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단협-지도에 없는 섬
임단협-지도에 없는 섬
  • 서울금융신문사
  • 승인 2003.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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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으로 시도되는 은행권 산별교섭이 파행을 연속하고 있다.
지난 30일 11차 교섭에서는 사상 초유의 16시간 회의가 진행되는가 하면, 노조는 회의도중 자리를 접고 항의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노조는 사측이 대리참석을 일삼은 데 대해 강하게 불만을 표시했고, 사측 역시 노조의 삿대질, 고성 등에 대해 내심 불쾌한 심사를 드러냈다.
노사간 협상을 하다보면 어느 정도 힘겨루기가 불가피하겠지만, 금융노조의 교섭회의는 도가 지나쳐 보인다.

바쁜 시간을 쪼개 만난 자리에서 성과 도출을 위한 진지한 대화보다는 꼬투리 잡기식 힘겨루기로 중요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소모적이다.

얼마 전 미국의 온라인 경매업체 e베이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과의 한 끼 점심식사로 25만달러(약 3억원)를 낙찰시킨 바 있다.
버크셔헤더웨이 최고경영자인 버핏은 자신의 점심식사를 5년째 경매에 부쳐 부자되는 비결을 들려주는 대가로 돈을 받고 이를 전액 자선단체에 기부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주요 금융기관장들의 한 끼 식사값이 3억원에 이르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보통 사람들보다 상당한 값어치가 나가는 것은 사실이다.
이들 수 십명의 16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면 도대체 얼마나 될까. 들리는 바로 모 은행장은 소모적인 협상에 대한 반감으로 홧김에 밤새 과음을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협상의 형식 뿐만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다. 회의에 참석한 모 노조간부는 이번 협상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사측이 들어줄 수 없음을 노조도 알고 있다”고 털어놨다.

당초 타협의 여지가 없는 걸 알지만 상급단체인 한국노총의 주요 쟁점 사항이라 포함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63세 정년연장 사안에 대해서도 “다소 무리한 측면이 있는 건 알지만 회사로 돌아가 노조원들에게 풀어놓을 성과는 있어야 되지 않겠냐”는 속내를 털어놨다.

결국 존재하지도 않는 섬을 지도에 그려놓고 누가 먼저 도착하느냐 내기한 선장들과 다름 없는 꼴이다. 기름 낭비에, 인력 낭비, 시간 낭비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

지난 밤샘교섭에서 노사 양측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차별 철폐를 위한 원론적인 선언문을 발표하기로 합의하고 정년연장, 임금인상 부분은 다음 회의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향후 있을 교섭회의에서는 최소한의 합리성과 효율성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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