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탄소배출권·에너지정책 '갈라파고스화' 주의보
[데스크 칼럼] 탄소배출권·에너지정책 '갈라파고스화' 주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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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일본을 갈라파고스라고 한다. 글로벌 트렌드를 무시하고, 내수 시장에만 집중한 결과 어느 곳에서도 '사용하지 못할' 제품이 만들어지면서 붙여진 별칭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플로피디스크'다. 한글·워드 등 문서를 작성할 때 중간중간 저장하기 위해 사용하는 메뉴의 '저장' 그림이 플로피디스크다. 플로피디스크를 모르는 이들도 있는 마당에, 일본은 아직도 플로피디스크를 생업에서 쓰고 있다. 또 최신 노트북에는 DVD-ROM이 달려있고, 가정에서 쓰는 세탁기에는 온수를 연결하는 곳이 없다.

실제로 일본인 교수 스스로 '잘라파고스(Japan+Galápagos)'라는 용어를 만드는 등 내부적으로도 문제 제기가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일본 못지 않은 갈라파고스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분야가 있다. 탄소배출권과 신재생에너지 정책이다.

유럽연합과 미국은 탄소중립에 관한 정책들을 내놓는 등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최근 전력 부족 문제를 겪기도 했지만 속도가 조금 늦춰졌을 뿐 방향성은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

EU의 사례를 들어보면, 석탄·석유로 전력을 생산한 발전업체 등 기업들은 영업 활동으로 배출한 온실가스만큼 배출권을 제출해 상쇄한다. 다만 무상으로 할당받는 양이 적어 모자란 부분은 배출권 시장에서 구입해 채워넣는다. 

탄소배출권 가격이 올라 비용이 늘면, 기업은 차라리 기술을 개발해 온실가스 배출량 줄이기에 나선다. 이를 통해 평소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 배출권이 남았다면 시장에 팔아 추가적인 수익을 얻을 수도 있다. 

탄소배출권 시장의 가격 변동 매커니즘이다. 무상 할당량이 모자라 시장에서 유상 배출권을 구입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런던ICE거래소에서 유럽의 탄소배출권 12월물 가격은 26일(현지시간) 기준 1톤당 79.58유로(약 11만3400원)다.

우리나라 탄소배출권 시장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무상할당 비중이 사실상 98.5%에 이른다. 공짜로 나눠주는 배출권으로도 충분히 상쇄할 수 있으니 온실가스 감축 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없다. 배출권이 남아돌아 시장에 내놔봐야 사가는 사람도 없다. 

우리 정부는 시장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자 증권사를 시장에 투입해보고, 파생상품 도입 계획도 내놨다. 그럼에도 근본적인 원인 해결은 이뤄지지 않아 배출권 시장의 회전율이 5.8% 수준에 그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23년물 배출권 가격은 26일 기준 톤당 1만1300원이다. 

탄소배출권 리서치 업체인 NAMU EnR 김태선 대표는 "K-탄소배출권은 기업들의 입장을 고려해 '차 떼고 포 떼고' 하면서 글로벌 스탠더드와 멀어지고 있다"며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도입될 경우 극단적으로는 유럽의 탄소배출권 1톤 가격에 맞춰 한국 탄소배출권 10톤을 지급하는 식으로 거래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정책도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잡아가는 'RE100(재생에너지 100%)'이 우리 환경에 맞지 않는다며 갑자기 'CFE(Carbon Free Energy) 포럼'을 출범, CF100을 글로벌 확산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CF100에는 RE100에 없는 원전 전력이 담겨있다.

일부 글로벌 기업들은 RE100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거래를 중단하는 등의 방식으로 밸류체인에 있는 기업들에게 동참을 유도하고 있다. 우리기업이 정부 의견대로 무턱대고 CF100을 따랐다가는 글로벌기업으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00여개가 넘는 글로벌 기업이 RE100에 가입한 상황에서 방사능 폐기물이 발생하는 원전 중심의 CF100은 RE100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전자 등 국내 기업들은 스스로 RE100 달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기업들의 입장을 헤아려 선제적으로 나서 줄 필요가 있다. 글로벌 트렌드를 읽지 못한 정책은 갈라파고스화를 앞당길 뿐이다.

박시형 증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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