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2년 유예 불발···시름 커지는 중소건설사
중대재해처벌법 2년 유예 불발···시름 커지는 중소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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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인력확보·높은 임금도 부담···몇 개월째 기다리지만 지원자 '0명'
법 시행 이후 대형건설사에서 사망자 발생했지만 처벌 사례는 전무
"법 취지가 처벌이 아닌 예방이라면 정부 투자나 지원도 같이 필요"
서울의 한 아파트 건축 공사 현장. (사진=박소다 기자)
서울의 한 아파트 건축 공사 현장. (사진=박소다 기자)

[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적용 범위가 중소 사업장까지 대폭 확대되면서 건설업계 시름이 커지고 있다. 중소 건설사의 경우 안전관리자 등 전문 인력 확보가 상대적으로 어렵고, 한 건의 사고만으로 경영 상 문제가 발생해 기업이 존폐 위기에도 몰릴 수 있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2022년 시행된 중처법은 사업장에서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동일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발생하는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법안이다.

그동안 대기업과 달리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의 사업장은 사고를 예방하고 수습하는 경제적 비용 부담으로 사업 확장에 있어 억제를 받는다는 등의 이유로 중처법 적용 유예기간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1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중처법 전면 시행의 2년 유예 법안이 여야 갈등으로 불발되면서, 앞으론 이들 사업장에서도 안전보건관리 담당자를 최소 1명 이상 의무적으로 둬야 한다.

중소 건설업계에서는 중처법 준비에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경영권을 가진 사업자가 1명인 경우 사고 수사가 진행될 때 회사 경영 자체가 중단되는 구조인데다가, 법 기준이 광범위해 적지 않은 시간을 사고 수습에만 매달리다 보면 사업 운영이 제대로 안될 것이라는 것이다.

별도의 안전보건관리담당자를 필수로 선임해야 하는 점도 부담이다. 대기업이 사실상 안전보건관리책임자 인력을 독점하고 있어 중소기업 입장에선 높은 인건비로 인력을 빼와야 해 부담이 가중된다. 실제로 건설 전문 인력을 채용하는 '건설워크' 사이트에는 중처법 확대 적용 이후 중소기업의 안전관리자 채용 공고가 늘었으나 높은 연봉 제시에도 지원자는 거의 없는 수준이다. 다수의 공고는 몇 개월째 지원자를 받고 있었다.

아울러 업계 특성상 현장마다 달라지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안전 설비 구축과 예방 시스템을 갖추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과, 건설업계에 인력난이 가중되며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아져 안전교육에 대한 언어적 문제도 있다.

실제로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말 전문건설사 781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96.8%가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을 위해 안전관리체계 구축, 인력·예산 편성 등의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어 응답자의 78%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법 적용대상을 제외 또는 유예 조치가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건설업은 인력 중심으로 전 과정이 돌아가는 산업으로 타 업종 대비 인명사고 비율이 높은 업종이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하는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2022년 접수된 사망사고 총 644명 중 건설업에서만 341명(53%)이 사망했다. 지난해 9월 기준에서도 사고사망자는 459명 중 건설업 종사자가 240명(52.3%)이었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소규모 사업장에서 중대사고가 더 많이 발생한다는 점이 우려를 키운다. 해당 사망 사고 중 약 60~70%가 그동안 중처법이 적용되지 않았던 50억원 미만 공사현장에서 발생했는데, 이번 법 시행이 확대되면 해당 중소기업 모두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것이다.

사고가 발생해도 전문가를 구성해 회사의 입장을 변호할 수 있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자기변호에도 취약하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해 말까지 중대재해 발생으로 기소된 31건 중 대법원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은 1건뿐이다. DL이앤씨·현대건설·대우건설·롯데건설 등에서 중처법 시행 이후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이들의 처벌 사례는 사실상 전무했다. 이에 법 취지 자체도 모호한 데다가, 변호에 취약한 중소기업만 처벌을 받게 될 거라는 것이 중소기업들의 의견이다.

박광배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법 시행 이후 2년이 지났지만 사망사고 감소 등의 직접적인 영향이나 효과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이번 유예 개정안이 불발됐다"며 "영세 건설업체는 현실적으로 안전보건 조직을 구성할 여력이 없는데 이를 강제하면 다른 부작용이 속출할 수 있다"고 봤다. 이어 "법의 취지가 처벌이 아닌 예방 목적이라면 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정부의 투자나 지원이 같이 이뤄지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이번 달 1일 중대재해법 유예 법안이 무산되자마자 관련 담당자 회의를 진행했다고 알려진다. 논의된 내용은 당장 영세 건설업체에 지원돼야 할 각종 스마트·무인 안전장비 대여와 안전예방 지침 사항, 현장 안전 예방 컨설팅 방안 등으로 확인됐다. 상황이 긴급한 소형 현장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국토부 관계자는 "취지는 중소 건설사들의 안전사고와 부실시공 방지 노력을 강화하자는 것"이라며 "건설업계의 목소리를 계속 듣고 있는 만큼 예산 내에서 필요한 지원 등은 이뤄질 수 있을 것이고, 정부가 안전관리자 같은 전문 인력을 직접 배출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은 만큼 시간은 더 필요하겠지만 결국 안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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