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주민동의' 토지수용 도심개발···"주거 내몰림 우려"
'반쪽 주민동의' 토지수용 도심개발···"주거 내몰림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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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공공주도 복합사업···주민동의율 '3분의 2 이상' 완화
"영세 원주민들, 현실적으로 보호 받기 어려워···대안 절실"
서울 신월동 일대 주택가 전경. (사진= 박성준 기자)
서울 한 주택가 전경. (사진= 박성준 기자)

[서울파이낸스 박성준 기자] 정부가 최근 공급대책을 발표하며 일정 수준 주민동의율을 확보하면 인허가를 간소화해 단기간 내 주택공급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런 도심개발 계획이 많은 주민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행돼 사유재산권 침해 논란이 확산하는 것은 물론, 삶의 터전까지 빼앗길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9일 정부 및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부는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방안'을 발표하고 전국에 83만, 서울에만 32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핵심은 공공이 역세권, 준공업지역, 저층주거지 등을 대상으로 직접 정비·개발에 나서 신속하게 주택을 공급할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앞서 발표했던 공급 관련 대책들을 포함해 역대 정부 가운데 최대 규모의 공급안을 통해 작금의 어지러운 부동산 정국을 타개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이같은 대규모 공급계획의 가장 큰 문제는 '젠트리피케이션(주거 내몰림)' 현상이 두드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공급대책의 핵심 계획인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 등은 모두 공공이 직접 민간 토지 등을 확보해 개발에 나서는 사업으로, 정부는 민간의 사업 참여 확대를 위해 주민동의율 조건을 완화했다. 기존에는 주민 4분의 3 이상이 개발에 동의해야 했던 반면, 앞으로는 3분의 2 이상 주민만 참여하면 사업 추진이 가능해진다.

과거 주민 반대에 부딪혔던 사업들이 더욱 적은 주민들의 의지로도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인데, 바꿔 말하면 3명 중 1명이 사업에 참여하고 싶지 않아도 강제로 끌려갈 수 밖에 없다. 정부는 노후주거지 대상 정비사업의 낮은 원주민 정착율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공공재개발 도입과 함께 아파트 지분을 공유하는 등의 공공성 강화 방안 등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서울의 경우 추가분담금만 수억원에 달해 매달 수십만원이 넘어가는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운 영세 거주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마땅치 않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최근 급등한 집값에 서울 외곽에서도 20평대가 10억원을 넘어서면서 분담금만 수억원, 이자비용만 매달 많게는 수십~수백만원을 고려해야 하는데 영세한 원주민들이 소화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면서 "수십만가구의 공급계획을 내놓은 가운데 모든 영세 원주민들의 이자를 지원하기도 부담이 크며, 향후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원주민들은 결국 삶의 터전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업 추진에 필요한 주민동의율이 낮은 만큼, 해제 요건이 낮다는 것도 지적된다. 50% 이상의 주민 의지를 모아 사업을 추진하고, 3분의 2 이상 주민동의를 받아 실제 사업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같은 주민 3분의 2 이상이 동의한다면 정비구역 해제를 직접 요청할 수도 있다. 때문에 절대 다수의 주민들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 과거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주민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본 취지와 멀어지는 것은 물론, 사업 추진 방향이 쉽게 흔들릴 수 있다.

더욱이 사업을 반대해 현금청산을 받아 나가게 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충분한 보상이 될 수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예림 법무법인 '정향' 변호사는 "과거 정비구역 개발이 진행되길 원치 않고 존치를 원하시는 분들의 경우 실제로 충분한 보상을 절대 받지 못한다"라며 "재개발 같은 경우 시세가격보다 낮은 감정평가액에 개발이익까지 제한되기 때문에 인근 올라간 집값을 감당하기 어렵다. 정부는 공공성을 강화해 원주민들의 이탈을 막겠다고 했지만, 실상 현실과 맞지 않는 보상금 지급 문제는 오래도록 변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기조에 몰두해 본질을 잃지 말고, 보다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 연구원은 "구도심과 신도심의 경계가 명확해 구도심에서의 정비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운 지방에선 이번 대책과 같이 공공이 주도해 지역을 활성화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라면서도 "어떤 의도인가는 명확하지만 추진 기간이 너무 짧은 측면이 있다. 우리 문화에서 '한 방에', '단시간에'와 같은 관행들이 있었지만, 주택공급은 수요에 부합하는 장기적인 계획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성화 한국국제대 도시계획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주거 내몰림을 방지하기 위한 대안을 고심하기는 했지만, 실제 적용하는 데는 이론과 현실의 문제"라며 "경제적으로 개발사업에 참여하기 어려운 분들에게는 주거 공간을 뺏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더욱 많은 사회적 문제가 대두될 것으로, 구체적인 안을 제시해 불안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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