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내에서도 6조~7조원을 들여 생산라인을 확장할 예정이다. CATL은 올해 배터리 생산능력을 국내 배터리 3사를 모두 합한 것(200GWh)보다 더 많은 230GWh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자동차 천국인 미국의 경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연방정부가 물품을 조달할 때 미국에서 생산되거나 미국산 부품이 적어도 50% 이상 사용된 차량만 구매하는 '바이 아메리칸' 행정명령에 서명해 자국 기업 보호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또 미국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는 이미 배터리를 자체생산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올해 하반기 자체 개발한 4680 배터리를 생산·탑재해 전기차 생산 단가를 최대한 낮추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전기차 시장이 성장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각국 정부들이 자국기업 보호에 나서는 것은 국내 배터리 업체들에게 나쁜 소식이다.

일례로 독일의 경우 지난해 전기차 판매량이 200% 이상 성장했다. 가장 많이 팔린 전기차가 르노의 조에 차량인데 여기엔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가 공급된다. 하지만 EU의 정책 등으로 공급사가 바뀔 수도 있다. 르노는 현재 배터리 합작사 설립을 위한 파트너를 물색중이다.

전기차 르노 조에 (사진= 르노삼성자동차)
전기차 르노 조에 (사진= 르노삼성자동차)

이를 두고 배터리 업계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다툼으로 배터리 시장 선점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총리가 "한국 배터리 산업의 미래가 앞으로 크게 열릴텐데 양사가 자기들끼리 작은 파이를 놓고 싸우지 말고, 큰 세계 시장을 향해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란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지난해 1~11월 글로벌 배터리 점유율(중국 제외)은 각각 31.1%와 9.9%로 2위와 4위를 차지했다. 전년대비 성장률은 86.8%, 239.7%에 이를 정도로 급성장을 하고 있다.

당장은 글로벌 시장의 우위를 점유하고 있지만 다른나라들까지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했을 때 압도적으로 우수한 제품 없이는 선택받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미 소송비용으로 4500억원 이상 써버린만큼 빠른 시간 내 합의해 불필요한 추가 비용 지출을 막고, 이를 연구개발(R&D) 비용으로 돌려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법률 소송이 진행될 경우 로펌의 법률자문 외에도 전사적인 대응이 필요할 때가 많아 사실상 업무가 중단되는 일이 잦다"며 "이미 투입된 소송 비용도 천문학적인만큼 빠른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 뒤 연구개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LG화학 오창공장에서 임직원들이 전기차 배터리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LG화학)
LG화학 오창공장에서 임직원들이 전기차 배터리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LG화학)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정 총리의 발언 이후 합의에 대한 입장을 내놨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소송과 관련해 현재 합의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며 "원만한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다만 최근까지 SK이노베이션의 제안(내용)이 협상 의지가 전혀 없는 것인데, 논의할 만한 제안이 있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SK이노베이션은 지동섭 배터리 사업 대표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모든 소송 과정에 성실하게 임해왔음에도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해 국민들께 매우 송구하다"며 "정 총리의 이날 우려 표명은 국민적인 바람이라고 엄중히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지 대표는 이어 "이런 우려와 바람을 잘 인식해 분쟁 상대방과 협력적이고 건설적인 대화 노력을 통해 원만히 해결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K배터리가 국가 경제와 산업 생태계 발전에 기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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