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號, 정부-은행의 '합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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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진앙지 불구 '버티기' 일관
정부, 부정적 외신보도에 '은행 감싸기'
구조조정 과정에서 책임공방 거세질 듯

[서울파이낸스 공인호 기자]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전세계 금융시장을 초토화시키고 있는 가운데, 한국 역시 주식시장은 물론 외환·부동산시장까지 벼랑끝으로 내몰리는 형국이다.

최근 경기침체가 해외발이라는 점에서 정부는 잡셰어링 등을 통한 국민적 '고통분담'을 호소하고 있지만, 버블의 주범인 금융회사들과 이를 관리·감독하지 못했던 정부에 대한 책임공방은 갈수록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도덕적 해이 심각
국내 금융시장에서 거품양산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는 은행들의 도덕적 해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과 일부 외신들은 한국의 은행발 금융위기 가능성을 연일 보도하고 있지만, 은행들은 오히려 건전한 은행들을 몰아세운다며 법적 대응까지 검토하고 있다.

국내 은행들이 양호한 자산건전성을 내세울 때 쓰는 대표적인 지표는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이다. 통상적으로 우량은행과 부실은행을 분류하는 기준이 BIS비율 8%라는 점을 감안하면 양호한 수치인 셈이다.

우리은행을 제외한 국민·신한·하나은행의 지난해말 BIS비율은 13%대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한해동안 부실채권 발생으로 무려 7조원의 대손충당금 적립에도 불구하고 BIS비율은 전년대비 많게는 1%포인트 넘게 상승했다.

그러나 이같은 BIS비율 개선 효과는 은행들이 경영을 잘했다라기보다 모회사인 지주회사가 채권발행을 통해 부실을 떠안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같은 기간 모회사인 KB금융과 신한지주, 하나금융의 BIS비율은 최대 2%포인트까지 급락했다. 그룹 전체의 자산건전성은 오히려 악화된 셈이다.

은행들은 이처럼 개선된 BIS비율을 이유로 정부의 공적자금 조성에도 반대하고 있다. 공적자금이 투입될 경우 은행 이미지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일부 은행들은 금융당국에 자본확충펀드의 하이브리드채-후순위채 비율을 수정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후순위채는 기본자기자본(Tier1)에 인정되지 않으니 하이브리드채를 주로 매입해달라는 요청인 셈이다.

당국은 그러나 하이브리드채의 경우 만기가 길어 후순위채보다 운용상 어려움이 크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부실예방 차원에서 조성된 공적자금을 은행에 유리하게 사용하겠다는 것으로 '도덕적 해이'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은행들의 도덕적 해이를 정부가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외신을 통해 국내 은행들에게 불리한 보도가 나올 때마다 '국내 은행 감싸기'에 정부가 나서는 것은 자칫 해외에는 물론, 국내 은행들에게도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선진국 은행들의 경우 상당부분의 부실이 이미 지표에 반영된 상태이며, 국내 은행의 경우 아직 부실을 털어내기 위한 준비단계라는 측면에서 지표만 가지고 국내 은행이 안전하다고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책임공방 뜨거워질 듯
한때 1600원선을 위협했던 원·달러 환율이 최근 안정세를 되찾으면서 '3월 위기설'이 수면아래로 가라앉는 양상이다. 또, 국내 주식시장 역시 여타 선진국에 비해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금융위기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불안요인이 여전히 산재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살얼음판' 형국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른바 '코리아 리스크'로 불리는 불안 요인의 대부분은 국내 은행들로부터 파생됐다.

외형경쟁에 따른 과다한 주택담보대출과 중소기업대출은 부동산시장 거품 및 한계기업의 양산을 가져왔다. 또, 환율 상승에 따른 외환시장 불안 역시 대규모로 외채를 들여와 대출에 사용하면서 야기된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됐다.

일부 외신들이 지적하는 130%대(CD 제외)의 높은 예대율은 은행들이 리스크관리에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지표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부동산 시장의 거품과 가계부채, 그리고 한계기업들의 난립과 외환시장 불안 등 금융위기의 한 가운데 은행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은행들은 주주가치 훼손과 정부의 경영권 간섭을 이유로 공적자금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또, 외화조달 금리가 높다는 이유로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만 축내고 있다는 비판에도 직면해 있다.

정부 역시 지난 수년간 은행들의 방만경영에 대한 관리·감독 소홀의 책임을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외환위기 이후 또 다시 은행 살리기에 '혈세'를 투입하는 만큼 정부와 은행이 국민들의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특단의 협력방안을 만들 것을 주문하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국내에 고조되고 있는 과도한 불안심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은행간 공조 노력이 필수"라며 "기업 구조조정 역시 눈치보기로 시간을 허비하다가는 향후 더 큰 후폭풍에 휘말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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