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톡톡] 오른 만큼만 빌려준다더니···빗장 풀린 전세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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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시중은행, 줄줄이 전세대출 규제 완화
새 정부 대출 규제 완화 기조에 정상화 수순
일각선 '안정세' 가계대출 시장에 혼선 우려
한 고객이 은행 대출 창구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우리은행)
한 고객이 은행 대출 창구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우리은행)

[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지난해 하반기부터 조이기로 일관했던 은행들의 대출 방침이 180도 달라졌다. 신용대출에 이어 전세대출 문턱도 낮추며 대출 영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이는 등 굳이 총량을 관리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주요 은행들의 '대출 늘리기'는 은행권 전반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엔 새 정부 출범 이후 가계대출 규제 완화 기조가 이어질 것이란 기대감도 반영됐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NH농협은행은 오는 25일부터 전세 계약 갱신 시 전세자금대출 한도를 갱신계약서 상 임차보증금의 80% 이내로 늘리기로 했다.

예를 들어 전세보증금이 4억원에서 6억원으로 오른 경우 지금까지는 인상분인 2억원까지만 대출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6억원의 80%인 4억8000만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농협은행은 올해 초부터 전세대출 규제를 순차적으로 완화하고 있다. 앞서 지난 1월 임대차 계약 잔금일 이후에도 전세자금대출을 할 수 있도록 대출 조건을 완화한 데 이어 이달 초에는 비대면 전세대출 상품의 판매를 재개하고 우대금리를 높였다.

다른 주요 시중은행도 25일부터 일제히 전세대출 조건을 정상화할 예정이다. 우리·하나·신한은행은 임대차계약 잔금일 이후 대출 취급, 전세 갱신 시 임차보증금 80% 이내 취급 등 전세대출 조건 완화를 시행하기로 했다.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의 경우 1주택자 대상 전월세 보증금 대출을 재개했다. 무주택자를 대상으로만 했던 전월세 대출을 1주택자에도 내주겠다는 것이다. KB국민은행도 전세대출 완화 조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은행권에선 전세대출뿐만 아니라 가계대출 전반의 빗장을 풀고 있다. KB국민은행은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은 최대 1억5000만원, 일반 직장인은 1억원까지 높였고,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0.1~0.2%포인트(p) 인하했다. NH농협은행은 작년 말 2000만원이던 일반 신용 대출 한도를 지난달 2억5000만원으로 대폭 높이기도 했다.

바짝 말랐던 은행권 대출 정상화에 물꼬가 트인 것은 올해 들어 대출 수요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총량규제 관리에 여유가 생긴 셈이다.

실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도입, 대출금리 상승 등의 영향으로 가계대출 증가세는 하락곡선을 그리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내놓은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올해 2월 말 기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60조1000억원으로, 1월 말보다 1000억원 감소했다. 3개월째 감소세인데, 한은이 2004년 관련 통계 속보치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대출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이라 금융 당국이 제시한 올해 가계대출 총량 증가 목표치인 4~5%를 지키려 노력하기는커녕 되레 '고객 모시기'에 나서야 하는 처지다. 은행권 전반으로 문턱 낮추기가 확산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새 정부가 대출 규제 완화 기조를 보인다는 점 역시 이같은 분석에 힘을 보태고 있다. 후보 시절부터 대출 규제 완화를 시사해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완화를 약속한 바 있다. 이에 더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도 동시에 완화되면 정책 효과는 더욱 커지게 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윤 당선인이 대출 규제를 큰 폭으로 완화하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던 만큼 새 정부가 출범한 후 가계대출 총량제는 사실상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우선 실수요자 대출을 먼저 완화하고, 상황에 따라 대출 확대 움직임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다만 당장 돈이 급한 이들의 자금줄이 트일 수 있다는 기대감 속에서도 가계대출 부실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최근 가계대출 잔액이 석 달 연속 감소했지만, 대출 풀기가 간신히 안정세를 찾은 대출 시장에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배승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윤 당선인의 공약대로 향후 LTV 한도가 상향되고, DSR 완화 논의가 병행될 경우 가계대출 규제 환경 전반의 변화가 예상된다"며 "3월 이후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세는 재개될 것으로 보이는데, 대출규제 완화가 현실화될 경우 금리상승 환경에서의 가계부채 누증 부담은 궁극적으로 은행권 건전성의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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