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보이스피싱 '배상책임분담' 시행 코앞인데···속타는 은행들
[초점] 보이스피싱 '배상책임분담' 시행 코앞인데···속타는 은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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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1일부터 '책임분담기준' 시행···배상비율 협의 '지지부진'
고객 과실 판단 기준 모호···지방은행, 인력·비용 등 부담 가중
서울 한 은행 영업점에서 고객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서울파이낸스DB)
서울 한 은행 영업점에서 고객 상담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서울파이낸스DB)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정지수 기자] 은행권이 비대면 금융사고 발생 시 최대 50%까지 배상해주는 '책임분담기준' 시행을 일주일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당장 다음 달부터 비대면 금융사고 배상 접수를 받아야 하는데, 세부 책임분담 비율을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은행이 고객의 과실 여부를 직접 판단하는 데 따른 부담이 큰데다가 은행 간 책임을 가려내는 작업도 쉽지 않아 세부 기준 마련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27일 금융당국과 은행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내년 1월 1일부터 책임분담기준에 따른 자율배상을 개시할 예정이다. 앞서 금융감독원과 국내 19개 은행은 지난 10월 비대면 금융사고를 예방하고 피해구제를 확대하기 위해 '비대면 금융사고 책임분담기준' 이행 약속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은 보이스피싱 등 비대면 금융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 고객의 과실 여부에 따라 은행이 금전적 손해를 최대 50%까지 배상해주는 원칙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은행들은 기존에도 해킹, 파밍(악성코드 감염을 통한 금융정보 탈취) 등 비대면 금융사고가 발생했을 때 손해액의 일부를 배상해왔는데, 내년부터는 배상 대상에 '보이스피싱 피해'까지 포함된다.

은행권은 책임분담기준에 따른 세부 배상비율을 정하기 위해 이달 초부터 은행연합회를 통해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이어오고 있다. 각 은행이 기존에 운영하던 전자금융사고 배상책임 기준 등을 바탕으로 책임분담비율을 마련하면 TF에서 협의점을 도출하고, 금감원과 논의 후 최종 비율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TF를 통한 배상비율 공동기준 마련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은행이 사전에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노력을 충분히 했다면 배상비율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게 이번 책임분담기준의 기본 원칙인데, 은행별 사고예방 노력의 정도를 정량적으로 판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피해자 A씨가 보이스피싱범에게 속아 B은행 계좌의 비밀번호와 개인정보를 탈취당했다고 가정해보자. 보이스피싱범이 A씨의 B은행 정기예금을 중도 해지한 후 C은행 계좌로 이체하고, D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고 했을 때, 은행들은 피해자 A씨에 대한 과실 비율을 다르게 주장할 수 있다. 피해가 여러 곳에서 발생한 만큼 어떤 은행에 어떤 과실이 있었는지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다.

각 은행에서 자체적으로 TF를 구성, 책임분담비율을 산정하고 있지만 공동 TF에서 이견이 커 합의점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이 고객의 과실을 직접 판단해 배상액을 결정하는 데 대한 부담도 크다. 배상 결과에 불만을 가진 고객이 민원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보이스피싱 등 비대면 금융사고는 은행뿐 아니라 저축은행, 카드, 증권 등 제2금융권 계좌와 연결돼 발생하는 경우도 많은데, 은행에 대해서만 책임분담기준을 마련하도록 해 피해자에 대한 정확한 배상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보이스피싱 피해금액 비중의 23.4%를 비은행권이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은행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같은 경우 대부분 여러 은행에 걸쳐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어떤 은행에서 어느 정도의 책임을 질 것이냐를 논의하는 게 쉽지 않다"며 "은행끼리의 문제도 있지만,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과 은행에서 동시에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은데 2금융권은 이번 책임분담기준 논의에서 아예 제외된 상태라 혼란이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BNK경남은행이 19일 '보이스피싱 예방 가두캠페인'을 실시했다. (사진=BNK경남은행)
BNK경남은행이 실사한 '보이스피싱 예방 가두캠페인'. (사진=BNK경남은행)

인력, 비용 등의 여력이 많지 않은 지방은행에는 부담이 더 큰 상황이다. 보이스피싱 피해가 발생하면 은행은 피해자의 고의성 및 중과실 등을 입증해야 하는데, 시중은행보다 규모가 작은 지방은행 입장에선 인력 등 제반 비용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고령층 고객 비중이 높은 점도 지방은행엔 고민거리다. 고령층은 상대적으로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 사용에 미숙하고, 정보 수집 능력과 순간적인 판단·대처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비대면 금융사고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실제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자 중 46.7%가 60세 이상이었다. 또 고령층은 주로 '대출 사기'로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은데, 대출 사기형의 경우 피해금액의 규모가 다른 사기 유형보다 컸다.

한 지방은행 관계자는 "지방은행은 젊은 사람보다 고령층 고객이 더 많기 때문에 아무래도 리스크가 존재한다"며 "FDS(이상금융거래탐지 시스템) 개선 작업 등에도 비용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귀띔했다.

책임분담비율 산정 작업이 길어질 것으로 보이면서 은행들은 우선 다음달 1일부터 비대면 금융사고 배상 접수부터 받기로 했다. 피해 접수를 받은 후 본격적인 배상 논의는 통상 3개월 이후 시작되는 만큼 내년 3월까지 세부 배상비율 마련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 간 합의점 마련에 어려움이 있지만 당국에서 주도하고 있는 만큼 배상 논의가 본격화되는 내년 3월까지는 세부 배상비율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1월부터 접수는 받고, 이후 구체화된 배상비율에 따라 배상액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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