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예견된 실손의료보험 사태
[기자수첩] 예견된 실손의료보험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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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희정기자] "대상 확인부터 금액 체크, 고객연락, 기존통장송금, 안내장 발송 또는 유선안내 등 소급된 돈을 지급하려면 절차도 복잡할 뿐더러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중복가입 건이 많지 않기만을 바랄뿐 입니다"

이같은 보험사들의 바람과 달리 실손의료보험 중복가입은 70만 건, 그에 따른 공제 금액은 300억원에 달한다. 보험사들이 소비자들에게 돌려줘야할 실손의료보험금 얘기다.

지난 24일 금융당국은 '실손의료보험 가입자 권익제고 방안'을 발표하고 실손보험 중복 가입자가 부담한 자기부담금을 모두 돌려줄 것을 보험사에 권고했다. 금감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지급기준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보험사들이 자기부담금 10% 공제 후 보험금을 지급함에 따라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예상대로  보도 직후 업계 곳곳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난 2009년 금감원이 '보험을 여러 개 들었어도 자기부담금을 뺀 90%만 보험금을 줘도 된다'고 보험사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놓고, 이제 와서는 당시 과정이나 해명이 쏙 빠져있어 마치 보험사가 소비자들의 돈을 빼앗은 형국이 됐다는 게 그 이유다.

이번 사태(?)는 소비자 후생을 우선시해야 하는 금융당국과 최대한 수익을 보존해야하는 보험사간의 입장차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지만, 결국 사태의 발단은 실손의료보험 중복가입 허용에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애초에 중복가입을 제한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민영보험 영역에서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토로한다. 실손보험의 중복보장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최대 보장금액이 늘어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개의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했을 경우 최대 보장 한도는 5000만원이지만, 2개의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하면 보장한도가 1억원까지 올라간다. 3개는 1억5000만원, 4개는 2억원까지 보장되는 식이다.

그러나 이처럼 보장금액이 늘어난다 해도 실상 의료비를 5000만원이상 지급받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히려 중복가입에 따라 소비자들은 두 배의 보험료를 내야하고, 설계사들은 이점을 악용해 불완전판매를 유도할 우려가 있다. 개인이 개인보험으로, 회사가 단체보험으로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한 경우 각각 보험료를 보험사에 두 번이나 지급해야 하는 일도 분명 문제의 소지가 크다.

금융당국의 설명처럼 원천적으로 중복가입을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당국과 보험사들이 함께 나서 중복가입의 문제점이나 주의사항을 소비자들에게 정확하게 인지시키고, 그에 따른 여파까지 예측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일을 몇 번이나 반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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