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더이상 공공기관 아니다'
은행, '더이상 공공기관 아니다'
  • 서울금융신문사
  • 승인 2003.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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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초기 반발 거셌던 계좌유지수수료 및 BPR 등 정착


첫 도입 당시 금융소비자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다 현재는 은행권에 상식으로 자리잡혀 가는 제도나 흐름들이 있다. 과거보다 은행의 공공성이 많이 희석되면서 은행들이 수익성 강화 차원에서 머리를 짜낸 결과물들이다. 그러나 모난 돌이 정 맞듯이 첫 도입이 수월치만은 않았다. 특히 국내 은행들 중 처음으로 외국계 자본을 주인으로 받아들인 제일은행은 제도 시행 발표 때마다 뭇매를 얻어맞곤 했다. 지금은 선진금융기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은행권의 이 같은 흐름을 제일은행의 사례를 통해 살펴봤다. 편집자 주

▶계좌유지 수수료 = 2001년 1월 2일, 제일은행은 은행권 최초로 ‘계좌유지 수수료제’를 도입했다. 은행계정 및 신탁계정의 월간 총수신 평잔 합계액이 10만원 미만인 신규고객부터 계좌유지 비용으로 월 2천원의 수수료를 받은 것. 도입 당시 금융권에서는 소액예금자들에게 불리한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며 반발이 거셌다.

그러나 도입 3년 만에 ‘계좌유지 수수료’는 전 은행이 모두 실시하는, 보편화된 수수료가 됐다. 아직 ‘계좌유지 수수료’라는 명목은 제일은행만이 갖고 있지만 타 은행들은 일정 금액 미만인 계정에 대해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수수료를 대체하고 있다. 제일은행이 고객과 언론으로부터 뭇매 맞는 모습을 보고 간접 방식을 택한 것.

최근에는 씨티은행이 이 수수료를 금액과 관계없이 모든 계좌에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외국 선진 은행에서 이 수수료는 상식중에서도 상식으로 통하고 있어 씨티은행 방식이 국내 전 은행에 도입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후선업무 통합(BPR) = 지난 해 시중은행들은 통합 후선업무센터를 가동하면서 업무처리 방식을 크게 바꿨다. 여신심사 및 사후관리, CRM, 콜센터 등을 별도 통합시키고 영업점은 그야말로 마케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것.

2001년 11월 제일은행이 후선업무만을 전담하는 고객서비스센터를 가동시킨 것을 시작으로 국민·우리은행 등도 통합센터를 잇따라 신설했다. 그러나 은행들의 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도입을 두고 금융권에서는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았다.

한국적 특수성을 무시한 채 외국계 컨설팅 회사의 말만 믿고 덜컥 제도를 도입했다가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나 올해 1조원 이상의 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는 우리은행은 그 공을 상당 부분 ‘BPR의 성공적 정착’에 돌리고 있다. 영업점 직원은 마케팅만 하고 그 결과로 발생하는 대출 심사 및 실행, 연체관리 등의 모든 업무는 후선에서 처리함으로써 영업력과 고객서비스가 한층 강화된 것. 또한 인력의 효율적 배치 등 후선업무 통합에 따른 비용절감 효과도 상당한 것으로 은행측은 분석하고 있다. 이에 우리금은 우리은행의 성과를 바탕으로 광주·경남은행 등 지주사 전체로 BPR을 확대시키고 있다.

▶여신관행 변화 = 올해는 부동산 가격 폭등과 그에 따른 가계부실이 금융권의 주요 화두였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시 개인 소득증빙 자료 첨부 등의 내용이 담긴 정부의 ‘부동산 10·29 대책’은 은행의 여신관행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제일은행은 2000년부터 이를 실시했다.

첫 도입 당시 제일은행은 고객들로부터 많은 항의를 받았다. 대출을 받으면서 ‘담보가치만 확실하면 됐지 개인 소득증빙 자료는 왜 제출하라는 거냐’는 게 항의의 주된 내용이었다. 그러나 은행측은 미래상황에 대비, 담보가치보다는 차주의 현금흐름을 중요하게 여겼다. 신용대출에 있어서도 보증인보다는 개인의 상환능력에 초점을 맞췄다.

아니나 다를까 올 들어 가계부실 여파와 함께 현재는 모든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시 개인의 소득증빙 자료를 반드시 첨부하도록 하고 있다.
이 밖에도 2001년 1월, 제일은행 호리에 행장은 금융감독원의 현대전자 회사채 인수 지시를 거부했다가 곤욕을 치른 일이 있다. 은행이 공공성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비난도 많이 수그러들었다. SK글로벌 사태 때도, 이른바 노란봉투 사건으로 불리는 카드채 대란 때도 은행들은 이제 정부에 ‘NO’라는 말을 서서히 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 은행들도 선진 외국은행들처럼 리스크 관리와 수익성을 최고 중시사항으로 받아들이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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