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에 韓기업 피해 현실화···주력산업 모두 영향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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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현대차 등 40여 기업, '러 스위프트망 추방'에 '촉각'
자동차 수출·조선 수주 '차질'···제3통화 결제 등 대안 분주
서울 강남구 전략물자관리원에서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러시아 데스크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전략물자관리원에서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러시아 데스크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김호성 기자]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스위프트·SWIFT) 결제망에서 퇴출시키기로 하면서 자동차, 반도체, 가전, 철강, 조선, 화장품 등을 위주로 한 국내 기업들의 수출 차질이 우려된다.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한 러시아가 스위프트 결제망에서 퇴출되면서 국내 재계와 산업계, 금융계는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스위프트는 200여개국의 1만1000개 넘는 금융기관이 안전하게 결제 주문을 주고받기 위해 쓰는 전산망이다. 러시아 은행들이 스위프트에 접속하지 못하게 되면 세계 금융과 자본시장에서 퇴출되는 것과 같다. 사실상 러시아와 수출입 거래도 어려워진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번 초강력 제재의 영향으로 금융 거래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최악의 경우 수출입이 모두 막히는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28일 재계 및 금융권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과 EU 집행위원회가 러시아 은행들을 스위프트망에서 추방하기로 공동 발표했으나 아직 대상 은행 리스트와 구체적인 실행 계획 등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금융당국은 제재안의 윤곽이 드러나는 대로 금융권과 함께 대체 결제 방안을 마련하는 등 우리 기업 및 교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집중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러시아는 우리나라의 10위 교역 대상국으로 지난해 수출 1.5%, 수입 2.8%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對)러시아 수출액은 99억8000만 달러(약 12조 원)로 전체 교역국 가운데 12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6444억 달러)의 1.5%다. 자동차·부품, 철 구조물, 합성수지 등이 우리 수출의 절반을 점유하고 있어 이들 품목들의 수출 감소가 우려된다.

러시아 수입의존도가 높은 나프타(25.3%), 원유(24.6%), 유연탄(12.7%), 천연가스(9.9%) 등 에너지 수입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이들 품목은 우리나라 전체 러시아 수입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 은행의 퇴출 범위에 따라 국내 기업 역시 러시아로부터 수출 대금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러시아에는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 현대자동차, 기아, 아모레퍼시픽, 오리온 등 40여 개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다.

이 가운데 러시아 수출 비중이 높은 자동차 산업은 수출 규모 뿐 아니라 현지 생산 차질마저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의 러시아 수출 품목 중 승용차 비중은 25.5%, 자동차 부품은 15.1%에 이른다. 특히 미국산 차량용 반도체가 들어간 국산 자동차의 수출 제재가 예상된다. 앞서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 합병 때도 서방 제재로 한국의 러시아 승용차 수출은 이듬해 62.1% 급감했고 타이어도 55.7% 줄어들었다.

특히 현대차·기아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연 23만대 규모 생산 공장을 운영중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 부품 업체가 러시아에 수출하는 부품의 90% 이상은 현대차·기아 현지 공장으로 납품된다. 이번 제재로 수출이 원활하지 못할 경우 현대차·기아의 생산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완성차 업계 일각에선 꾸준히 성장세인 전기차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도 제기한다. 차량 강판 소재인 알루미늄과 배터리 소재인 니켈·리튬 등의 가격 폭등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현재 중국에 이어 알루미늄 생산국 세계 2위다.

조선업계에서는 러시아로부터 수주를 이미 확정한 대금 회수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3사가 러시아와 계약한 액화천연가스(LNG)선과 LNG 프로젝트 총 금액은 6조9970억원에 달한다. 러시아는 국영 에너지 기업이 선박 발주를 하는데, SWIFT 결제망을 막으면 달러를 통한 대금 지급이 어려워져 국내 조선사의 부담이 커진다.

반도체 및 전자기기의 경우 스위프트망 제재 보다는 FDPR(해외직접생산품규칙) 제재로 인한 영향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생산하는 반도체에는 미국의 소프트웨어나 기술이 대부분 들어간다. 미국의 반도체 설계 기술이 적용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가 들어가는 스마트폰 역시 FDPR 적용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로의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해 기준 7400만 달러(약 885억원)로 전체 반도체 수출의 0.06% 수준에 그치지만, 생산에 필요한 핵심 소재는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크다.

식각 등 공정에 있어서의 핵심 소재인 네온·크립톤·제논(크세논) 물량 상당 부분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산업부 집계 결과 네온은 수입액 23%를 우크라이나로부터, 5%를 러시아로부터 충당하고 있다. 크립톤과 제논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수입 비중이 각각 48%, 49%에 달한다.

아울러 삼성전자의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1위(30%)라는 점에서 수출 감소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상사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지난 13일 정부의 4단계 여행금지 발령조치가 난 직후 현지에 근무하던 주재원 8명과 가족 9명을 대피시켰다. 이들 중 일부는 서울로 귀국했으며 나머지 인력은 터키에 머무르며 상황을 지켜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우크라이나 남부 흑해의 최대 수출항 중 하나인 미콜라이프에서 연간 250만톤 규모의 곡물 수출터미널을 운영하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이곳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호밀·옥수수 등을 구매해, 유럽연합(EU)와 중동·아프리카 지역으로 판매하는 트레이딩 사업을 해왔다. 러시아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내 신규 구매 및 판매 계약이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코퍼레이션, 현대로템,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이 참여를 추진해 온 180억 달러(약 20조4500억원) 규모 우크라이나 고속철도 인프라 사업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부와 기업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될 것을 대비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짜내고 있다. 

먼저 러시아와 거래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고민 중이다. 제3의 통화를 이용하거나, 러시아가 아닌 미국이나 유럽의 은행을 통해 거래하는 방식이다. 삼성전자나 LG전자 등도 글로벌 금융기관을 통해 거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와 무역을 포기한다면 직간적접인 피해가 예상보다 크다는 점에서 국내 기업들은 러시아의 스위프트 제재가 풀리기 전까지 제3의 결제 방식을 찾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부는기획재정부·외교부·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를 중심으로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고 미국·EU 제재 동향 및 국내영향 등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비상금융애로상담센터를 열고 우리 기업과 현지 주재원 및 유학생 등의 금융 애로 사항을 접수 중이다. 러시아에 현지 법인을 둔 하나·우리금융그룹을 비롯해 국내 대형 은행들도 저마다 대응반을 꾸려 비상계획 수립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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