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출산정책을 뛰어넘어라
[데스크 칼럼] 출산정책을 뛰어넘어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정도로 낮은 수치의 출산율은 들어본 적도 없어요.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조앤 윌리엄스 미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 수치를 듣고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며 보인 반응이다. EBS 다큐멘터리 '인구대기획 초저출생' 10부 맛보기 영상에서 공개된 이 장면은 최근 밈(meme·인터넷유행콘텐츠)으로도 제작돼 화제가 됐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그토록 '깜놀'한 수치가 작년 합계출산율인 0.78명이라는 점이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한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의 수로, 현재 인구 수를 유지하기 위한 합계출산율은 2.1명이다. 

꼴찌라는 불명예를 넘어 '국가소멸'까지 우려되는 합계출산율이 올해 또다시 경신될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이 0.7명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0.05명 줄었다. 특히 출생아 수는 연초에 많고 연말로 갈수록 줄어드는 '상고하저' 추세를 감안할 때 지난해 합계출산율(0.78명)을 유지하는 것마저 위태로운 수준이다.

세계 꼴찌를 기록한 출산율로 야기되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국가소멸까지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정부 역시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대책을 내놓았지만, 지금껏 역부족이었다. 심지어 일부 지자체는 출산 장려금을 최대 1억원까지 지급하는 등 선심성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출산율 증가에는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게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외신도 우리나라의 심각한 출산율을 주목했다. CNN은 지난해 말 "한국은 2000억달러(259조원)를 투입했지만 출산율을 높이기에는 역부족"이라며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입해도 정부가 해결할 능력을 벗어난 것이다.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10년 넘게 모아야 겨우 살 수 있는 집값, 출산에 따른 경력단절 등 고용불안, 유치원 때부터 시작되는 사교육 광풍, 가정 내 남녀 역할 불평등, 양육 환경 불안정 등 각종 사회문제가 얽히고설키면서 저출산 문제를 키워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결혼을 포기하거나 아이를 낳지 않은 '비혼·저출산'이 사회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아이 낳기만 하면 키워준다"는 정부의 그간 공약이나 약속 역시 이들 장벽 앞에선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뿐이었다.

이 때문에 전문가 사이에선 저출산을 출산 정책이 아니라 사회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주거, 교육, 고용 등의 대대적인 개혁이 뒤따라오지 않을 경우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주거, 교육, 고용 등의 과제 하나하나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저출산 해결책을 모르는 게 아니라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의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데, 온 나라가 총력전을 펼쳐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문제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문제를 외면하거나 그간 대책으로 재탕‧삼탕한다면 저출산 수렁에서 결코 빠져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몇 달 전 통화신용정책을 관장하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마친 뒤 이례적으로 작심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이 총재는 "한국은 이미 장기 저성장 구조로 와 있다. 노동, 연금, 교육 등 구조개혁이 정말 필요하다"며 "(이 문제를) 재정·통화 등 단기정책을 통해 해결하라고 하는 건 나라가 망가지는 지름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저출산 트렌드는 '정해진 미래'라기보다는 구조개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문제"라며 "피할 수 없는 문제로 받아들이지 말아야한다"고 강조했다.

260조원이라는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는데도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정해진 미래'로 규정하는 거야말로 우리 미래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단기성과에 조급해 선심성 정책을 쏟아내는 것 역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만 되풀이 하는 셈이다. 실제로 선진국처럼 저출산과 직결된 예산만 보면 한국의 저출산 예산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56%(2019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29%)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제라도 장기 플랜을 세우고 구조적 원인을 하나하나 뜯어 고치고, 나가야만 한다. 국가소멸이 걸린 중차대한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선 여야, 민관, 노사가 따로 없어야만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금융부장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