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결함에 빛바랜 품질·안전
[기자수첩] 결함에 빛바랜 품질·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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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문영재 기자] "우리의 모든 활동은 고객 존중의 첫걸음인 품질과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품질과 안전에 대해서는 다른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는 자세로 완벽함을 추구해야 합니다."-2021년 신년사

"그룹 전 부문 임직원은 함께 고민하고 일치단결해 고객 존중의 첫걸음인 꼼꼼한 품질 관리 및 확보에 역량을 기울여야 합니다."-2022년 신년사

"상품 기획부터 설계, 생산, 판매, 사후관리까지 고객 신뢰를 최우선 가치로 둬야 합니다. 우리가 품질과 안전이라는 기본 약속을 지켜나갈 때 고객도 우리를 믿고 변화와 도전을 기꺼이 함께해 줄 것입니다."-2023년 신년사

"경쟁자들을 따라잡고 경쟁하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완전한 만족을 주는 것이 최고의 전략과 전술입니다. 고객의 만족과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핵심 요소가 바로 품질과 안전입니다."-2024년 신년사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2020년 10월 취임 이후 매년 신년사에서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품질과 안전을 주문했다. 양적, 질적 성장을 도모하는 데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기에 거듭 강조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매해 언급을 안 하면 안 될 정도로 결함이 줄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5일 국토교통부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리콜센터에 따르면 올 들어 현대차·기아 시정조치·무상수리 합산 건수는 51건에 이른다. 이는 2023년 같은 기간(46건) 대비 10.9%, 2022년 같은 기간(20건) 대비 155% 늘어난 수치다. 이 회사 시정조치·무상수리 합산 건수가 50건 이상으로 증가한 것은 2021년 같은 기간 51건 이후 3년만이다. 품질과 안전을 우선시하는 정 회장의 주문과 달리 결함 건수는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건수도 건수인데 지난해부터 소프트웨어 관련 오류가 눈에 띄게 증가, 브랜드 이미지에 오점을 남겼다. 10건이 넘는 소프트웨어 오류로 많은 비판을 받은 신형 그랜저와 17만여대 전기차 동력상실·감소를 야기한 통합충전제어장치(ICCU) 소프트웨어 오류가 대표적이다.

정 회장은 이를 바로잡고자 올 신년회에서 "소프트웨어 경쟁에서 뒤처진 면이 있다. 갈 길이 멀다. 소프트웨어 경쟁력과 품질 면에서 모두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뒤 파편화 되어 있던 소프트웨어 연구개발 조직을 하나로 통합했다. 산재한 리더십 등이 미래 혁신 전략의 일관성을 저해하고 그룹 내 협업을 복잡하게 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그렇게 일단락되는가 싶더니 마치 두더지 게임처럼 또 다른 곳에서 문제가 불쑥 튀어나왔다. LPG 트럭 2만여대에서 엔진 구동벨트 장력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장력조절장치 고정볼트 설계불량이 발생한 것. 해당 결함은 지난해 11월 출시된 신차에서 불거졌다는 점 때문에 더 많은 이의 입에 오르내렸다.

아직 시정조치·무상수리 목록에 올라가지는 않았지만, 신형 싼타페 하이브리드 엔진룸 누유 문제로도 시끄러운 상황이다. "조금 전 탁송을 받았는데 엔진룸을 열어보니 누유가 진행 중이었다", "70km밖에 안탔는데 누유가 발생했다" 등 결함을 의심하는 해당 차량 차주들의 제보가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합산 영업이익 27조원을 기록하며 역대급 실적을 올렸다. 내수에서는 점유율 91.3%를 기록, 선도 기업으로서 입지를 더욱 공고히 다졌다.

그 결과 임직원 연봉도 올랐다. 정 회장은 현대차로부터 전년(70억100만원) 대비 17.1% 증가한 82억100만원을,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전년(29억3200만원) 대비 32.8% 늘어난 38억9400만원을, 송호성 기아 사장은 전년(25억4100만원) 대비 30% 증가한 32억6800만원을 받았다. 직원의 경우 1인 평균 전년(1억850만원) 대비 12.4% 늘어난 1억2200만원을 수령했다. 

자칭 경쟁력 있다는 신차를 여럿 선보이며 거둔 성과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그 경쟁력 있는 신차들로 인해 소비자들은 위험에 처해 있다. 겉만 번지르르한, 부족한 제품을 판매한 탓에 믿고 구매한 이들은 잦은 결함으로 인한 불편과 언제 또 고장 날지 모른다는 불안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품질에는 결코 타협이 있을 수 없으며, 결국에는 품질이 좋은 회사가 고객에게 인정받게 되어 있다. 최고 품질의 제품에 우리만의 가치를 더해 타사와 차별화하고, 우리가 지향하는 최고의 고객 만족과 감동을 고객들에게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정 회장의 말이 부디 헛된 것이 아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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