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나라 가난한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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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자산은 사상 초유의 기록을 달성하고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금융자산의 증가 속도가 금융부채 증가 속도를 앞지르고 있다고 언론 보도가 요란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한국 경제의 빠른 회복에도 불구하고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있다는 경계와 우려의 소리도 따라 울려 나온다.

나라가 잘 살게 됐다고 경사를 자축하는 마당에도 실제 개개인, 다수의 가계는 빚이 늘어나고 있다면 이게 복(福)일까, 화(禍)일까.

예전 10년 장기 불황을 겪기 전의 일본을 두고 흔히들 나라는 부자인데 국민은 가난한 사회라고 비아냥댔다. 그러던 사회가 급격히 기세가 꺾이게 되자 회복은 마냥 늦어지기만 했다. 우리는 지금 그 뒷등을 보며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 14일 각종 미디어들은 우리나라의 금융자산이 마침내 1경원을 돌파했다고 떠들썩했다. 경기회복의 영향으로 개인의 금융자산이 부채보다 많이 늘어 재무건전성 지표가 2년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도 덧붙여 전한다.

이날 한국은행의 2분기 중 자금순환 동향 보고에 따르면 전체 금융자산이 전분기보다 2552조원이나 늘어 3조6천억 원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2분기 중 금융자산이 1경원을 돌파한 것은 특별한 요인이 있어서라기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경제규모가 커지고 금융 산업이 발달하면서 금융자산 규모도 지속적으로 확대돼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 중에서 개인의 금융자산은 2분기 중 47조6천억 원이 늘어 2045조5천억 원, 금융부채는 14조1천억 원이 늘어 877조7천억 원이다. 그러니 절대금액은 물론 증가율로 보아도 금융자산이 부채보다 빠르게 증가했다는 얘기가 된다.

가계대출 연체율도 1.97%, 특히 가계대출의 주종을 이루는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연체율이 0.88%로 낮은 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걱정하는 게 지나친 노파심일 수도 있다.

그런데 기간을 좀 길게 잡고 보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가계신용을 한해 수십조씩 매우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2009년 말 기준으로 보면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80.4%라 한다. 2007년 기준이기는 하지만 OECD 평균은 70%. 상대적으로 높은 우리의 가계부채비율이 확인된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신용 비율이 급증한다는 것이다. 2005년 104.3%이던 이 비율이 2009년에는 122.7%로 4년 사이에 20%가량이나 늘었다.

가계대출 연체율이 낮다는 점도 안심해도 좋다는 지표는 될 수 없다. 원리금 상환 방식일 경우 개인 소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즉각적으로 연체율이 늘어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대체로 원리금 상환방식 대신 거치형이 많다. 더욱이 주택을 담보로 하고 있다. 따라서 설사 실직을 하더라도 부담이 적은 이자를 어떻게든 갚아나가며 한동안은 버티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간 소득이 늘지 않으면 가계는 파산하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결국 부실담보가 한꺼번에 몰리며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지금 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부채를 줄여가는 것도 한국은행이 설명하듯 경제성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하반기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금리인상이 있을 예상하며 서둘러 금융부채를 줄이려는 노력도 있었을 것이다. 가계는 그만큼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다.

정부는 금리인상을 계속 미루면서 물가인상을 외면하고 있다. 가처분소득의 감소로 금리인상이 초래할 위험을 경계하는 것이라 이해된다. 그럼에도 비정상적인 금리정책으로 인한 물가인상은 결국 소비위축으로 이어지고 환율에 의존한 수출 증가는 국민소득의 감소로 이어지고 기업 성장에 그림자를 드리워가고 실업률 상승, 가처분소득의 실질적 감소로 이어지며 소비능력은 갈수록 고갈되어 가는 악순환의 고리에 걸려들 것이다.

국민은 나날이 가난해지고 증가하는 수출실적은 국민소득 증가로 이어지지 못하는 악순환이 일단 시작되면 다시 정상화시키는 일은 매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결국 몇 십 년 전 일본이 겪었던 길을 뒤따라가는 원치 않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높아진다.

지금 성장판타지를 위해 고통스러운 선택을 회피하면 그 성장은 거품만 남기고 경제는 회복불능의 상태로 떠밀릴 수밖에 없다. 그 후유증이 어떤 것인지는 이미 일본이 충분히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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