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1기획/경제 3대 악재下] 고환율, 가격경쟁력커녕 원자잿값 부담 '이중고'
[창간21기획/경제 3대 악재下] 고환율, 가격경쟁력커녕 원자잿값 부담 '이중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달러 여파에 1350원 근접···10개월 만에 최고치
15개월째 무역적자서 벗어났지만 '불황형흑자'로
유가 급등, 엔·위안 약세 등 악재···4분기도 '비관적'
부산항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을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부산항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을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신민호 기자] 국내 수출경기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연중 최고치로 경신하는 환율 역시 우리 경제의 큰 짐이 되고 있다.

과거 고환율(원화가치 하락)은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주는 긍정적인 요인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수출상품에 들어가는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우리기업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가 심화되는 가운데, 고환율이 장기화될 것이란 관측까지 나오면서 국내 수출기업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전장 대비 12.0원 오른 달러당 1348.5원에 마감했다. 이날 환율은 장중 1349.5원까지 상승하며, 연고점을 경신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23일(종가, 1351.8원) 이후 약 10개월 만의 최고치다. 올해 초 '상고하저'를 전망했던 전문가들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다.

최근 반년새 원·달러 환율 추이 (자료=구글파이낸스)
최근 반년새 원·달러 환율 추이 (자료=구글파이낸스)

◇환율전쟁은 옛말···수출 발목 잡은 고환율

문제는 고환율이 과거엔 수출 호재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고환율은 일반적으로 국내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줘 수출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 때문에 과거 세계 주요국들은 자국 통화 가치를 절하시켜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이른바 '환율전쟁'에 몰두했다. 현재까지 고환율을 유지해 경기를 부양하는 사례가 옆나라 일본이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은 이런 상황을 바꿔 놓았다. 글로벌 공급망이 축소되면서 수요측 물가상승 압력이 가중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글로벌 경기 둔화 흐름 등으로 수출 환경 역시 악화된 가운데, 고환율은 수입물가를 더욱 밀어 올려 국내 수출 경쟁력을 악화시켰다.

그 결과 지난 2022년 3월부터 올해 5월까지 15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비록 최근 3개월(6~8월) 간 무역흑자가 보였지만, 이는 수출 감소폭보다 수입 감소폭이 더 큰 이른바 '불황형 흑자' 구조다.

실제 지난 8월 기준 수출액은 전년 대비 8.4%에 그친 반면, 수입액은 22.8%나 급감했다. 수출은 11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반도체 등 중간재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의 특성상 수입이 줄어든 만큼 향후 수출 전망 역시 밝지 않다.

도원빈 한국무역협회 국제통상연구원 연구원은 "이론상 고환율은 수출물량을 늘리지만 단가를 내리는 효과가 있다. 현재는 경기가 꾸준히 둔화되면서 안 좋은 쪽의 영향이 더 커진 셈"이라며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고환율이 장기간 될 경우 글로벌 경기 침체와 겹쳐 국내 수출 경기에 미치는 악영향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달러·유가 상승세, 우리경제 직격탄···4분기 전망 '비관적'

최근 국제유가가 급등한 가운데, 통상 유가 흐름과 반비례하는 달러 가치가 오히려 강세를 보인다는 점도 악재다.

최근 미 원유 가격의 지표로 꼽히는 서부텍사스유(WTI) 가격이 배럴당 90달러를 웃도는 상승세를 보였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 또한 105.83선을 돌파하며, 지난해 11월 말 이후 약 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9월 24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게시된 유가 정보.  (사진=연합뉴스)
9월 24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게시된 유가 정보. (사진=연합뉴스)

장희종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원유 수급 상황이 올해 5월부터 넉달째 초과수요인 가운데, 사우디 감산과 러시아 수출축소 소식에 유가가 강세를 보였다"며 "유가 강세에 취약한 유럽과 일본 대비 산유국인 미국이 상대적으로 낫다는 점이 달러 강세로 연결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국내 수출기업들이 급등한 유가와 강달러에 동시에 노출됐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4분기 수출산업경기전망지수(EBSI)가 90.2로, 전분기 대비 18.5포인트(p)나 급감했다. 통상 해당 지수는 기준점(100)을 하회시 전망이 비관적임을 뜻한다.

특히 세부항목 중 제조원가와 채산성에 대한 전망치가 각각 75.2, 84.3으로 가장 부정적이었다. 수출기업들의 애로요인 1위 역시 '원재료 가격 상승(20%)'이었으며, '환율 변동성 확대'를 꼽은 기업들 역시 10.6%에 달하는 등 국내 수출기업들이 유가·환율 상승 여파에 직격탄을 맞았다는 분석이다.

지난 8월 24~29일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국내 수출기업들이 영업목표를 이루기 위한 적정환율로 현재 대비 90원 가량 낮은 1262원을 꼽은 바 있다. 이는 지난 7월 18일 저점(종가, 1260.4원)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당시와 비교해 환율이 90원 가량 급등하며 기업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과거 고환율은 긍정적 신호로 해석됐으나, 최근에는 원자재 가격 상승 등 복합적인 이유로 부정적 영향이 늘어났다"며 "정부는 수출 관련 금융‧보증, 환변동 보험 등 지원을 확대해 수출 기업의 불확실성을 줄여줘야 한다"고 전했다.

◇'고금리 장기화'에 강달러 지속···위안·엔 약세도 변수

더 큰 문제는 글로벌 경기의 회복 속도가 더딜 뿐만 아니라 환율 역시 단기간내 안정화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최소 1300원대 초반의 높은 환율 수준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업계 중론이다.

지난 19~20일(현지시간) 진행된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기준금리를 동결한 대신, 추가 인상 가능성을 강하게 피력했다. 특히 내년 중간값을 기존 대비 0.5%p 상향하며, 현재 높은 금리 수준이 장기간 지속될 것을 시사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 (사진=연준 홈페이지)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 (사진=연준 홈페이지)

현재 연방기금금리(FFR) 선물 시장에서 예상한 연준의 금리인하 시점은 내년 7월(34.6%)이다. 국내 금리 인상 여력이 제한적인 점과 약화된 펀더멘탈 등을 고려하면, 현재 수준의 달러 강세가 최소 내년 초까지 이어질 공산이 높다.

높은 중국 의존도도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우리나라 수출의 대중(對中) 의존도는 지난 2018년 26.8%에서 올해 1분기 19.5%까지 11.3%p나 떨어졌지만, 여전히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중국이 작년 말 위드코로나로 전환하면서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 힘입어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을 당초 5.1%로 전망했다. 하지만 지난달엔 리오프닝에 따른 내수경기 회복 속도가 기대보다 더딜 뿐 아니라, 부동산경기 침체 탓에 4.6%로 하향 조정했다. 대중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 입장에선 이런 소식이 달갑지만은 않다. 

여기에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의 디폴트(채무불이행) 리스크 등 경기침체 신호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위안화는 달러당 7.3위안을 돌파하는 기록적 약세를 보이며, 연동성이 강한 원화 가치를 끌어내리고 있다.

이 밖에 엔화 역시 달러당 150엔 수준까지 상승하며, 고환율 효과를 약화시키고 있다. 수출경합도가 높은 일본의 엔화 절하폭이 원화 절하폭을 웃돌며, 우리나라 수출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위안화는 중국 인민은행의 위안화 약세 방어 의지에 단기적으로 안정화될 수 있다"며 "다만 부동산 경기 침체, 내수 둔화 등을 고려하면 위안화 방향 전환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미중 갈등 역시 위안화의 유의미한 반등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권 연구원은 올해 4분기 원·달러 환율 상단을 1390원으로 제시하며 "현재 환율 레벨이 높아 보이지만, 실질실효환율 등을 이유로 저평가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기적으로 보면 물가보다 대외 리스크 완화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연준발 금리 변동성이 고점을 통과했다면, 환율은 추가 상승보다 안정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환율이 수출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이 이전보다 제한적이나, 글로벌 교역 사이클이 둔화되는 국면에서 환율 효과를 무시할 수만은 없다"며 "위안화 약세도 문제지만, 무너진 엔·원 환율은 국내수출 기업에는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점차 완화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주변국 리스크는 상당기간 국내 경기와 금융시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며 "기저효과에도 수출이 연말까지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할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전망했다.


관련기사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