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어디 일감 없나"···대형 건설사, 수도권 넘어 지방서도 배 채운다
[초점] "어디 일감 없나"···대형 건설사, 수도권 넘어 지방서도 배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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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지역·분양가에도 대형사는 청약 경쟁률↑·지방 건설사는 미달
'실거주 목적' 수요자 늘며 시공품질 더 중요해져···PF 리스크도 고려
1분기 부도 9개 건설사 중 7개가 지방 건설사···자신폐업도 998개사
지난 5일 개관한 대형 건설사 시공 광주의 한 아파트 견본주택에 2만여 명의 방문객이 몰렸다. (사진=롯데건설)
지난 5일 개관한 대형 건설사 시공 광주의 한 아파트 견본주택에 2만여 명의 방문객이 몰렸다. (사진=롯데건설)

[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과거 지역 중소·중견 건설사의 텃밭이었던 지방에서 대형 건설사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들은 브랜드와 시공품질을 내세워 지역 주택 사업을 따내고, 지방의 주요 수주 거리를 독점해 나가고 있다. 가뜩이나 부동산 한파 속 줄어든 일감에 일부 지역 건설사들은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폐업으로 내몰리는 등 건설업계에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8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지방 거점도시(수도권·광역시 제외)에 공급된 1만2523가구 가운데 10대 건설사(지난해 시공능력평가 기준) 물량은 9702가구로 전체 물량의 약 77.47%를 차지했다. 이 비율은 전년 동기 29.05%나 늘어난 수치다.

이 같은 현상은 최근 붉어진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험에 지역 건설사들이 노출되면서 아파트 수요자들이 대형 건설사를 선호하는 현상이 더 커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중소·중견 건설사 일부가 부도나면서 아파트 공사 현장 다수가 중단돼 방치되고 있고, 심지어 사업 취소가 난 첫 사례도 발생했다. 대형 건설사 시공 단지는 이러한 우려에서 대부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또 과거 부동산 호황기 때 짓기만 하면 분양 완판돼 투자가치가 있었던 지방 주택들이 이제는 실거주 목적인 공간으로 변하는 추세에 따라, 수요자들이 '내 집'이라 생각하고 설계나 마감재 등을 더 꼼꼼히 따지다 보니 대형 건설사의 노하우가 집약된 평면, 설계, 마감재, 커뮤니티 시설, 조경 등과 시공품질의 경쟁력이 더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형 건설사에 대한 선호도는 나날이 높아져 청약 경쟁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올해 2월 부산 지역에서 청약이 진행된 곳은 '냉정역 비스타동원', '더샵 금정위버시티' 2개 단지였는데 각각 동원개발(지역 건설사)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을 맡았다. 두 아파트 모두 지하철 역세권이고, 동일 평수 분양가가 5억5000만원선부터 6억 후반대로 같았다. 그러나 더샵 금정위버시티의 청약 경쟁률은 최고 14.88 대1(59㎡ 기준)에 미달 세대수도 공급물량의 5% 수준인 반면, 냉정역 비스타 동원은 대부분의 청약 물량이 미달됐다.

이에 대해 한 건설사 관계자는 "같은 지역이라면 제일 중요한 것이 아파트 브랜드다"라며 "대형 건설사는 경쟁력을 바탕으로 지역 내에서도 선호되는 위치를 좋은 가격에 선점할 수 있고, 일단 대형 아파트 브랜드가 해당 지역에 들어오면 '지역이 발전되거나 뭐 좋은 게 있나 보다'하고 수요자들이 관심을 가지게 된다"라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한 아파트에서 미분양이 발생할 경우 최소 수십억에서 수백억에 이르는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든든한 자금력이 없는 지방 건설사들은 곧바로 자금난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 자료를 보면 올해 1분기에만 전국에서 9개 건설사가 부도 처리됐는데, 이중 7개가 지방 건설사였다. 같은 기간 자신폐업 신고 건설업체는 998개사로 2014년 이후 최대규모이며, 대부분 지역 소재 업체였다.

이들 업체는 수십 년간 지역에서만 사업을 해 온 '토박이 기업'인터라 타 지역 진출이 쉽지 않다. 다른 지역에는 그 지역만의 건설사와 대형 건설사들이 진출해 있어 경쟁에서 일감 따내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더욱이 현행법과 제도가 수도권 건설 대기업들의 지방 진출을 막고 있지 않아 지역 건설 업체들은 속수무책으로 일감을 잃고 있는 상황이다. 건설 공사는 특성상 주요 시공사가 여러 건설업체에 하도급을 주게 돼 있는데 전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대형 건설사의 아파트 신축현장(전북 기준)을 점검한 결과 지역업체의 하도급 점유율이 10% 미만으로 조사됐다.

협회는 대형 건설사들이 지역업체 참여 조건에 공사 예가의 1.5~2배수의 시공능력확인서를 요구하고, 더불어 기업의 종합신용등급, 현금흐름등급 등도 강도높게 책정해 사실상 지역 건설사의 실적과 신용이 낮다는 이유로 대형 건설사들이 협력관계인 외지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택 사업뿐만 아니라 수주 텃밭인 지역 공공공사에도 지역 업체는 밀려나는 상황이다. 부산 첫 대심도 지하도로인 만덕~센텀 지하고속도로 민자사업의 경우 공동도급 참여 업체를 제외한 지역 건설 업체의 하도급률이 6.7%에 불과해 해 지역 상생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어 올해 상반기 중 사업비 14조원 규모의 부산 가덕 신공항 사업이 공사를 발주할 계획인데, 컨소시엄의 일원으로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선 최소 지분율 5%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점을 내걸어 논란이 됐다. 10조5000억원 규모의 부지 조성 공사에 발이라도 걸치려면 최소 5000억원 이상의 사업비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하고, 현재 부산 지역 건설사 이를 감당할 건설사가 극히 드물어 수도권 건설 대기업들의 수주 잔치가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한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해당 발주를 대형 건설사들이 싹쓸이한다면, 수도권에 있는 전문 건설 업체들과 하도급 계약을 맺고 공사가 진행될 것이다"라며 "지역 건설사들의 참여를 보장할 만한 강제성 있는 지침이나 강력한 수준의 인센티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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